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직장인들을 매달 하루 2시간 일찍 퇴근시켜 외식이나 쇼핑 등 소비를 하도록 만든다는 정부의 내수활성화 방안을 놓고 갑론을박(甲論乙駁) 논란이 일고 있다.
그만큼 실효성이 떨어지는 원성을 사고 있는데, 실제로 직장인 10명 중 7명가량은 퇴근하면 지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녹초가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무로 인한 피로감은 상대적으로 남성보다 여성이 더 컸으며, 연봉이 낮을수록 더 힘들어 했다.
직장인들은 일과 개인생활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려면 근로시간 단축이나 유연 근로보다 정시퇴근이 최우선이라고 입을 모았다.
◆직장인들 "저녁이 있는 삶? 퇴근하면 지쳐 아무것도 못해요"
2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40대 직장인 2000명을 상대로 진행한 '2040세대 취업남녀의 시간사용과 일·생활에 관한 조사' 결과를 보면 '일하고 나면 지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데 응답자의 67.8%가 동의를 표했다. 이 중 '매우 그렇다'가 12.0%, '그렇다'가 55.8%를 각각 차지했다.
일로 인한 소진감은 여성(71.4%)이 남성(65.1%)보다 더 많이 호소했다. 월수입 200만원 미만은 70.3%, 500만원 이상 고소득자는 60.9%가 각각 퇴근 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데 동의해 소득이 적을수록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들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결과 '집에서도 쉴 틈이 없다'는 응답은 52.4%로 절반이 넘었다. 여성(55.5%)과 30대(57.8%), 그리고 배우자가 있거나(62.3%) 맞벌이(66.2%)일수록 퇴근 후 더 바쁜 시간을 보냈다.
영·유아 자녀가 있으면 68.6%가 귀가한 뒤에도 분주하다고 답해 육아 부담이 큰 것으로 분석됐다. '평소 가족들과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해 아쉽다'는 답변도 77.4%에 달했다.
20∼40대 직장인의 이 같은 하소연으로 미뤄보면 일과 가족, 개인 생활 간 이상적인 시간 배분은 ‘딴 나라 이야기’인 셈이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 전체의 16% 불과
이번 조사의 답변을 종합해보면 직장인들은 수면과 휴식, 여가를 포함한 개인생활에 주어진 시간의 47.1%를 사용하길 희망했고, 근로와 가족생활에는 각각 29.6%, 23.2%를 쓰길 원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42.6%를 일하는 데 이용했고, 개인생활과 가족생활에는 각각 41.4%와 16.0%에 그쳤다.
직장인들은 이런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줄이고 희망에 가깝게 시간을 나눠 쓰려면 가장 먼저 정시퇴근 보장(66.0%)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유급휴일과 연차 사용을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도 53.9%로 집계돼 직장에서 기본적 근로조건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데 대한 불만이 컸다.
업무량 감축을 동반한 근로시간 단축(42.0%)이나 근로 시간과 장소의 유연한 조정(40.7%)은 정시퇴근 요구에 미치지 못했다. 정시퇴근 요일을 지정한 '가족사랑의 날' 등의 프로그램을 확대·강화해야 한다는 응답(22.1%)은 업무 시간 후 문자나 연락, 지시를 금지해야 한다(38.0%)는 의견보다 적었다.
정부의 내수진작 정책에 대해 직장인들은 어떤 반향을 보일까.
대다수는 “퇴근 후 밤에 상사로부터 카카오톡 등 모바일 메신저나 전화부터 안 왔으면 좋겠다”고 밝혀 회의적인 반응이 주를 이뤘다.
몇몇은 "개개인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구상한 정책도 아니고, 마치 직장인들을 '돈 쓰는 기계'로 보는 것 같아 불쾌하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앞서 여성정책연구원은 '양성평등기본법 시행에 따른 가족정책의 이슈와 과제' 보고서를 통해 "법정 노동시간 준수 등 기본권리를 보장하는 조직문화 정착이 먼저 필요하다"며 "국내에서도 최소 휴식 보장제도가 논의되고 있고, '퇴근 후 업무 카톡 금지법'이 국회에 발의된 상태여서 관련 논의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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