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살아도 산이 그립다] (20) "인성교육은 무슨... 너나 잘하세요!"

옥영경의 마르디 히말 트레킹
... 이처럼 결정적인 전환점에서 요점은 단순히 사느냐 죽느냐가 아니라 어느 쪽이 살만한 가치가 있는가이다. 가령 당신이나 당신의 어머니가 몇 달 더 연명하는 대가로 말을 못한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 당신의 아이가 얼마만큼 극심한 고통을 받으면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말하게 될까? 뇌는 우리가 겪는 세상의 경험을 중재하기 때문에, 신경성 질환에 걸린 환자와 그 가족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해야 한다. ‘계속 살아갈 만큼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폴 칼라니티, <숨결이 바람 될 때; When Breath Becomes> 가운데서) 

<<사진 = 2014년 11월의 피탐 데우랄리>>
<<사진 = 2014년의 로지 하나가 없어졌고, 다르촉(깃발)은 바랬다.>>
<<사진 = 2014년 11월 피탐 데우랄리에서 본 안나푸르나 남봉 산자락>>
<<사진 = 포터 형제. 2014년 11월 20대 초반이었던 이들은 이제 가이드가 되었을까? 동생은 슬리퍼를 신고 ABC를 올랐다. 누가 운동화를 사주면 그걸 팔고 다음에 다시 슬리퍼를 신고 나타난다지.>>
피탐 데우랄리의 밤이다. 트레킹 엿새가 흘렀다. 전화연결이 고르자 여기저기 들어온 문자들이 있다. 어미가 집을 떠나 있으면 바쁠 길을 짐작하여 연락을 잘 않는데, 아들 것도 뜻밖에 있다. 

로지의 사우지도 고등학교를 다니는 두 딸이 있으니 어미들로서 또 할 이야기들이 많다. 착한 우리 새끼, 모든 엄마들이 생각하는 자식이 그렇듯 우리도 그랬다. 그리고, “세상 무슨 일이 일어나도 네 편”, 그 힘으로 우리 새끼들이 힘을 내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우리의 부모님들이 우리에게 그러했듯.

이미 어두워 도착해서 씻고 먹고 나와 보니 헤드 랜턴 불빛 앞을 빼곤 밤에 다 잠겼다. 맞은편 아주 커다란 로지의 창도 밤이 다 먹었다. 거기조차 든 사람들이 없는 걸까. 저 아래 포카라 불빛이 별빛처럼 아스라하다.

2층에 퍽 큰 다이닝룸이 있긴 하지만 테이블이라고 달랑 하나 있는 식당에서 피운 난로 위에 빨래를 널었다. 사우니 사우지도 들어가고 일을 거드는 큰 사내아이도 보이지 않는다. 이제 산의 밤은 바람만이 차지한다. 

아들 생각이 미역줄기처럼 딸려 올라온다. 부모자식이 뉘라고 그렇지 않을까만 각별한 아들이다.

세 돌을 갓 지난 아이 손을 붙들고 3년 동안 외국의 공동체들을 떠돈 적이 있다. 한국에 있던 아비는 아이에게 엄마를 잘 지켜주어야 한다고 늘 말했다.

차를 타고 이동해서 새로운 곳으로 가면 어미는 고단함으로 쓰러졌다. 눈을 뜨면 머리맡에 아이가 앉아 있다 여기는 화장실 불을 어디서 켜고 이 공간은 무엇이며 이 집안에 어떤 게 있고... 미리 집안을 탐사하고 하는 보고였다.

당시 내가 신던 신발은 양옆으로 지퍼가 있는 단화였는데, 먼저 내려선 아이가 내가 신발에 발을 쏘옥 넣으면 저가 싸악 지퍼를 채워주었다. 불도 물도 없는 깊은 숲이었던 호주의 만두카 커뮤니티에서 겁 많은 내가 잘 지낼 수 있었던 것도, 소매치기가 많은 유럽의 중앙역들에서 편히 화장실을 다녀올 수 있었던 것도 그 아이를 기댔기 때문이었다.

“걱정 마세요, 누가 우리 가방에 손대기만 하면 헬프 미, 헬프 미, 큰 소리로 사람들을 부를게요...”  

누군가 가고 누군가 온다. 가기만 하면 지구 위에 사람이 어이 남았겠으며 오기만 하면 바글거려 어찌 살았겠는가. 가장 가까웠던 벗을 백혈병으로 잃고 아이가 뱃속에 온 것을 알았고, 발해항로를 복원하러 갔다 돌아오지 못한, 만주 벌판 광활한 꿈을 같이 이야기했던 선배를 잃은 해에 그 아이는 태어났다. 

함께 보낸 긴 여정의 이국 길 아니어도, 9학년 나이까지 학교를 다니지 않고 산마을에서 그냥 어미 삶을 도우며 살았던 아이여 오달지게 붙어 다녔다. 바깥으로 강의를 갈 때면 그가 랩탑을 챙겨주고, 전래놀이를 가르치러 가면 보조교사노릇을 해주었으며, 산골의 낡고 너른 학교 살림도 그 아이가 거뜬히 한몫했다. “우리 엄마는 아들 일 시킬라고 학교 안 보냈나 봐.”, 그런 소리를 할만치 일깨나 하며 자란. 

