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눈] 거위 깃털을 더 뽑기 전에

누가 대통령되든 증세 불가피… 서민만 쥐어짜선 안 돼 2012년 미국 대선에서 패배한 밋 롬니 공화당 후보는 캠페인 도중 ‘47% 발언’으로 곤욕을 치렀다.

롬니는 당시 고액 후원자들과 편하게 만난 자리에서 ‘미국인 중에 47%는 소득세를 내지 않으면서 건강보험이나 음식, 집 등을 정부에 의존하려는 무임승차자들(freeloaders)이며 이들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투표할 것’이라는 취지로 말했다. 비공개 모임이었는데 바텐더가 몰래 촬영해서 이 영상을 공개해버렸다. 롬니의 ‘47% 발언’은 민주당 오바마 후보의 ‘부자 증세’ 공약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왜 부자들이 정부에 기생하는 사람들을 위해 돈을 더 내놔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롬니의 발언이 알려지자 소득세 면세 대상자(과세 미달자)들이 벌떼처럼 일어났다. 롬니는 남은 캠페인 기간 내내 ‘47% 발언’을 사과하고 다녀야 했다.


조남규 경제부장
2013년 기준으로 미국의 과세 미달자는 약 5282만명이다. 근로소득자의 35.8%다. 롬니는 여기에 근로소득이 없는 노인층까지 포함시켰다. 과세 미달자든 노인이든 소득세를 내지 않으면서 각종 복지 혜택을 누리고 있다는 롬니의 발언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을 ‘무임승차자’로 규정한 것은 옳지 않다. 이들도 사회보장세나 부동산보유세를 내고 물건을 살 때마다 부가가치세를 납부한다.

한국에서도 과세 미달자 비율이 근로소득자의 48.1%(2014년 기준)에 달한다. 2013년 32.4%였던 과세 미달자 비율이 치솟은 것은 박근혜정부의 책임이다. 2013년 소득세 공제방식을 바꾸면서 연말정산 파동이 일자 부랴부랴 성난 민심을 다독거리기 위해 면세점 이하 근로자 비중을 늘린 탓이다. 그러자 요즘에는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원칙론을 거론하면서 과세 미달자에게도 소득세를 물려야 한다는 주장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소득세만 세금인가. 주민세도 세금이고 소비세도 세금이다. 저소득층의 소득은 대부분 소비된다. 우리 세수에서 소비세 비중이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저소득층의 세 부담은 결코 낮지 않다.

과세 미달자 비율은 좀 더 낮춰야 하지만 그에 앞서 불합리한 조세 체계부터 바꿔야 한다. 박근혜정부 시절 무산된 임대소득 과세는 차기 정부가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 부동산 보유세도 합리적 수준에서 현실화해야 한다. 필자가 미국 체류 시 기거했던 30만달러대 주택의 보유세는 연 5000달러 수준이었다. 한국에선 3억원(공시가격) 아파트 기준으로 재산세 등이 60만원 정도 부과된다. 한·미의 보유세 부과 체계가 같지 않다는 점을 고려해도 한국의 보유세는 좀 더 올릴 여지가 있다. 금융소득에 대한 과세도 손을 봐야 한다. 지금은 금융소득 2000만원까지는 14%의 낮은 세율을 적용해 분리과세한다. 임대·금융소득 과세나 보유세 인상은 이 시대의 화두로 등장한 양극화 해소에도 기여할 수 있다.

프랑스 루이 14세 시절 재무상 콜베르는 “예술적인 과세는 거위가 비명을 덜 지르게 하면서 최대한 많은 깃털을 뽑는 것과 같다”는 조세정책의 경구를 남겼다. 박근혜정부의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이 연말정산 파동 와중에 콜베르의 ‘거위 깃털’ 발언을 인용했다가 몰매를 맞은 것은 박근혜정부가 불합리한 조세 체계는 그대로 놔둔 채 서민과 중산층의 호주머니를 터는 ‘꼼수 증세’에 나섰기 때문이다. 모든 후보가 복지 확대 공약을 내건 이번 대선에서는 누가 당선되든 증세는 불가피하다. 공정한 증세라야 깃털이 뽑히는 거위도 고통을 감내할 것이다.

조남규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