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7-03-28 19:08:57
기사수정 2017-03-28 22:35:01
③ 바른정당 유승민
바른정당 유승민 대선후보는 지난 25일 경선 TV토론회에서 ‘내 인생의 사진’으로 2015년 새누리당 원내대표 당시의 사진을 들고 나왔다. ‘배신의 정치’ 논란으로 청와대와 친박(친박근혜)계로부터 강한 사퇴 압력을 받을 때다. 유 후보는 “제 인생을 많이 바꾼 사건이었다”고 회고했다. 유 후보 말처럼 그의 정치역정은 2015년을 경계로 갈린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정면대결은 원대대표 사퇴 등 정치적 고난을 불러왔지만 정치적 체급을 끌어올리며 대선주자로 발돋움하게 했다. 대중에게 조선시대 선비와 같은 꼿꼿한 이미지가 새겨진 것도 이때부터다. 그의 이미지는 2015년에 갑자기 발현한 것이 아니다. 그 이전의 인생 궤적에서도 여러 차례 발견된다. 이 때문에 때로는 유 후보가 지도자감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28일 대선후보로 공식 선출된 유 후보가 “기적이 무엇인지 보여드리겠다”는 다짐처럼 낮은 지지율을 끌어올리며 도약할 수 있을까.
◆KDI 연구원 시절부터 “재벌 개혁” 주장
유 후보는 1958년 대구시 대봉동에서 2남1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 유수호 전 의원은 판사를 지내다가 박정희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판결을 해 1973년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13, 14대 국회의원을 지냈는데 “여당 의원임에도 정부에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들의 기질은 아버지를 닮은 셈이다.
유 후보는 학창시절 전교 1, 2등을 다투는 수재이면서도 성적이 낮거나 ‘잘 노는’ 친구들과도 어울려 다녔다고 한다. ‘샌님’보다는 ‘쾌남’에 가까웠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가출한 친구를 찾겠다며 3일간 집을 비웠다가 머리를 빡빡 민 채로 돌아왔었다. “어쨌든 자신도 집을 나간 것이니, 걱정하신 부모님에게 사죄하는 뜻”이었다고 한다. 1976년 서울대에 합격해 경제학과를 다녔고 12·12쿠데타와 ‘서울의 봄’ 전후에는 육군 수도경비사령부 33경비단에서 군복무를 했다. 군복무 시절 아버지 친구인 노태우 수경사령관 자녀의 개인과외 선생 제의를 받자 “절대 하기 싫다”고 거부했다고 한다. 군 전역 뒤 미국 유학을 다녀왔고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을 지냈다. 이때부터 재벌개혁을 주장하고 다녀 연구원 내외에서 “이상한 사람 아니냐”는 수군거림을 받았다는 일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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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과 딸 2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바른정당 대선후보 선출대회에 참석한 유승민 후보 부인 오선혜(왼쪽)씨와 딸 담씨가 환하게 웃고 있다. 이재문 기자 |
◆‘원조 친박’에서 ‘배신의 정치’로
유 후보는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 제의로 2000년 여의도연구소장이 되며 정계에 입문했다. 2004년 비례대표로 처음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비서실장직을 맡아 달라고 하자 ‘할 말은 하겠다’는 조건 아래 수락한 뒤 10여 개월 일했다. 이때부터 그는 ‘원조 친박’으로 분류되기 시작한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에서는 박근혜 캠프 메시지 총괄단장을 맡아 이명박 후보 진영과 정면대결했다. 이때까지는 친박계 핵심이었다.
2012년 새누리당 당명 개정에 반대하면서부터 박 대표와 사이가 멀어지기 시작했다. 박 전 대통령 취임 후 두 사람은 더 멀어졌다. 2014년 외교부 국정감사 때는 청와대의 ‘중국 경도론’ 발언자료 배포 소동에 “청와대 ‘얼라들’이 한 거냐”며 ‘문고리 3인방’을 직격했다. 2015년 4월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의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 발언은 친박계와의 충돌로 이어졌고, 결국 “헌법 1조 1항을 지키고 싶었다”는 말과 함께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2016년 총선에서 친박계 압력 속에 탈당해 무소속으로 당선된 뒤 복당했다. 하지만 12월 박 전 대통령 탄핵을 주도한 뒤 김무성 의원 등과 함께 바른정당을 창당하며 두 번째로 새누리당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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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바른정당 19대 대통령 후보자 선출대회에 참석한 유승민 의원이 대선 후보로 선출된 후 지지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이재문 기자 |
◆“새로운 보수라는 큰 그물 칠 것”
그동안 유 후보는 낮은 지지율에 대해 “박 전 대통령 탄핵이 확정되면 사정이 달라질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여왔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 파면 후에도 유 후보 지지율은 요지부동이다. 유 후보 측은 친박계의 ‘배신자’ 공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는다. ‘원조 친박’ 이미지가 발목을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유 후보는 28일 대선후보 선출 후 기자회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진박(진짜 친박근혜)들이 저에 대해 씌워놓은 올가미가 너무 질겨서 그동안 고전을 많이 했다”고 토로했다. 보수진영 본진이라 할 수 있는 TK(대구·경북) 지역에서는 ‘배신자’라는 비판 기류가 강하다. “대통령감이 아니다”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정체된 지지율의 원인으로 분석된다. ‘할 말은 다하는’ 직설적인 성격이 직언·조언을 담당하는 참모에나 어울리는 것으로 비친다는 것이다.
유 후보 측은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가 시작되면 사정이 달라질 것이라고 자신한다. 유 후보가 내세운 ‘새로운 보수’가 결국 갈 곳 없는 보수층을 뭉치게 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유 후보 측 한 관계자는 “유 후보는 보수층 모두를 붙잡을 새로운 보수라는 ‘큰 그물’을 치려고 하는 것”이라며 “TK 민심도 자연스럽게 그 ‘큰 그물’에 따라올 것”이라고 말했다. 유 후보도 “이제 각 당 후보들이 확정되면 국민들이 다시 평가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이도형 기자 scop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