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7-05-07 09:00:00
기사수정 2017-05-06 23:32:35
탄핵정국 맞물려 세대 갈등 심화 / 올해 50대 16만명·60대 26만명 ↑ … 15∼29세 실업률 10.8% 역대 최고… 일자리도 5060이 가장 많이 늘어 / 양질의 일자리 줄어 경쟁구도 조성…“고부가서비스업·4차산업 집중 육성… 청년층 교육 훈련·스타트업 지원을”
한국 사회의 세대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세대 전쟁’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치솟는 청년실업률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맞물리면서 더욱 증폭되고 있다. 5·9 대선 과정에서는 20∼30대 청년층과 60∼70대 고령층의 세대 간 대결 양상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세대 갈등을 보여주는 지표도 수두룩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사회통합 실태 진단 및 대응방안(Ⅲ): 사회통합 국민인식’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 성인의 62.2%는 세대 간의 갈등이 ‘매우 심하다’ 또는 ‘대체로 심하다’고 인식했다. 보사연이 지난해 전국의 만 19세 이상∼만 75세 이하 남녀 3669명을 상대로 9가지 사회갈등에 대해 인식 조사를 한 결과다. 2014년 같은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56.2%가 세대 갈등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지난해 5월부터 7월까지 청소년 총 6653명(남자 3469명, 여자 318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청소년의 세대문제인식 실태조사에서도 향후 세대 간 갈등이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예측하는지 묻는 질문에 ‘지금보다 더 심해질 것’으로 전망하는 견해가 66.6%를 차지했다. 지금보다 더 완화될 것으로 보는 의견은 8.3%에 불과했다.
대통령 탄핵 정국은 세대 간 대결 양상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한국갤럽이 2월 28일∼3월 2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을 앞두고 전국 성인 101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를 보면 19∼29세 92, 30대 95, 40대 89가 탄핵에 찬성했다. 그러나 60대 이상에서는 탄핵 찬성이 50로 떨어졌다. 60대 이상에서는 탄핵 반대가 39로 급상승했다.
최근에는 경기 불황과 맞물려 세대 간 일자리 경쟁도 나타난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최근 우리나라 고용구조의 특징’ 보고서를 보면 올 1분기 증가한 취업자(36만명)를 연령대별로 나눠보면 50대와 60대 이상의 취업자가 각각 16만명, 26만명 늘면서 증가세를 주도했다. 이에 반해 30대 취업자는 3만명, 40대는 4만명 감소했고, 15~29세 청년취업자 수는 1만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연령별 취업 증가 비중으로 보면 △15~29세 2.8% △30대 -8.3% △40대 -10.8% △50대 45% △60대 이상 71.4%를 점유한 것이다. 통계에 잡히는 국내 고용시장이 ‘청년 고용↓, 50∼60대 고용↑’의 연령대별 차별화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앞서 통계청의 ‘2015년 기준 일자리 행정통계’ 결과를 연령대 증가폭으로 살펴봐도 60세 이상 일자리가 1년 전보다 22만1000개(7.9%) 증가해 가장 많았고 50대 이상도 19만6000개(3.8%) 늘었다. 반면 20∼30대는 증가 폭이 미미하거나 오히려 감소했다. 20대 일자리는 3만8000개(1.3%) 늘어났지만 30대에선 오히려 2만5000개(-0.5%), 19세 이하는 8000개(-5.8%) 줄었다.
실업률 추이도 비슷한 흐름이다.
15~29세 청년실업률은 지속적으로 증가해 올 1분기 청년실업률은 10.8%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반면 50대 실업률은 같은 기간 2.2%에 불과하다. 비경제활동인구 중 구직활동을 포기한 ‘쉬었음’에 해당하는 인구도 올 1분기 15~29세 청년층은 1만명, 30~39세 장년층은 1만7000명 증가했지만 50~59세는 줄었다. 일자리로 가는 문이 좁아지면서 무기력증에 빠진 ‘니트(NEET·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족이 늘고 있는 것이다. 인크루트가 최근 구직 경험이 있는 성인 남녀 회원 743명을 대상으로 ‘취업 무기력증’을 설문 조사해보니 구직경험자들이 취업에 대한 의욕을 잃거나 무기력증을 느낀 적이 있는지에 대해 97%가 ‘그렇다’고 답했다.
예정처는 “우리나라 구직자와 고용시장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대책을 마련해 고용정책의 실효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예정처는 청년층의 고용 촉진을 위해 취업에 도움이 되는 역량기반 교육훈련 및 일자리 매칭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청년층 스타트업 지원 등을 통해 경제활력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예정처는 또 고령 구직자와 일용직, 임시직 등 취업 취약계층의 전직 및 재취업 지원을 위한 직업훈련 및 구직기간 중의 생계 지원 방안 등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예정처는 특히 우리나라의 고용창출능력 저하에 대비해 고부가서비스업, 4차산업 등 미래 유망산업을 집중 육성하고 이를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연계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세대 간 일자리 경쟁은 착시 현상이라는 반론도 적잖다. 50∼60대 베이비부머의 고용 증가는 노후 대비가 안 된 이들이 임시·일용직에 마구잡이로 뛰어들고 나홀로 영세 창업에 나서면서 빚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경제성장이 둔화하고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청년과 베이비부머 모두 고통을 받고 있는 현실과 무관하게 통계상으로만 세대 간 경쟁 구도가 조성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 사회 노인 빈곤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통계청과 한국은행,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가계금융 복지조사’ 결과를 보면 2015년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은 61.7%로 전년보다 1.5%포인트 상승했다. 이는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11년 이래 가장 높은 수치다.
올 1분기 50대 이상 창업 중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 증가가 12만명에 달했지만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는 5만4000명 증가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세대전쟁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라며 “청년들이 못 살면 노인들도 어려워지고, 청년들이 잘 살면 노인들도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운명공동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세종=이천종 기자 sky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