당시 아이 또래의 7학년들 열댓이 모여 밤을 보내던 때였다. 

아이들이 우리 아이에게 말했다, 너는 엄마 잘 만나 학교도 안 가고 시험 스트레스도 안 받고... 

“웃기지 마. 대신에 나는 ‘사느라’ 힘들었어. 전기가 나갈까, 보일러가 터질까, 수도가 얼까...”

그런데 그 힘으로 뒤늦게 한 학교공부도 좇아갈 수 있었다지. 일머리가 공부머리도 키워주고, 경험들이 공부로 모여주고, 심심해서 본 책들이 학습에도 큰 도움을 주었단다. 게다 학교 가기 정말 잘했지, 부모를 자랑스러워하고 어미가 하는 일도 더 많이 돕더라, “고3짜리한테 일시키는 엄마는 울 어머니밖에 없을 거야.” 하고 툴툴대면서도. 

동년배의 경험을 자신도 하고 싶다고 선언하고 제도학교를 가려 고교검정고시를 준비하던 8학년 때부터 EBS 강좌의 도움이 컸다. 학원이 어디 있었겠는가, 산골에. EBS 장학생 공모에 그 과정을 써서 냈고, 우수상인가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는 문자였다. 이제 졸업식을 한 친구들과 대놓고 술 약속을 잡아 저녁버스로 읍내 가느라 마구 갈겼다고 타박을 했던 바로 그 글이었다. 

“거 봐, 엄마가 애 안 먹이니까 잘되는 거야.”

그렇다, 부모고 형제이고 벗이고 서로 아쉬운 소리 안하고 저 잘 사는 게 서로를 돕는 것. 부모 자식이 특히 그런 듯. 어미가 잘 살면(멀쩡히 살면?) 아이도 잘 산다!

학년 들머리, 아무래도 아이의 준비를 좀 도와주면 수월할 것을, 어미가 이리 가뿐히 여행길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 새삼 고마웠다. 여행경비도 보탠 그였다. 

제도학교에서 1년을 보내고 이 친구가 갈등했던 시간이 있다, 계속 다니느냐 마느냐로. 갈 때도 “그래, 가렴.” 했고, 안 간다고 할 때도 “그럼, 그러렴.” 했다. 헌데 계속 다니더라. 대학을 가는데 있어 학교(고등학교)를 다니는 게 돈이 젤 적게 들겠더라나.

무사히 대학을 갔다. 괜찮은 대학들에 입학허가를 받은 것도 기특하지만 더 중요한 건 그가 하고팠던 공부를 한다는 것. ‘시 쓰는 뇌생명과학자’, 그의 꿈이다. 

제도학교에 강의를 갈 때면 강사이력에 인성교육지도자 ‘증’을 더한다. 요구하니 내지만 그때마다 낯이 뜨겁다. 인성교육지도자라니, 내가 무슨. ‘인성교육진흥법’, 인성교육을 의무로 규정한 세계 최초의 법이다. 우리, 최초, 그거 참 좋아하지. 2015년 7월부터 지방자치단체, 학교에 인성교육 의무가 그렇게 부여되었다. 인성에 대한 가치를 국가가 개입한다니, 인성을 정량화한다니!

아이들은 가르치는 대로 되는 게 아니더라. 보고 배운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어른은 아이들 앞에 교사이다. 인성교육은 무슨... 우리 어른들이나, 나나 똑바로 살 일이다! 

학교를 안 다니고 있던 아이는 곧잘 턱밑에서 그랬다.

“어머니, 제 교육에도 신경 좀 써주세요.”

“내가 가르치긴 뭘 가르치니, 나나 똑바로 살게.”

산골에서 살아내는 일이 만만찮았고, 돌아보면 살아야 할 다음 날이 또 와 있었다. 다만 착하게 살고자했고, 정성스럽게 살았다. 모자라는 어미를 외려 아이가 채우더만. 

스무 살의 아이는 끊임없이 흔들린다.

“이 나이를 먹어도 흔들려. 사람이 그런 거야, 죽는 날까지.”

그럴 때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지지하며 어려운 시간을 같이 헤쳐 나간다.

“어머니가 계셔서 참 다행이다.”

“아들이 있어 참 다행하다.”

도반이 따로 없다. 근래 우리의 관심사는 ‘계속 살아갈 만큼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이다. 

그런데, 여기는! 아침에 마당을 내려서서야 이곳을 기억해냈다...

(계속)

옥영경(자유학교 물꼬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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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2014년 11월 피탐 데우랄리에서 본 안나푸르나 남봉과 히운출리>>
<<사진 = 피탐 데우랄리를 막 벗어나면서 돌아보니 안나푸르나 남봉, 히운출리, 마차푸차레가 거기! (2014.11)>>
<<사진 = 안나푸르나 남봉과 히운출리를 배경으로 한 2014년 11월의 피탐 데우랄리>>
<<사진 = 피탐 데우랄리를 막 벗어나면서 돌아보니 안나푸르나 남봉, 히운출리, 마차푸차레가 거기! >>
<<사진 = 2014년의 로지 하나가 없어졌고, 다르촉(깃발)은 바랬다.>>
<<사진 = 피탐 데우랄리의 이 로지 뒤로 포레스트 캠프, 왼쪽으로 란드룩으로 길이 이어진다.>>

<세계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