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라인] 아베 입맛대로… 수정주의 역사관 침투 작업 '마무리'

아베 '수정주의 역사관' 노골적 반영… 위안부 합의 첫 명시 / 고대사 왜곡, 3·1운동도 축소했다/ “미래 교육 책임있는 행동해야” 외교부, 日에 즉각 시정 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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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일본 고등학교 중학년(주로 2학년)용 사회과 교과서가 정부 검정을 통과함에 따라 2012년 12월 2차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출범한 이후 추진해 온 수정주의 역사관의 교과서 침투 작업이 마무리됐다. 모든 초·중·고교 교과서가 아베 정권의 입맛대로 손질된 것이다. 독도에 대한 일본의 무모한 야욕이 고스란히 담겼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부끄러운 과거에 대한 물타기도 거침없이 이뤄졌다.

◆수정주의 역사관 교과서 침투 완료

아베 정권은 2014년 1월17일 교과서 검정 기준을 개정해 근현대사와 관련해 정부의 통일된 견해를 기술하도록 규정했다. 같은 달 28일에는 중·고교 학습지도요령해설서를 개정해 사회과 교과서에 독도와 관련해 ‘일본 고유 영토’ ‘한국에 의한 불법 점거’ 등의 표현을 사용하도록 명시했다. 이후 2014년 초등학교, 2015년 중학교, 2016년 고등학교 저학년(주로 1학년), 올해 고등학교 중학년(주로 2학년) 교과서의 검정을 통해 이를 모두 반영시켰다. 해당 교과서들은 번갈아가며 4년마다 정부의 검정을 받기 때문에 이번이 마무리인 셈이다.

24일 일본 문부과학성의 검정을 통과한 고교 지리 교과서에 ``일본 고유의 영토인 다케시마(竹島·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의 명칭)를 한국이 점령하고 있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연합
이번에 검정을 통과한 사회과 교과서 24종도 모두 이 기준을 따랐다. 독도 기술을 강제하지 않은 세계사 5종을 뺀 나머지 19종이 모두 독도와 관련해 ‘일본 고유 영토’ ‘한국에 의한 불법 점거’ 표현을 담았다. 정치경제 교과서 7종 중 6종은 ‘일본 정부가 독도 영유권 문제에 대해 국제사법재판소 등을 통해 평화적 해결 노력을 하고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시미즈(淸水)서원의 정치경제 교과서는 검정 신청 때 “시마네현에 속하는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명칭)에 대해 한국은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표현했지만 검정 과정에서 ‘부정확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결국 이 내용은 다케시마에 대해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표현을 추가하고 “한국이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며 점거하고 있다”는 일본 정부의 주장을 추가한 뒤에야 검정을 통과했다.

◆‘12·28합의’ 등장… 대못 박기?

눈에 띄는 것은 이번에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 중 7종에 2015년 12월28일 한·일 정부의 위안부 합의(12·28합의) 내용이 포함됐다는 점이다. 짓쿄(實敎)출판의 고교일본사B의 경우 “군의 관여 하에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을 심히 훼손한 문제라고 인정하고,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 “한국 정부가 설립한 위안부 지원을 위한 재단에 10억엔을 지출” “ 합의에 위안부 전부가 납득한 것은 아님”이라고 기술했다.

그러나 아베 정권이 강조하는 ‘최종적이고 되돌릴 수 없는 해결’에 무게를 둔 교과서도 있었다. 도쿄서적의 정치경제에는 “한국 정부가 설립하는 재단에 일본 정부가 자금을 거출하는 것 등에 의해 위안부 문제의 최종·불가역적 해결에 합의”라는 표현이 들어갔다. 짓교출판의 정치경제에도 “위안부의 지원 사업을 위한 재단 거출금을 통해서 이 문제의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 확인”이라는 설명이 담겼다. 최근 한국 내에서 ‘12·28합의’ 파기 주장이 나오는 상황에서 이 합의 내용을 교과서에 담아 ‘이미 끝난 일’로 삼고 싶은 아베 정권의 의도가 어느 정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위안부 문제 관련 기술이 후퇴한 교과서도 있었다. 도쿄서적의 일본사B에는 “그러나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군의 관여가 명확해져 1992년 미야자와 총리 방한 시 보상을 대신한 ‘무언가의 조치’ 검토를 약속했다”는 부분이 삭제됐다. 짓쿄출판의 정치경제에는 “종군위안부와 강제연행 노동자에 대한 보상에 관해서는 일본 정부의 대응이 불충분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는 부분이 삭제됐다.

문제의 교과서들 일본 정부가 고교 검정교과서 심사 결과를 발표한 24일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 관계자들이 서울 종로구 혜화로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일본 교과서 분석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남정탁 기자
◆ 고대사 왜곡, 3·1운동도 축소했다

“일본 정부의 애국주의적이고 극우민족주의적인 정책이 극명하게 반영된 결과다.”

교육시민단체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이하 역사교육연대)는 24일 발표된 일본의 새 고등학교 교과서 검정 합격본을 이렇게 규정했다. 이번에 일본 문부과학성의 검정을 통과한 지리·역사 검정교과서에는 독도 영유권이나 일본군 위안부 등 한·일 간 뜨거운 쟁점뿐만 아니라 식민지배와 전쟁범죄 은폐, 군사대국화를 향하는 아베 신조 정부의 입장을 고스란히 반영한 내용이 담겼다.

