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女와 무욕男… 본능과 이성 사이

섹시 코미디 ‘바람에 젖은 여자’
‘바람에 젖은 여자’는 욕망에 솔직한 여자와 무욕을 꿈꾸는 남자의 만남이라는 참신한 설정과 재기 넘치는 스토리가 돋보이는 섹시 코미디 활극이다.

숲 속의 허름한 오두막집에서 혼자 평온하게 살아가던 전직 극작가 고스케(나가오카 타스쿠)와 작은 마을의 카페에서 일하는 시오리(마미야 유키)의 우연한 만남은 시작부터 강렬하다. 유유자적 일상을 보내던 고스케를 향해 자전거를 탄 채 전속력으로 질주해 오던 여자는 그대로 바다에 들어간다. 젖은 상의를 아무렇지 않게 탈의하고 처음 보는 남자에게 하룻밤만 재워 달라며 당당하게 요청하는 시오리는 기존에 보지 못했던 거침없는 여성 캐릭터로 영화에 독특한 힘을 불어넣는다.

이후 못 잡아먹어 안달 난 육식녀와 초식남의 아찔한 본능 배틀이 시작되고 상극인 두 남녀가 서로를 자극하며 벌이는 한판 소동은 에너지를 점차 증폭시켜 나가다가 마침내 관객들을 유혹하고 만다. 둘이서 펼치는 들판 육박전은 비장하고 팽팽한 긴장감마저 조성한다.

거침없는 야성미로 고스케를 극한의 시험에 들게 만드는 욕망녀 시오리의 도발, 그리고 의연한 척하지만 시오리에게 점차 속수무책으로 빠져드는 무욕남 고스케의 진지한 고뇌를 시오타 아키히코 감독은 매우 관능적이면서도 몹시 유쾌하게 비벼냈다.

자신의 욕망에 당당한 주체적 여성상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남성적 관점에서 벗어나 기존 성인영화 속 통념을 재치있게 전복시킨다. 여성의 성(性)적 가치에 대한 폭넓은 시선을 제시하는 ‘페로티시즘(F-eroticism) 무비’로서 의식 혹은 무의식으로 금기시해왔던 여성들의 욕망을 솔직하게 거론한다.

‘로포리 프로젝트’ 1탄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로망포르노 리부트 프로젝트’의 준말로, 일본에서 만들어진 새 로망포르노 영화를 국내 개봉하는 것이다.

1970∼80년대 일본 영화계의 황금기를 이끌며 수많은 마니아층을 형성한 니카츠 스튜디오의 ‘로망포르노’ 제작 45주년을 맞아 그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프로젝트로, 현 일본 영화계를 대표하는 거장 감독 5인이 각자 ‘여성’에 관한 색(色) 다른 시선을 제시한 작품들을 묶어 소개한다.

‘로망포르노’는 전문화된 영화 제작시스템에 따라 만들어진 핑크무비로, 작품성과 상업성을 동시에 지녀 일본 영화 시장의 40%를 점유하는 등 1980년대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25일 개봉한 ‘바람에 젖은 여자’를 이어 6월15일에는 소노 시온 감독의 ‘안티포르노’, 7월 6일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로 친근한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의 ‘사랑과 욕망의 짐노페디’, 7월 27일 시라이시 가즈야 감독의 ‘암고양이들’, 8월 17일 공포영화 ‘링’시리즈를 연출한 나카다 히데오 감독의 ‘화이트 릴리’가 개봉된다. 

김신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