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이것만은 확 바꾸자!] 막말·선동·줄세우기…대한민국 '정치 시계'는 거꾸로 간다

정책대결 역량 부족… 인신공격성 네거티브 전략 난무 / 조기대선 국면 속 되살아난 구태 정치
한국 정치는 아직도 ‘후진적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미 대선’을 앞두고 막말과 선동, 줄세우기 정치가 다시 기승을 부린다. 박근혜 대통령 파면 사건 이후 정치권이 갈등과 분열의 정치를 지양하고, 정책 경쟁과 협치를 해야 한다는 다짐은 이미 잊혀진 지 오래다. 다시금 예전처럼 대한민국 정치가 갈등과 분열의 진원지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대선일정이 워낙 촉박해 준비되지 않은 후보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쏟아져 나오며 ‘구태 정치’에 일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치권 내부의 역량 부족도 정책 경쟁보다는 갈등 조장을 부추긴다는 비판이 나온다. 후진적 정치문화가 계속된다면 결국 좋은 정치인이나, 참신한 정치를 하고자 하는 이들이 좌절하는 상황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악순환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정치권 내부의 각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막말·선동·줄세우기… 판치는 구태 정치

자유한국당 홍준표 경선후보는 막말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노무현 정권은 ‘안희정 뇌물’로 출발하고 ‘박연차 뇌물’로 끝났지 않았느냐”며 “그 당시(노무현정부)에 2인자를 하신 분이 대통령을 하겠다는 것은 ‘뇌물 공화국’을 한 번 더 하자는 것”이라는 식이다. 지지율 1위를 달리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경선후보와 대결구도를 만들어보려는 전략의 일환이라는 분석이 많다. 자신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사건에 대해서는 “유죄가 확정되면 자살을 검토하겠다”며 “노무현 전 대통령은 돈을 받았기 때문에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고, 저는 돈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극단적 선택은 안 해도 된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같은 당 김진태 경선후보마저 “순화된 아름다운 말을 쓰는 게 어떻겠는가”라고 홍 후보를 비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자유한국당 대선후보인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2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MBC에서 진행한 100분 토론 녹화에서 토론을 준비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대선이 가까워지면서 가짜뉴스 등을 통해 여론을 선동하는 행위도 넘쳐난다. 대선 레이스에서 중도하차한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은 불출마 기자회견 당시 “저의 순수한 애국심과 포부는 인격 살해에 가까운 음해, 각종 가짜뉴스로 인해 정치 교체 명분은 실종되고 오히려 제 개인과 가족, 그리고 유엔의 명예에 큰 상처만 남기게 됨으로써 국민에게 큰 누를 끼치게 됐다”고 개탄했다. 중앙선관위는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 문 후보 낙선을 목적으로 선거운동을 하고 비방 및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가 있는 신연희 강남구청장을 검찰에 고발했다고 밝혔다.

상대방을 향한 공격도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민주당 안희정 후보 측이 ‘전두환 표창’ 논란으로 문 후보를 공격하자, 문 후보의 지지자들은 안 후보 측 의원들에게 ‘문자 폭탄’을 보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안희정, 이재명 경선후보(왼쪽부터)가 27일 광주시 광주여대 유니버시아드체육관에서 열린 호남권 순회경선에서 연설을 하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광주=이재문 기자

줄세우기 정치도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전체 지지율 1위(문재인), 2위(안희정), 4위(이재명) 간 대결로 ‘본선 같은 예선’이라는 평가를 받는 민주당 경선이 대표적이다. 연일 후보 지지선언이 잇따른다, ‘적폐청산’을 주장하는 문 후보는 박 전 대통령의 경제교사였던 김광두 전 국가미래연구원장을 영입해 “무분별한 영입”이라는 논란을 자초했다.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는 ‘친문’, ‘친안’, ‘친이’ 식으로 계파 분류가 끝난 지 이미 오래다. 정치권 관계자는 “각 후보 진영이 일단 ‘이기고 보겠다’는 생각으로 영입인사를 마구 받아들이고 있다”며 “박 전 대통령 파면 사건에서 정치권이 배운 게 아무것도 없다”고 꼬집었다.

◆정책대결 역량 부족… 정치권 각성 급선무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정책경쟁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정치권 내부의 역량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정치권이 진짜 의제와 싸울 능력과 의지가 없다“며 “네거티브 공방이라고 해도 서로의 정책을 가지고 하면 꼭 나쁘다고 볼 수는 없지 않은가. 지금의 공방은 ‘당신이 더 심하다’ 수준밖에 안 된다”고 꼬집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통화에서 “선거에선 현 사회의 문제나 갈등에 대한 논쟁이 일어나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지역연합이나 보혁갈등 등 구도에 따른 풍토를 보여왔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 탄핵이라는 돌발 변수로 조기대선이 치러지며 시대정신을 담은 핵심 의제가 형성되지 않은 점도 원인으로 꼽힌다. 최 교수는 “2002년 대선에서는 수도이전, 2012년 총·대선에서는 무상급식이나 경제민주화 같은 담론 경쟁이 있었지만 이번 선거는 그런 것이 없다”며 “선거를 관통하는 쟁점이 사라지다 보니 구도에 의지해서 선거를 치르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윤 실장은 “야권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다 보니 다른 후보들이 ‘이판사판’이라는 심정이 된 탓도 있다”며 “사실상 그것밖에 전략이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책 경쟁이 아닌, 상대를 누가 더 증오하느냐에 따른 경쟁으로는 한국정치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정치권 내부의 각성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광재 한국 매니페스토 실천본부 사무총장은 “약속을 중심으로 권한을 위임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인데 이것이 무너진 게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라며 “민주주의는 국민에게 통제받는 것이지 이끄는 것이 아니다. 정치권이 이를 인식해야 한다”고 질타했다.

이도형 기자 scop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