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7-05-23 22:15:30
기사수정 2017-05-23 22:15:30
구글이 고안한 AI용 칩 사용/타사 비해 연산 속도 몇 십배 ↑/엉뚱한 수 없이 안정적 대국/바둑계 “계산 아닌 예술 수준”
알파고와 커제 9단의 23일 대국은 인공지능(AI)의 눈부신 진화 속도를 확인해줬다. 이날 중국 저장성 우전에서 열린 ‘바둑의 미래 서밋’ 대국에서 구글의 AI 바둑 기사인 알파고는 중국의 자존심이자 세계랭킹 1위인 커제 9단을 손쉽게 무너뜨렸다. 기대를 모았던 파격적인 공격은 이뤄지지 않았으나 알파고는 지난해 3월 이세돌 9단과의 대국 때보다 탄탄하고 안정적인 바둑으로 상대를 궁지로 몰았다. 이날 대국에 나선 알파고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모두 업그레이드됐다. 지난해 이 9단과 대결한 알파고는 1.0 버전이며, 커제 9단과 대국한 알파고는 2.0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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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커제 9단(오른쪽)이 23일 중국 저장성 우전의 국제인터넷컨벤션센터에서 구글의 바둑 인공지능(AI) 알파고와 1차 대국을 마친 뒤 데미스 하사비스 딥마인드 최고경영자와 함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우전=EPA연합뉴스 |
알파고 개발사인 구글 딥마인드는 대국이 끝난 후 알파고 2.0에 2세대 TPU(텐서프로세서유닛)를 사용한 클라우드 서버를 적용했다고 공개했다. TPU는 구글이 고안한 AI용 칩으로 이 9단과 대국 당시에는 1세대를 사용했다. 1세대 TPU를 사용한 알파고도 타사 칩을 쓰는 AI에 비해 연산 속도가 몇십배 빠르다는 평가를 받았다.
구글에 따르면 2세대 TPU는 현존하는 타사의 최정상 AI용 하드웨어와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연산 속도와 효율이 향상됐다. 딥마인드는 “현재의 TPU 버전은 이 9단과의 대결 때에 사용한 연산력(Computing power)의 10분 1밖에 사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1세대의 10배에 이르는 하드웨어 능력을 갖췄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소프트웨어도 개선됐다. 알파고 1.0은 이세돌 9단과의 대국을 앞두고 기사들이 뒀던 16만건의 ‘기보’를 학습해 실력을 키웠지만, 이미 정상급 기사의 실력을 갖춘 알파고 2.0은 혼자 바둑을 두며 더 완벽한 수를 연구했다.
알파고는 기사들의 선호 패턴을 파악하는 ‘지도학습’(Supervised Learning)과 지도학습이 된 신경망들끼리 자체 게임을 갖고 이긴 쪽의 가중치를 강화하는 ‘강화학습’(Reinforcement Learning)을 통해 훈련한다. 이후 ‘셀프 대국’을 통해 예측의 정확성을 향상한다.
국제 바둑계에서는 알파고의 수가 ‘계산’이 아닌 ‘예술’ 수준에 이르렀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성룡 9단은 “지난해에 비해서 알파고가 더 안정적으로 변했다”며 “알파고의 수를 보며 예전에는 좋지 않다고 여겨지던 수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졌다”고 말했다.
이날 알파고의 경기는 AI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 자리로 평가된다. 미국의 유력 IT 전문지인 와이어드는 “알파고가 기보 학습 대신 스스로 바둑을 둬 승리를 거둔 사실은 구글의 AI가 바둑을 포함한 어떤 일이든 혼자 익힐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라고 밝혔다.
데미스 하사비스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개회식에서 “나는 인간과 기계의 대결이라는 사람들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이 대국은) 인간과 기계의 경쟁이 아니라, 기계와 함께 새로운 지식을 탐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엄형준 기자
ting@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