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진 경기 불황에도 체면치레를 중시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경·조사비를 한달에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까지 지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진심으로 같이 기뻐하고 슬퍼하는 마음과 별개로, 이런 경조사비는 대부분의 가계에는 짐이 되고 있다.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데, 월급 등 소득은 늘어나지 않고서 경조사비 부담만 커져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 게 우리 가계의 현실이다.
축의·조의금은 보통 5만~10만원이지만, 지위와 소득 수준이 높지 않아도 매우 가까운 사이에는 수십만원의 지출을 해야 할 때도 잦다.
◆소득 적은 청년층, 경조사비로 인한 경제적 부담 '高高'
1일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최근 20∼30대 미혼남녀 438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10명 중 6명(63%)이 청첩장에 부담을 느낀다고 답했다. 수입이 적은 20∼30대 청년층일수록 경조사비로 느끼는 경제적 압박은 더욱 큰 것으로 나타났다.
3월은 연중 사망자가 가장 많은 달이다. 통계청의 월별 사망자 통계를 보면 2014~16년 전체 사망자의 9.2%가 3월에 숨진 것으로 드러났다. 뒤이어 12월(8.9%), 1월(8.8%) 순이었다.
달리 말하면 3월에는 문상이 다른 달에 비해 잦아지고, 또 그에 따라 부의금 부담도 커진다. 게다가 3월은 또한 봄 결혼 시즌이 시작되는 달이기도 하다.
이처럼 부담이 커지다 보니 축의·조의금의 본질이 축하와 위로의 마음이 아닌, 준 만큼 되돌려받는 '거래'로 전락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내심 경조사비를 내면서 낸 만큼 돌려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고 계산하게 되는 탓이다.
실제 평생 혼자 살겠다는 독신주의자들은 평생 남의 결혼식에 축의금을 내지만 받을 일이 없다. 이 때문에 독신을 선언하고 그동안 낸 축의금을 돌려받는 '비혼(非婚)식'까지 생겨났을 정도다.
◆축의·조의금, 준 만큼 돌려받는 일종의 거래?
우리나라 혼례·장례문화의 문제는 비단 경조사비에서 그치지 않는다.
행사 참석 여부를 결정하는 일도 말 못할 '마음의 짐'이 된다. 반드시 얼굴을 보이고 눈도장을 찍어야 진심으로 축하하는 것으로 비치는 구시대적인 경조사 문화가 여전한 탓이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으면 혼례와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할 수도 있고, 조의와 축하의 뜻을 다른 방법으로 전달할 수도 있는 데도,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직접 참석하지 않으면 상대는 섭섭하게 생각하기 일쑤다. 이를 알기에 어쩔 수 없이 참석할 수 없게 된 이도 부담스럽고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초대하는 쪽도 부담스럽기는 매한가지다. 지금까지 뿌린 경조사비에 본전 생각이 나고, 경조사 참석자 수가 자신의 인맥과 사회적 지위를 나타낸다는 잘못된 선입견까지 더해져 여기저기 초대장을 남발하는 이들이 많다.
◆친하지 않은 이들에게 청첩장 돌리면 결례?
주요 선진국들은 친하지 않은 이에게 청첩장을 돌리면 예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인 사회상식이자 그 나라의 문화다.
실제 이웃나라 일본에는 우리와 비슷한 축의·조의금 문화가 있으나, 금액 수준이 높은 대신 정말 초대할 만한 이만 부른다.
일본에서는 보통 지인이나 회사 동료라면 3만엔(한화 약 30만원), 친한 친구라면 5만엔(50만원), 친척이나 가족은 10만엔(100만원) 정도를 축의금으로 낸다.
금액 단위가 높은 만큼 수백명의 지인들에게 한꺼번에 부담을 지우지 않으려는 일종의 배려이자 노력이 일본 경조사 문화의 핵심이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세계닷컴>세계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