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데우스가 만들 미래… 천국인가 지옥인가

상상 초월한 기술발전… 미래모습 예측불가 / 유전공학·AI·나노 어떻게 사용하느냐 따라 / 인류에 큰 혜택 줄 수도, 인류 소멸 부를 수도 / “죽음과 싸우겠다” 죽음 극복 연구 속속 등장 / 2050년쯤 생체조직 재생… 불멸 시도 전망도 / 인간 자유의지보다 데이터에 의존 시대로 / 인류의 미래는 결국 인류의 선택에 달려
유발 하라리 지음/김명주 옮김/김영사/2만2000원
호모데우스/유발 하라리 지음/김명주 옮김/김영사/2만2000원

지난해 ‘호모 사피엔스’를 발표해 명성을 날린 유발 하라리 히브리대 교수의 신작이다. 전작 호모사피엔스가 인류의 시원을 설명했다면, 이번 ‘호모데우스’는 인류의 미래를 예측한 셈이다. ‘호모’는 사람을 뜻하는 학명이며 ‘데우스(Deus)’는 신(god)을 뜻하니, 호모데우스는 ‘신이 된 인간’이다. 저자가 말하려는 키워드를 간명하게 보여주는 말이다.

저자 유발 하라리 이스라엘 히브리대 교수는 “인류는 생명공학 , 유전공학, 나노공학의 혁명으로 기술 발전의 덕을 보고 있지만, 미래는 인간 자신의 선택 여하에 달려 있다”고 경고한다.
페이팔의 공동창업자 피터 틸은 “영원히 사는 것이 자신의 목표”라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죽음에) 접근하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다. 수용하거나 부정하거나 싸우는 것이다. 수용하거나 부정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겠지만 나는 싸우는 쪽이 좋다”고 했다. 보통 사람의 말이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틸의 말이라면 달리 받아들여진다. 그는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성공했고 가장 영향력 있는 글로벌 기업가 중 한 명이다. 싸운다는 말은 죽음을 정복하겠다는 의미다. 과연 인간은 죽음을 정복할 수 있을까. 유전공학, 재생의학, 나노기술 같은 분야의 아찔한 발전은 점점 낙관적인 예언들을 쏟아내도록 만들고 있다.

2200년쯤 인간은 죽음을 극복할 거라는 연구자도 있다. 죽음을 정복할 시점을 2100년으로 잡는 이도 있다. 아마 2050년쯤이면 몸 건강하고 은행 잔액이 충분한 사람들은 불멸을 시도할 것이다. 이를테면 한 번에 10년씩 죽음을 따돌리는 시도 즉, 병원으로 달려가 개조 시술을 할 것이다. 늙어가는 생체 조직을 재생하고 손, 눈, 뇌의 성능을 높일 것이다. 다음 10년쯤 의사들은 새로운 약물, 성능, 장치를 발명해놓고 기다릴 것이다.

2015년 초 스웨덴 스톡홀름의 첨단기술 단지 ‘에피센터’의 직원 수백 명은 마이크로칩을 손에 이식한 수술을 받았다. 쌀알만 한 크기의 칩에는 개인 보안정보가 들어 있다. 손을 흔들면 출입문이 열리고 복사기가 작동하며, 간단한 결제도 가능하다. 이 프로젝트를 추진한 간부 사원 하네스 쇼발드는 “이미 우리는 수시로 기술과 교류합니다. 아직 엉성하죠, 핀코드와 암호가 필요하니까요. 앞으로 손만 가져다 대면 모든 것이 편하지 않겠어요?”

그러나 저자는 생명공학이나, 나노공학의 발전은 ‘철없는 몽상’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현재 인간 평균 기대수명은 지난 백 년 동안 두 배로 늘었다. 하지만 향후 백 년 뒤 기대수명이 150세가 될 거라고 추정할 근거는 없다. 1900년대 인간의 기대수명은 40세를 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영양실조, 감염병, 폭력으로 일찍 죽었기 때문이다. 그때도 호모사피엔스의 자연 수명은 70∼90세였다. 몇백년 전 사람인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77세에 죽었고, 아이작 뉴턴은 84세에 죽었으며, 미켈란젤로는 항생제, 예방접종, 장기 이식의 도움 없이도 88세까지 살았다. 정글의 침팬지도 병이 없으면 대략 60년은 산다. 사실상 지금까지 현대 의학은 인간의 자연수명을 단 1년도 연장하지 못했다. 지금까지의 의학적 성취는 거의 모든 사람은 90세까지 살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 것뿐이다.

그렇다고 아직 실망하기엔 이르다고 저자는 말했다. 서기 1016년에 1050년의 유럽이 어떤 모습일지 예측하는 것은 비교적 쉬웠다. 왕조는 뜨고 질 것이고, 미지의 습격자들이 침입할 것이며, 자연재해가 닥칠 것으로 예견되었다. 1050년에도 여전히 왕과 성직자들이 유럽을 통치했고, 농업사회이고, 국민 대부분은 농부였다. 농부들은 계속 기아, 역병, 전쟁으로 고통받았다. 반면 2017년의 우리는 2050년의 유럽이 어떤 모습일지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인류는 지금 상상을 초월한 기술 발전의 덕을 보고 있지만, 그것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는 유전공학, 인공지능, 나노기술을 이용해 천국 또는 지옥을 건설할 것이다. 현명한 선택이 가져올 혜택은 어마어마하지만, 현명하지 못할 경우 그 대가는 인류 자체의 소멸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생명공학과 인공지능은 인본주의를 위협하고, 기술인본주의와 데이터 종교(데이터교)가 신흥 기술종교로 자리 잡을 것이다. 이미 인간은 자유의지보다 데이터에 자신을 맡기고 있다. 무슨 의미인가. 자신을 알려면 산에 오르거나 미술관에 가는 대신, 유전자 염기서열을 분석하고 모든 것을 온라인에 올려 ‘위대한 알고리즘’이 자신을 분석하도록 내맡기는 것 등이다. 이미 인간은 자유의지보다 데이터에 자신을 맡기고 있다. 인간의 욕망과 경험 대신 정보, 데이터를 숭배한다. 이미 ‘데이터교’는 기술인본주의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 기술종교다. 유토피아냐, 디스토피아냐를 결정하는 것은 인류의 선택에 달렸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역사, 철학, 문명학 등을 넘나들면서 미래를 예측한 인문학적 편력을 온전히 드러낸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