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문재인 대통령 당선… 시험대 오른 트럼프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요즘 심기가 몹시 불편하다. 미국 안팎에서 못마땅한 일들이 계속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9일(현지시간) 대통령 당선의 일등 공신으로 꼽혔던 제임스 코미 연방수사국(FBI) 국장을 전격 해임했다. 코미 국장이 지난해 대통령 선거 11일을 남겨 놓은 상황에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이메일 스캔들 재수사 방침을 밝혀 트럼프가 추격할 수 있도록 결정적인 발판을 마련해주었다. 그러나 그런 코미 국장이 트럼프 캠프와 러시아 간 내통 의혹 등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불리한 의회 증언을 계속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그를 제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한 유럽과 아시아의 핵심 국가인 프랑스와 한국에서 7일과 9일에 실시된 대통령 선거 결과에 신경이 곤두서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프랑스 대선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지했던 극우 포퓰리스트 마린 르펜 후보가 중도주의자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에게 패배했다. 한국에서는 대북 정책을 놓고 트럼프 대통령과 대척점에 있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시험대에 오른 트럼프

미국의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9일(현지시간) 문 대통령 정부 출범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정책을 놓고 시험대에 올랐다고 진단했다. 문 대통령은 햇볕정책의 계승자로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강경 정책에 선뜻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WSJ이 전망했다. 미국의 종합지 ‘마더 존스’는 “한국의 새 대통령 때문에 트럼프의 인생이 더욱 고달파졌다”고 지적했다. 마더 존스는 “한국이 미국의 동맹국이지만 문 대통령은 북한 문제 대응 방식에서 트럼프 대통령과는 생각이 전혀 다르다”고 지적했다.

워싱턴 포스트(WP)는 9일자 사설을 통해 “문 대통령의 부상은 아시아에서 벌써 흔들리기 시작한 미국에 또 하나의 도전을 안겨주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고의 압박과 관여’ 정책으로 북한을 압박하려 하지만 문 대통령은 보다 유화적인 대북 접근책을 선호하고 있다고 WP가 지적했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 정책의 주도권을 놓고 경쟁하게 될 것으로 미국 측이 예상하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함께 공세적인 대북 정책을 추진하는데 불만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문 대통령이 뒷좌석에 앉아 미국과 중국 간 협의를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 문제 논의를 주도하기를 바라고 있다”고 전했다.

◆사드의 운명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정권 과도기에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작업을 전광석화처럼 해치웠다. 트럼프는 그런 뒤에 한국에 사드 비용 10억 달러를 내놓으라고 청구서를 내밀었다. 워싱턴 포스트는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사드 배치 작업이 민주적인 절차를 밟지 않은 채 이뤄졌다고 주장했다”면서 “사실 그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문 대통령 편을 들었다. WP는 “야밤에 사드 배치를 강행한 것은 문 대통령의 사드에 대한 유보적인 입장을 의식해 이를 기정사실로 만들려는 선수치기 수법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간 합의를 위반한 채 사드 배치 비용 10억 달러를 한국에 내라고 요구한 것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WP는 “트럼프 대통령이 그런 발언으로 인해 미국에 필요하면 ‘노’라고 말해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전략에 말려들었다”고 평가했다.

미국의 시사 종합지 애틀란틱은 “문 대통령의 취임으로 한·미 관계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문 대통령이 한국의 보수파 대통령과는 달리 트럼프 정부의 말을 잘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진로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끔찍하다며 폐지 또는 재협상 방침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재협상보다는 폐기를 원한다는 뜻을 밝혔다. 트럼프의 이 같은 발언은 비즈니스맨 특유의 허세 전략이라는 게 워싱턴 외교가의 대체적인 평가이다. 트럼프는 선거 기간 내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폐기를 주장했고, 취임 이후에도 그 가능성을 언급하다가 캐나다와 멕시코와 재협상하는 쪽으로 급선회했다. 워싱턴의 한 외교 소식통은 “한·미 FTA가 폐기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고, 지난 5년간의 협정 이행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한·미 양국 정부간에 협상이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트럼프가 사드 비용 청구 및 한·미 FTA를 자신의 발언 그대로 밀어붙이면 그의 대북 정책과 아시아의 핵심 동맹국인 한국과의 관계를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WP는 “한미 관계가 유지되고, 강화될 수 있다”면서 “다만 이것은 트럼프가 조심스럽게 한·미 관계를 다뤄야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