'긴장의 순간'… 8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朴, 사저 나서며 ‘옅은 미소’… 8분 만에 청사 도착 포토라인 서 8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21일 오전 9시15분 서울 삼성동 자택을 출발해 9시23분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에 도착했다. 이동거리는 약 5.5㎞. 짧은 시간과 거리였지만 밤새워 박 전 대통령을 기다린 지지자들의 마중은 언제나처럼 요란했다.반면 피의자 신세가 된 초라한 전직 대통령과 극성스러운 지지자들을 바라보는 삼성동 주민들의 시선은 냉랭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1일 오전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에 도착해 차량에서 내리고 있다. 남정탁 기자
오전 9시13분 자택 앞에 고급 세단이 자리 잡은 직후 박 전 대통령이 자택을 나섰다. 지난 12일 탄핵 결정으로 자택으로 돌아온 뒤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을 확인한 지지자 100여명은 “탄핵 무효”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일부 지지자는 전날 밤부터 대기하고 있었고, 아침 일찍부터 모여든 지지자들도 있었다. 이들은 손에 든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흔들었다. 일부는 “고영태를 수사하라”고 외쳤고, 또 다른 지지자들은 “헌법재판소의 8대 0, 인민재판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전 대통령은 옅은 미소를 띤 얼굴로 지지자들을 바라보며 “아이고 많이들 오셨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까이서 취재한 방송사 카메라 기자가 입모양을 보고 추측한 것이다. 취재진이 “국민께 한 말씀해 달라” “헌법재판소 결정에 불복하는가” “검찰수사에 어떻게 임할 건가”라고 질문을 던졌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억울” 박근혜 전 대통령의 소환 조사가 이뤄진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탄핵 무효” 등을 외치고 있다.
이제원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는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탄핵 무효 등을 주장하며 집회를 하고 있다.
하상윤 기자
박 전 대통령 일행이 나눠 탄 세단 2대와 SUV(스포츠유틸리티차)가 이동하자 통곡하는 중년 여성 지지자들도 있었다. 이들은 주저앉아 “아이고, 우리 대통령님” 하며 울부짖었다. 한 열성 지지자는 경찰 통제선을 뛰쳐나와 “대통령님 가지 마세요”라고 외치며 쫓아가다 제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검찰에 출석하는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극성스러운 마중을 바라보는 삼성동 주민들과 출석 장면을 직접 보기 위해 일부러 자택을 찾은 인근 지역 주민들의 시선은 차가웠다.

양모(52)씨는 “법대로 해야 한다. 평범한 시민들도 잘못하면 법대로 처벌받는데, 전직 대통령이라고 예외인가”라며 “본인이 당당하다면 수사받고 누명을 풀든지, 아니면 그에 맞는 책임을 지는 게 맞다”고 말했다.


“사죄”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받은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인근에서 노동당 관계자들이 박 전 대통령의 구속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하상윤 기자
오전 8시부터 현장을 지키고 있었다는 박모(60)씨는 오전 9시를 넘겨도 박 전 대통령이 모습을 나타내지 않자 “왜 이렇게 안 나오냐. 버티면 국민들이 좋아하는가”라고 꼬집었다. 박씨는 “진작 좀 조사에 응했으면 이런 부끄러운 순간을 맞이하지는 않았을 거 아니냐. 이게 무슨 난리냐”라며 “지도자 잘못 뽑아서 나라가 휘청이고, 결국 서민들만 고스란히 피해 보지 않나”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전 대통령의 차량이 삼성동을 떠나 봉은사로로 진입하자 경호차량과 경찰 오토바이들이 차량 앞뒤를 에워쌌다. 경찰의 교통통제로 차량은 선정릉역 사거리, 선릉역 사거리를 지나 테헤란로로 빠르게 진입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1일 오전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도착해 차량에서 내리고 있다. 남정탁 기자
전직 대통령의 검찰 소환 과정을 전달하기 위한 언론의 취재 경쟁도 뜨거웠다. 박 전 대통령 차량 행렬을 따라 취재차량 10여대가 따라 붙었다. 일부 방송사는 오토바이로 차량 행렬을 쫓아가며 근접촬영을 하기도 했다. 한 방송사는 번호판을 달지 않은 오토바이와 스티커로 번호판을 가린 오토바이 2대로 차량 행렬을 촬영하다가 경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주요 교차로와 지하철 역 인근에서는 시민 수십명이 모여 박 전 대통령의 차량 행렬을 사진으로 찍기도 했다. 또 반대 방향에서 운행하는 차량에 탑승한 시민들은 박 전 대통령 행렬을 직접 보기 위해 차창에 얼굴을 바짝 붙이기도 했다.

서울중앙지검 인근에서 박 전 대통령 차량 행렬을 지켜본 김모(27·여)씨는 “법원에 민원장을 제출하러 왔는데, 청사 진입을 아예 막아버렸다”며 “탄핵까지 됐는데, 전직 대통령치고는 너무 과한 예우가 아닌가” 하는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창훈 기자 corazo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