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기획] 이번 대선은 과연 '믿는 선거'가 될 수 있을까?

“이번 대선이 끝나고 제3의 기관을 통해 재개표 용의도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제18대 대선 개표 부정의혹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더 플랜’과 관련해 지난달 19일 유감을 표명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더 플랜'은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가 설립한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사 '프로젝트 부'가 제작하고, 최진성 감독이 연출을 맡은 작품이다.

시청인원 150만명을 넘길 만큼 화제가 된 가운데 △ 전자개표기가 판독하지 못한 ‘미분류표’에서 박근혜 후보의 표가 문재인 후보의 것보다 많이 나왔다는 내용 △ 누군가의 해킹이 개표에 영향을 미쳤을 거라는 내용 등이 다뤄지자 일각에서는 향후 선거에서 같은 부정을 막기 위해서라도 수개표를 도입하라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도 지난 1월 투표소 수개표를 골자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대표발의 하겠다고 밝혔다. 선거마다 부정 개표 의혹이 생겨 국민의 의심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는 이유다. 의혹을 불식시키고 선거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려면 기계가 아닌 사람의 손이 개표에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행법상 대선·총선 등 경우 투표가 끝나면 전국 약 1만3000여개 투표소에서 투표함을 시·군·구별로 설치된 252개의 개표소로 옮긴다. 이후 투표지분류기를 이용, 집중 개표하고 있다.

 
제19대 대통령선거 첫 사전투표일인 지난 4일 오전 서울역에 마련된 남영동 사전투표소에서 한 유권자가 투표를 마치고 봉투에 풀을 붙이고 있다.


9일 열리는 대선부터 개표 방법을 바꾸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공직선거법 제172조 1항에 따르면 개표사무는 구·시·군 선관위가 행한다. 전국 지역 선관위 외에 투표함을 열 수 있는 곳이 없다. 법안 발의와 정당 합의, 개정 후 9명의 선관위원으로 구성된 중앙선관위 전체위원회에서 세부 규칙을 정한 뒤 최종적으로 개표 방법이 바뀐다.

무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수개표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건 그만큼 선거 자체를 믿을 수 없다는 시각이 많아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각 지역 선관위의 개표참관인 모집에 폭발적인 인원이 몰리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부정투표감시 시민단체 ‘시민의 눈’ 홈페이지에는 미처 몰랐다면서 지금이라도 개표참관을 할 수 없느냐는 문의글이 쇄도하는 상황이다.

1987년 구로을 투표함 사건을 아는가? 제13대 대선 당시 부정 의혹이 제기된 서울 구로구 선거구 부재자 우편 투표함 말이다.

투표가 끝난 뒤 구로구선관위가 우편함을 옮기는 과정에서 “투표함이 외부로 반출된다”는 제보를 받고 달려온 시민들이 운반 트럭을 둘러쌌다. 선관위가 투표함을 되찾았으나, 개표결과 노태우 당선후보와 김영삼 차점후보 간 194만여표의 차이가 있어 구로을 부재자 투표함에 든 4325표(선관위 당시 추정)가 당락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보고 봉인을 결정했다.

지난해 7월, 서울 종로구 선거연수원 대강당에서 구로을 우편투표함 개함·개표 작업을 실시한 결과 전체 유효 득표수 4243표 중 노태우 당시 민주정의당 후보가 가장 많은 3133표를 얻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 김대중 평화민주당 후보(575표) △ 김영삼 통일민주당 후보(404표) △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후보(130표) △ 신정일 한주의통일한국당(1표) 등의 순이었다. 전체 부재자 신고인 4529명 중 실제 투표인수는 4325명이었으며, 82표의 무효표가 발생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같은해 10월 보도자료를 내고 “구로을 우편투표함 진위 검증에 대한 한국정치학회의 연구용역보고서가 최근 제출됐다”며 “조작되거나 위조되지 않은 정규 우편투표함이었던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봉인 해제를 반대했던 ‘구로구청 부정선거 항의투쟁 동지회’ 소속 회원 일부는 아직도 선관위가 진실을 왜곡한다는 입장이다.

개함을 맡았던 한국정치학회와 선관위 등이 “우편투표함 조기 이송과정에서 공정선거감시단과 시민들이 부정투표함으로 오인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과정에서 사건이 발생했다” “우편투표함의 조기 이송이 법규 위반사항은 아니라도 절차적 부분에 소홀한 선거 관리가 사건의 발단이 된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다” 등 입장을 냈지만 우리 사회의 부정선거를 향한 의심은 아직도 떨칠 수 없어 보인다.

선거를 못 믿기는 유권자들뿐만 아니라 후보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4·13 총선 인천 부평갑 선거구에서 정유섭(62) 새누리당 후보에게 26표 차로 낙선한 문병호(57) 전 국민의당 국회의원의 낙선을 최종 확정한다고 대법원 2부(주심 조희대 대법관)가 같은해 9월8일 밝혔다.

총선 인천 부평갑에 출마했던 문 전 의원은 선거에서 4만2245표를 얻어 4만2271표를 얻은 정 후보에 26표 차이로 졌다. 이에 문 전 의원은 개표 과정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며 총선 일주일 후인 4월20일에 선거무효 및 당선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대법원 검증결과 판정보류표를 제외하고 문 전 의원의 유효득표수는 4만2235표, 당선인으로 결정된 새누리당 추천 정 후보자의 유효득표수는 4만2258표로 확정됐다”며 보류표를 합산하더라도 문 전 후보가 결과를 뒤집을 수는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국민들이 원하는 건 하나다. 투표한대로 결과가 나오고, 모두가 그 결과를 깨끗이 따르는 거다.

하지만 이번 대선을 앞두고도 투표용지가 2종류라는 가짜뉴스가 나오고 사전투표소에서 기표를 잘못했다며 투표용지를 찢어버리는 등 여러 가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는 선거를 믿지 못하게 하고, 의심만 키우는 결과만 낳을 뿐이다. 과연 이번 대선이 끝난 후, 우리는 얼마나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사진=한윤종 기자 hyj0709@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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