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일상 톡톡] 후진국형 참사에는 늘 'OO'이 있다

세월호 대참사 이후 우리나라에는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국가 개조' 수준의 안전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의견부터 시작해 다신 이같은 대형사고가 발생해선 안 된다는 다짐과 반성도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3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재난 예방 조치는 여전히 미흡하고, 어이없는 후진국형 안전사고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재난 대응 미숙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재난 전문가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게 가장 큰 이유입니다.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안전법규 손질이나 규칙 준수 등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 때마다 늘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안전불감증'입니다. 안전 당국은 대형 사고의 원인 및 구조(구호) 과정에 대한 문제점을 상세하게 파악해 유사한 사고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앞서 9.11 테러를 겪은 미국은 국가 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안전에 두고, 사회 전반에 걸쳐 안전시스템을 새롭게 구축했습니다. 이는 리더(지도자)의 통찰력과 범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었기에 가능했다는 분석입니다. 또 우리 국민들을 안전하게 지켜내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의지와 자질이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오는 9일 이른바 ‘장미대선’에 출마한 후보들은 '안전강국'의 기초를 닦을 수 있는 보다 구체적이고, 효율적인 안전 관련 공약을 내놓으며, 실천의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에 ‘후진국형 참사’가 속출하고 있다.

안전교육 부재는 물론 늑장 대처 등 악순환 지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지난해 10월 울산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던 관광버스에 불이 나 10명이 숨진 참사는 전형적인 '인재(人災)'였다.

운전기사는 유리를 깰 수 있는 탈출용 망치의 위치를 승객들에게 미리 알려주지 않았고, 버스에 마련된 소화기는 안전핀조차 뽑히지 않을 만큼 관리가 소홀했다.

연기로 가득 찬 버스에서 탈출구를 찾지 못한 승객들은 대피 기회를 놓쳐 끝내 참변을 당했다.

탈출용 망치가 있었으나 안전교육 부재와 이른바 '뒷북' 대책 마련이 되풀이되면서 대형참사는 끊이지 않고 있다.

◆韓 '후진국형 참사' 속출…안전교육 부재, 늑장 대처 등 악순환 지속

또 지난해 9월에는 경기 김포시 장기동의 한 주상복합건물 공사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작업자 4명이 연기에 질식해 숨졌다.

경찰 조사 결과 작업장 안전을 책임지는 현장소장 A(47)씨는 사고 당일 무슨 작업이 진행되는지도 몰랐던 것으로 드러났다.

공사장에서 반드시 지켜져야 할 산업안전보건법 등의 안전규정도 철저히 무시됐다.

A씨는 "매뉴얼대로 작업 전 안전교육을 했다"고 진술했으나, 경찰은 작업자들이 절단기를 시너와 함께 쓰는 과정에서 현장 관리·감독 의무를 소홀히 해 불이 난 것으로 판단했다.

◆"안전조치에 투입되는 예산·시간 '헛된 비용' 아니다"

이처럼 안전 조치에 들이는 예산과 시간을 쓸데없는 비용으로 여기는 인식을 바꿔야 대형참사를 막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세월호 사고만 봐도 국가적인 재난 대응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며 대형참사에 일사불란하게 대처하려면 국민에게 질 높은 안전교육을 제공하고, 평소 사고가 있든 없든 재난 관리 시스템을 꾸준히 손질해야 한다는 것.

교통사고로 인해 부서진 관광버스의 창문 턱에 승객의 것으로 추정되는 등산화가 걸려있다.
지난해 자주 발생한 선박 충돌 사고도 고쳐지지 않는 안전불감증이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해상 사고로 인한 인명 피해가 끊이지 않는데도 여전히 부주의한 운항이나 정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선박을 운항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지난해 12월3일 제주시 한림 북서쪽 9㎞ 해상에서 부산 선적 어선(62t)과 제주 비양도 선적 어선 H호(3.15t)가 충돌해 조업하던 부부가 사망·실종됐다. 해경은 S호가 부주의하게 운항해 고기를 잡던 H호와 부딪친 것으로 보고 사고 경위를 조사했다.

이로부터 5일 뒤 이 사고 해역 인근에서는 제주어선 화룡호가 라이베리아 선적 상선에 들이 받혀 전복됐다. 이 사고로 2명이 숨지고 2명이 실종됐다.

◆안전교육 담당 전문인력 태부족

지난해 제주 해역에서 발생한 해양 사고 416건 가운데 183건(44%)이 정비 불량이었고, 146건(35.1%)이 운항 부주의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기상악화(27·6.5%)·관리소홀(18·4.3%)·화기 부주의(9·2.7%) 등이 뒤를 이었다.

대형 안전사고를 막으려면 현장에서 뛸 수 있는 재난·안전 관리 전문가와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래야만 미래에 일어날 사고를 예측해 막지는 못하더라도 사고가 난 뒤의 인명 피해는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수상레저 이용객이 급증하고 있지만, 안전관리 미비는 늘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공공기관에서 만든 안전 관련 매뉴얼이 무려 5300개나 되는데 정작 그 내용을 제대로 아는 국민은 없다며 결국 현장 중심의 안전교육은 각 지방자치단체가 해야 함에도 그 업무를 맡을 전문가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각종 재난과 사고 대처법을 주기적으로 보도하고 이슈화해 안전교육의 한 축이 되어야 한다며 언론의 역할도 강조하는 주문도 있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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