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7-05-25 19:25:02
기사수정 2017-05-25 23:50:12
5회 바뀌어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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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지부 전담 아닌 범부처 협력 절실 / 담당 공무원 2명인 현실부터 바꿔야 / 광주시, 예산 투입 자살률 30% 낮춰 / “정부, 투자하면 개선” 인식 변화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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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전국 17개 시·도 중 자살사망률(10만명당 자살자 수) 5위(30.7명)에 올랐던 광주광역시는 2015년 16위(19.8명)로 떨어졌다. 가장 낮은 세종시(19.7명)와 간발의 차이였다. 청소년과 노인의 자살사망률은 각각 5.2명, 50.1명으로 7대 특별시·광역시 중 최하위였다. 불과 5년 만에 자살률이 눈에 띄게 준 것이다. 이는 광주시가 ‘자살 없는 광주’를 슬로건으로 내세워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535억원을 집중 투입한 결과다.
부실한 계획과 쥐꼬리만한 예산, 턱없이 부족한 인력 등 자살예방에 관한 한 총체적 난국 탓에 ‘자살공화국’ 오명을 벗지 못하는 정부가 광주의 사례를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관련 전문가들도 “정부가 의지만 있다면 자살률을 낮출 수 있다”는 데 이견이 없었다.
◆“대통령이 앞장서 범정부적으로 대응해야”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자살예방사업을 책임감 있게 추진할 조직 구성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에 자살예방 담당 공무원이 달랑 2명뿐인 현실부터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연세대 송인한 교수(사회복지)는 “2003년 이후 자살률이 세계 최고인 국가적 재난상태인데 정부가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복지부의 담당자가 2명뿐이니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중앙조직 내 자살예방 전담부서조차 없는 현실을 보면 과연 정부가 자살예방에 관한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강조했다.
자살예방대책추진위원장을 역임한 푸르메재단 강지원 이사장은 범정부적인 대응을 주문했다.
강 이사장은 “자살 문제는 한 부처에서 해결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며 “자살이 군전력 손실로 이어지는 국방부, 관련 교육을 담당해야 하는 교육부, 고용과 관련한 고용노동부, 문화예술적으로 여러 시도를 할 수 있는 문화체육관광부 등 여러 부처가 협업해야 하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어 “복지부 혼자 이 거대한 문제를 해결하도록 한 것 자체가 국가에서 사실상 자살을 방치하고 있는 것”이라며 “총리실 산하도 유명무실한 경우가 많으니 대통령 직속으로 범부처 협력을 끌어낼 수 있는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투자가 곧 개선이다
자살에 대한 인식을 ‘어쩔 수 없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투자하면 반드시 개선된다’고 바꾸는 것도 중요하다. 1990년 우리나라 자살사망률은 8.8명으로, 일본(17.5명) 미국(13.1명)보다 낮았으나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며 방치하다 세계 1위가 됐다는 분석이다.
경희대 백종우 교수(정신건강의학)는 “1990년대 1만명을 넘었던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20여년이 흘러 5000명 아래로 떨어진 것은 정부가 교통시스템 개선과 에어백 설치, 안전벨트 의무화 등 안전문제에 크게 투자한 덕분”이라며 “많은 선진국이 그랬듯 자살문제도 관심을 갖고 투자를 늘리면 분명 개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경제적 빈곤이나 스트레스, 인간관계 단절 등은 살면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문제”라며 “정부 차원에서 이러한 위기상황에 대해 적절한 조치가 취하고 있는지,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필요한 해결책이 무엇인지 등 구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복지나 일자리 등 거시적인 문제해결 고민만이 아니라 충동적으로 자살을 시도하지 않도록 미시적인 대책을 제대로 세우는 게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중앙자살예방센터 신은정 부센터장은 “자살수단 접근 차단 등 정부에서 자살예방에 초점을 맞춰 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며 “번개탄 판매방식 개선과 일부 제초제의 생산 금지를 포함한 강력한 농약관리 등은 실제 성과를 거둔 바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자살예방의 기술적인 부분에 대한 연구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복지부 관련 예산이 2억원 정도에 그치는 등 ‘한국형 자살예방’에 대한 연구가 크게 부족한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민간영역 활용한 예방네크워크 구축해야”
전국의 자원봉사센터와 사회복지단체 등 민간영역에 구축된 자살 예방 관련 인프라들을 유기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정부가 예산 탓만 할 것이 아니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의료기관, 연구기관 등 제각각 하고 있는 사업과 역량, 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한다면 시너지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생명의전화 하상훈 원장은 “전문성을 갖추고 있는 민간영역을 정부가 전혀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며 “과거 서울시에서 자살률 상위 네 번째였던 성북구는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해 ‘마음돌보미’, ‘마음가족’ 등 제도를 마련한 뒤 강북지역에서 자살자 수가 가장 낮아졌다”고 설명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이상영 선임연구위원은 “자살예방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고위험자들을 발견해 조기에 조치하는 것”이라며 “일선 보건소를 비롯해 지역단위 민간단체, 지자체 등이 연계해 정교한 자살예방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처럼 정신보건센터에만 예방사업을 맡길 것이 아니라 지역 내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맞춤형 모형을 만드는 등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사회부 경찰팀=강구열·박현준·남정훈·박진영·김범수·이창수·배민영 기자 winterock@segye.com
사진=남제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