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논픽션 비선권력] <6화> 권력의지 심어 박근혜 포획한 최태민

1-6화, 권력 의지 심어 ‘영애’ 포획

일각에서는 박근혜와 최태민이 1975년 처음 만난 것이 아니라 육영수 생전인 1968-1972년 사이에 이미 만났다는 주장도 있다. 필자와 만난 이영도 ‘박정희대통령육영수여사숭모회’(이하 숭모회) 회장의 주장이다. “최태민이 운명을 봐주면서 예언할 때 최면술을 한다고 해 청와대에 들어와 육영수 여사 앞에서 최면시범을 보였다. 최태민이 경호원들에게 최면술을 해본 결과 어떤 사람은 (최면이) 되고 어떤 사람은 되지 않았다. 최태민은 이때 ‘(박근혜의) 집중력을 키워서 공부 성적이 올라갈 수 있다’고 제안했고 (육영수는) 박근혜에게 공부를 시키려고 최태민과 박근혜의 첫 만남이 이뤄진 것이다.”

1977년 3월 서울 용두동 경로병원 개원식에서 최태민(왼쪽에서 두번째)과 박근혜(가운데)가 관계자들과 함께 테이프를 끊고 있다. 국가기록원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서 박근혜 검증을 주도했던 정두언 전 국회의원도 언론 인터뷰에서 최태민이 육영수 생전에 박근혜를 만났다고 주장했다. 정두언의 얘기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육영수 여사 생전에도 최태민이 박근혜를 만났다는 것이다. 박근혜가 사춘기에 접어들어 공부에 소홀하자 장충식 당시 단국대 총장 부인의 소개로 최태민이 청와대에 들어가 박근혜를 최면술로 치료했다고 한다. 장 총장 부인이 소개했다는 것은 중앙정보부 수사자료에도 나와 있다. 이후 육영수 여사 사후 박근혜가 식음을 전폐하고 있자 박정희 대통령이 몹시 걱정스러워했다. 이때 최태민이 청와대 요로로 청탁을 넣어 ‘큰 영애’를 만났는데 박근혜는 방에서 최태민을 만난 지 20분 만에 활짝 웃는 얼굴로 나왔다고 한다.”(이유주현 김태규, 2016. 11. 23, 9면)

박근혜의 여동생 박근령도 2010년 6월 언론 인터뷰에서 최태민이 육영수 생전부터 박근혜에 접근하려고 했고 실제 만나기도 했다고 밝혔다. 박근령의 얘기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어딜 가면 자꾸 박(근혜) 대표한테 호감을 갖고. 처음엔 고맙게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불필요한 만남은 주변에서 막게 되잖아요. 그래서 그걸 굉장히 막았다는, ‘우리 근혜가 목사를 만나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씀하셨다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친척 중에 한분에게)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만나지 못하게 했다면 이미 그때 만나 일이 있었다는 겁니까?) 행사장에서 한두번. 청와대 생활이라는 게 신원도 알아야 하고 잘못되면 책임을 지잖아요. 청와대 생활하는 가족들은 통제를 받지요. 자유롭게 만난 건 아니지만 유난히 박 대표를 만나려고.”(문갑식, 2016. 12, 180쪽)

박근혜도 초기에는 최태민을 잘 몰라 궁금해 했던 것으로 보인다. 경찰 간부 B씨는 박근혜의 요청으로 최태민을 조사해 보고했다고 증언했다. 경찰 간부 B씨에 따르면 1975년 2월 박근혜는 B씨에게 최태민에 대해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B씨는 이에 최태민을 만나러 갔다. 최태민은 처음 당황했지만 “박근혜의 부탁으로 왔다”는 말에 갑자기 거만해졌다고 한다. B씨는 뒷조사를 통해 최태민이 자유당 시절에 경찰관을 지냈고 정규과정을 밟은 목사가 아니라는 사실 등을 알아내고 박정희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했다. 박정희가 이 내용을 박근혜에게 알려주고 주의를 주자, 박근혜는 B씨에게 전화를 걸어 ‘그럴 수가 있느냐’고 섭섭해 했다고 한다(조갑제, 2006b, 65-66쪽 참고).

1977년 2월25일 서울 이화여고 강당에서 열린 구국여성봉사단 행사 '불우노인 의부모 결연식 및 서울시 12개지부 결단대회'에 참여한 박근혜와 최태민(오른쪽)이 단상 위 의자에 나란히 앉아 있다. 국가기록원
박근혜는 최태민에게서 많은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박근혜는 이후 최태민과 함께 대한구국선교단이나 구국여성봉사단 활동을 벌이며 오랜 인연을 이어가기 때문이다. 실제 박근혜 자신이 최태민에 대해 어머니 육영수가 죽어 흔들릴 때 자신이 흔들리지 않도록 잡아준 ‘고마운 분’이라고 평가했다. 63세의 최태민이 23세의 퍼스트레이디를 ‘포획’한 셈이다. 2007년 7월 언론 인터뷰 당시 박근혜의 평가다. “어머님께서 돌아가신 후 힘들었을 때 내가 흔들리지 않고 바로 설 수 있도록 많이 도와준 고마운 분입니다.”(안승호, 2007. 7, 93쪽; 윤석진, 1993. 11, 198쪽).

최태민은 어떻게 박근혜를 포획한 것일까. 전여옥은 최태민이 박근혜의 권력 욕망을 자극한 게 ‘트리거 포인트(Trigger Point)’였다고 해석한다. 즉 박근혜에게 권력은 ‘공기나 물’ 같은 것이었는데, 최태민이 이 점을 예리하게 간파하고 “당신은 아버지를 이어 이 나라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주문으로 박근혜의 권력욕에 불씨를 던졌다는 설명이다(전여옥, 2016, 117-120쪽 참고). 박근혜와 최태민 두 사람의 인연은 최태민이 죽는 1994년까지뿐만 아니라 최태민의 딸 최순실, 최순실의 딸 정유라까지 40년 넘게 이어진다.

비선권력기록팀=김용출·이천종·조병욱·박영준 기자 brightw@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