역사교육연대는 일본 고교 검정교과서들이 △정부 입장 기술 강제 △고대사 왜곡과 임나일본부설 반영 △식민지 피해 사실 축소 등 3가지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의 입장을 두둔한 대표적 사례로 12·28 위안부 합의 내용의 편향적 기술, 위안부 모집의 ‘강제성’ 삭제, 독도 영유권 문제 왜곡이 거론됐다. 진보성향인 짓쿄출판은 ‘고교일본사B’ 검정신청본에서 12·28 위안부 합의를 “국가로서의 법적 책임을 인정한 보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치유금 수급을 거부한 위안부도 있었다”고 기술했다.

이에 문부성은 “학생이 오해할 우려가 있는 표현”이라며 수정을 지시했고, 결국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는 식의 표현이 들어간 교과서가 최종 합격했다.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부인하는 아베 정부 주장에 맞게 모든 교과서에선 위안부 강제동원에 관한 서술이 사라졌다.

일본 정부는 고대사 왜곡도 서슴지 않았다. 실교출판의 ‘고교일본사B’ 18쪽에는 “한이 조선반도에 설치한 낙랑군”이라는 표현이, 22쪽에는 “고구려가 중국이 설치했던 낙랑군, 대방군을 멸망시켰다”는 표현이 나온다. 한반도에서의 정치체는 한의 4군에서 비롯한다고 설명함으로써 고조선의 존재를 부정하고, 한이나 왜의 영향설만을 강조한 것이다. 특히 야마카와출판사의 신일본사 개정판의 경우 “512년, 야마토 정권은 가야 서부의 4개국(임나4현)을 백제가 지배하는 것을 승인했다”고 서술함으로써 임나일본부설의 사료 해석을 그대로 받아들였다고 역사교육연대는 꼬집었다.

짓쿄출판을 제외한 모든 일본 검정교과서들은 서울을 비롯한 7개 도시에서 동시에 펼쳐진 3·1운동이 서울에서만 일어난 것으로 기술하는 등 일제강점기 저항운동을 축소 기술했다. 이전 검정교과서에서는 간토대지진 때 학살당한 조선인 숫자를 본문에 기술했으나 이번에는 모든 교과서가 “통설이 없다"는 문부성의 수정 지시로 각주 처리했다.

이신철 역사교육연대 상임공동운영위원장은 “일본 정부의 집요한 교육 우경화 정책은 교육을 그들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켰다”며 “일본 정부가 하루빨리 과거 제국주의의 향수에서 벗어나 미래지향적인 평화 공생의 길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초치된 日 공사 스즈키 히데오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공사(오른쪽)가 24일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확대·강화한 교과서 검정 결과 발표와 관련해 우리 정부의 항의를 전달받기 위해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로 불려 들어오고 있다.
연합뉴스
◆ “미래 교육 책임있는 행동해야” 외교부, 日에 즉각 시정 촉구

일본 정부가 24일 독도 영유권 주장을 확대·강화한 교과서 검정 결과를 발표함에 따라 한·일 간 냉각관계는 당분간 지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이날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 명의 성명에서 “일본 정부가 우리 고유의 영토인 독도에 대한 부당한 주장을 포함해 왜곡된 역사 인식을 담은 고등학교 교과서를 또다시 검정 통과시킨 데 대해 강력히 항의하며 이에 즉각적인 시정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성명은 이어 “일본 정부는 그릇된 역사관의 최대 피해자는 결국 일본의 자라나는 미래 세대라는 점을 분명히 자각하고, 역사를 직시하는 가운데 미래 세대의 교육에 있어 책임 있는 행동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향후 교육부와 동북아역사재단 등 관계 기관에서도 이번 검정 결과를 상세히 분석한 뒤 필요한 대응을 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주명현 교육부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참으로 깊은 실망과 유감을 금할 수 없다”며 “왜곡된 교과서를 바로잡을 때까지 교육·외교·문화적 총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교육부는 이날 동북아역사재단, 시도교육청과 함께 독도교육을 교과와 창의적 체험활동 등 교육 전반에서 통합적으로 운영되도록 하는 내용의 독도교육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계획에는 독도 바로알기 교재 175만부 보급, 교사용 독도 교수·학습자료 개발 및 보급, 찾아가는 독도 전시회 및 교육자료 배포 등이 담겼다.

해군 관계자는 이날 국방부 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에 “독도방어훈련은 우리 군이 정례적으로 하고 있고 앞으로도 할 것”이라며 “예년처럼 올해 전반기에도 독도방어훈련을 할 것”이라고 답했다. 일본의 교과서 검정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지만 독도 수호 의지를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은 국군의 독도방어훈련 계획에 대해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일본 교도통신이 전했다.

일본 교과서 문제가 다시 불거짐에 따라 한·일 관계의 돌파구 마련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부산주재 일본총영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설치를 이유로 지나 1월 9일 일시 귀국한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대사와 모리모토 야스히로(森本康敬) 부산주재 총영사의 귀임 시기도 더 늦춰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우리의 경우 대통령선거 후 새 정부가 출범하기 전까지 국내 정치 상황이 유동적이고, 장기집권이 예상됐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도 아내 아키에(昭惠)씨가 연루된 스캔들로 정치적 위기에 직면해 양측이 모두 관계 개선의 주도력을 발휘하기 힘든 상황이어서 교착 상태는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도쿄=우상규 특파원·김민서·송민섭·박수찬 기자 spice7@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