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7-05-01 21:46:00
기사수정 2017-05-01 21:45:59
韓 "기존 합의 불변" vs 美 "재협상"… 커지는 '트럼프 리스크'
한국과 미국이 주한미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비용 문제를 놓고 갈등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국은 사드 부지와 기반시설을 제공하고, 미국이 사드 운영·유지 비용을 댄다는 기존 합의가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사드 비용 문제만을 놓고 미국과 재협상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미국은 그러나 기존 합의는 재협상이 이뤄질 때까지만 유효한 것으로 사드 비용 문제를 놓고 한국 부담을 늘리는 방향으로 재협상하겠다고 쐐기를 박았다. 한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맞서 사드 배치 허용 결정을 내렸다가 중국의 경제보복에 시달리는 데 이어 한·미 관계에서도 파열음이 나는 사태에 직면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7일(현지시간) 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사드 비용 10억달러를 한국이 부담하는 게 적절하다는 돌출 발언을 했다. 한·미 국방당국 간 합의를 정면으로 뒤집는 언급을 한 것이다. 한국과 미국의 안보수장인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9일 전화통화를 통해 사드 비용 문제를 둘러싼 갈등 해소에 나섰다.
그러나 두 사람이 통화 이후 상반된 입장을 밝혀 양측의 골이 더 깊어지는 역효과가 났다. 김 실장은 기존 합의에 변화가 없다는 입장을 강조했지만 맥매스터 보좌관은 기존 합의가 재협상까지만 유효하고, 앞으로 재협상을 하겠다고 다른 소리를 했다.
맥매스터 보좌관 등 미국의 외교·안보팀 책임자들은 그동안 사드 비용의 한국 전가 문제를 실무적으로 검토하지 않았다고 워싱턴의 한·미 양국 정부 당국자들이 강조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사드 비용 얘기를 꺼냄에 따라 맥매스터 보좌관 등이 서둘러 사드 비용 문제를 한국과 재협상하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맥매스터 보좌관은 30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게 미국 대통령의 발언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국방부 등 미 정부 당국이 한국과 어떤 합의를 했든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해 한국이 사드 배치 비용을 내도록 하라고 지시하면 참모진은 그 말을 따르는 것 이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설명인 셈이다.
워싱턴의 한 외교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100일을 맞았으나 국내 정치 분야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해 수세에 몰리다가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 폭격으로 점수를 얻었다”면서 “그가 이제 북한 문제로 국민적 지지를 만회하려 드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이 통상 분야에서도 자신이 표방한 ‘미국 우선주의’의 효과를 내지 못했다”면서 “그가 사드 비용 문제와 주한미군 방위비 증액 문제 등을 동일 사안으로 인식하고, 한국 측에 그 비용을 대라고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정부는 한국의 현 정부에 당장 사드 비용을 내라고 요구하지 않겠지만 5·9 대선을 통해 차기 정부가 출범하면 사드 비용 문제 해결을 위한 재협상을 공식 제안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