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7-05-25 00:15:50
기사수정 2017-05-25 00:20:23
‘한반도 카드’로 국면전환 우려… 새 정부 어깨 더 무거워져
점입가경이다. ‘러시아 스캔들’ 얘기다. 이번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연방수사국(FBI)의 ‘러시아 내통 의혹’ 수사를 막으려고 정보당국 수장들에게도 압력을 넣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트럼트가 제임스 코미 전 FBI 국장에게 러시아 정부와의 유착 의혹 수사를 중단해 달라고 요구한 데 이어 전방위적으로 ‘러시아 스캔들’ 수사 방해를 시도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트럼프가 백악관 주인이 된 뒤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었지만 이번엔 상황이 심각하다. 미국 최고 ‘칼잡이’가 러시아 스캔들을 다룰 특별검사에 임명됐다. 트럼트가 탄핵 위기에 몰렸다가 사임한 ‘제2의 닉슨’이 되느냐를 두고 논란이 벌어진다.
일이 커진 건 트럼프가 러시아 스캔들을 수사하던 코미를 해임하면서다. 트럼프는 “일을 잘하지 못했다”는 이유를 댔지만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다. 진실을 덮으려는 의도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닉슨이 자신을 조사하던 특검을 해임했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이어 러시아와 비밀 접촉한 사실이 드러난 마이클 플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수사 중단을 요구했다는 ‘코미 메모’가 공개되면서 워싱턴은 벌집을 쑤셔놓은 모양이 됐다. 게다가 트럼프가 동맹국이 준 이슬람국가(IS) 관련 기밀을 러시아에 넘겨줬다는 소식까지 나오면서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대니얼 코츠 국가정보국장(DNI)과 함께 트럼프로부터 러시아와 내통했다는 의혹을 공개 부인하라는 압력을 받았다는 마이클 로저스 국가안보국(NSA) 국장은 트럼프와의 통화 내용을 기록했다고 한다. ‘제2의 코미 메모’가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이번 사태가 탄핵까지 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현재로선 가능성이 낮다. 무엇보다 상·하원을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다. 탄핵안이 통과하려면 하원은 과반, 상원은 3분의 2가 찬성해야 한다. 탄핵을 주장하는 민주당 의원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일부 공화당 의원들도 민주당의 탄핵론에 동참할 뜻을 보이지만 공화당 지도부는 침묵한다. 민주당 지도부도 몸을 사린다. 복잡한 당 내 사정에다 탄핵 문제가 가져올 역풍을 우려해서다.
로버트 뮬러 특검의 수사도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닉슨이 하야하기까지는 2년이 걸렸다. 빌 클린턴에 대한 성추행 고소에서 탄핵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소요됐다. 미국 정치평론가 데이바드 프롬은 “뮬러 특검의 수사는 앞으로 몇 개월이 아니라 몇 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해 대선에서 트럼프를 찍은 ‘샤이 트럼프’도 아직 건재하다. 특검 수사에서 결정적 ‘한 방’이 나오지 않는 한 트럼프를 권좌에서 끌어내리기는 어려워보인다. 지금과 같은 위기 국면이 장기화할 소지도 있다. 미국 시사종합지 애틀랜틱은 “현재 가장 확실한 건 트럼프의 미래가 어느 때보다 불확실하다는 사실뿐”이라고 했다.
이번 사태 여파는 미국에 한정되지 않는다. 불똥이 우리에게 튈 수도 있다. 국내 문제로 곤경에 빠진 트럼프가 국면 전환을 위해 한반도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이 있다. 북핵 문제로 긴장을 고조시키는 시나리오를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각종 악재로 코너에 몰렸다가 ‘시리아 공격 카드’로 반전 계기를 마련했던 트럼프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비용 부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문제에 트럼프의 불확실성까지 더해진 셈이다. 트럼프와 씨름해야 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어깨가 더 무거워졌다.
원재연 국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