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세이] 경제의 봄을 열려면

남산은 여린 봄을 품고 있었다. 지난 주말 둘레길을 따라 남산을 한 바퀴 돌았다. 양지 바른 언덕자락 개나리는 노란 꽃을 살짝 내비쳤다. 간간이 비탈진 계곡에 자주분홍 꽃잎을 벌리기 시작한 진달래가 눈에 뜨였다. 북쪽 벚꽃은 물오른 움을 감춘 채 딸깍발이 살던 남산골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20년 전 5월에 영국총선이 있었다. 그곳에 있었던 나는 TV로 중계된 개표상황을 밤새 지켜보았다. 서서히 선거구별로 승리가 확정된 당의 색깔로 지도가 물들어갔다. 새벽이 되자 새 총리로 토니 블레어가 유력하다는 자막이 나왔다. 화면은 총리관저가 있는 런던 다우닝가로 돌려졌다. 존 메이저 총리는 이삿짐을 꾸리고 있었다. 개표가 완료되기 전에 날이 밝았다. 헬기의 TV카메라가 런던 아침 출근길을 헤치며 여왕을 알현하러 가는 블레어를 태운 차를 비추기 시작했다. 다음날 새 내각 명단이 발표되었다.

5월 9일, 우리는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다. 당선이 확정되는 순간 바로 임기가 시작된다. 과거와는 사뭇 다르다. 통상 선거일 3~4개월 전에 정당별로 최종 후보자가 선출되었고, 당선 후 취임까지 두 달가량 인수위를 운영하면서 선거공약과 정책을 개발하고 다듬어왔다. 이번에는 그럴 시간이 없다. 내각제로 섀도캐비닛(예비내각)을 갖추고 평소 정책을 준비해 온 영국의 모양새도 아니다. 국회는 임기 시작일 이후라도 인수위를 둘 수 있는 방안을 이래저래 모색하는 중이다. 그러다 보니 각 분야에서는 정당의 선거공약을 통하기보다는 아직 주인이 없는 차기 정부를 대상으로 기대하는 정책을 제안하는 상황이다. 건설부문도 또한 마찬가지다.

서명교 대한건설정책연구원장
정유년도 벌써 1분기가 지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을 3.3%로 전망하고 있다. 이러한 세계경제에 힘입어 올해 초 우리의 수출과 설비투자는 전년도에 비해 다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중국의 사드 배치 보복, 그리고 국내정치 불안이 여전히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3년간 연속 2%대의 저성장 늪에 빠져 있는 한국경제에 누가 봄을 오게 할 것인가.

국내총생산(GDP)의 15%를 담당하고 있는 건설산업은 국내취업자만 180만명이며 그 가족까지 거의 500만명에 달한다. 작년에도 한국경제 성장의 큰 버팀목 하나가 건설투자였다. 이제 환경이 변하고 있다. 주택공급과 사회간접자본(SOC) 시설예산이 줄어들면서 건설투자는 점차 위축될 전망이다. 경제시스템은 더불어 사는 윤리와 가치가 강조되어지고 있다. 기술혁신은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다. 어느 틈에 건설은 낡은 구시대적 산업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때 새 정부와 함께 할 새로운 미래를 여는 건설정책을 생각해 본다.

우선 시대의 흐름에 맞게 공정시장을 확립하는 일이다. 건설시장 경제주체 간에 이해를 끌어내고 시스템을 바꾸도록 규제를 개혁해야 한다. 또 혁신성장 지원이다. 4차 산업혁명 기반의 핵심 건설기술을 발굴하는 일이다. 노후시설 투자도 필요하다. 아울러 건설이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산업으로 탈바꿈하도록 하는 것이다. 청년층에게 매력적인 뉴칼라 직업이 되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 공정시장, 혁신성장, 좋은 일자리라는 세 가지 어젠다(의제)에 건설정책의 초점을 두자는 것이다.

한편으로 경제성장의 활력을 유지할 담대한 수요창출 건설프로젝트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그것이 일본이 2000년대 초 추락하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던진 카드로 총리가 직접 본부장 역할까지 했던 ‘도시재생사업’이라도 좋다. 민간자본으로 모든 분야의 산업과 기술이 융합되는 것이라면 좋다. 가라앉은 한국경제에 봄을 여는 하나의 꽃이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서명교 대한건설정책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