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세이] 비즈니스 언어로서의 ‘검토하다’

세계 어디에서나 비즈니스나 협상을 할 때 상대방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상대방의 의중을 올바르게 읽지 못한다면 동문서답으로 대화가 겉돌게 될 것이다. 이런 면에서 일본인과의 비즈니스나 협상에서 쉽지 않은 점은 일본인의 생각을 꼭 집어서 이렇다고 단정짓기 어렵다는 것이다. 일본인의 표현에는 애매모호한 것이 많고, 그중에서도 외국인으로서 그 숨은 뜻을 파악하기 어려운 표현 중의 하나가 ‘검토하다’가 아닐까 생각한다. 일본에서 ‘검토하다’의 의미를 정확히 읽어낼 수가 있다면 비즈니스나 협상에서 절반은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특파원 시절에 자위대에 관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꼭 제작하고 싶었다. 자위대 취재를 위해서 방위성에 전화와 문서로 프로그램 제안서를 보냈다. 그리고 일주일 후 홍보담당자로부터 ‘검토하겠다’의 답변을 받았다. 보통 취재 신청을 하면 취재를 받는 쪽에서는 취재에 응하겠다 혹은 거절하겠다고 답변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검토하겠다’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왕현철 전 KBS JAPAN 사장·도쿄특파원
나는 그 의도를 보다 더 면밀하게 파악하기 위해서 방위성을 방문해서, 검토할 내용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주면 자료를 보완하겠다고 요청을 했으나 담당자는 자신이 보낸 문서대로 ‘검토하겠다’의 앵무새 답변만 되풀이했다. 별무 소득 없이 방위성을 나와야 했다. 지인인 NHK PD에게 이에 대한 자문을 받고, 나의 취재 제안을 거절한다는 에두르는 표현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고 해서 취재를 완전히 거절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참으로 그 진의를 파악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원점에서 협상을 시작해서 3개월간 약 10번의 문서로 끈질긴 줄다리기가 있었고, 방위성의 최종 답변서가 왔다. ‘전향적 검토’를 하겠다는 것이다. ‘검토’에서 ‘전향적’이라는 단어를 앞에 붙여서 취재를 승인하겠다는 의사표시였다. 즉 ‘예’와 ‘아니요’가 아니라 ‘검토’와 ‘전향적 검토’로 자신의 의중을 밝힌 것이다.

나는 처음에는 일본인의 애매모호한 표현에 익숙지 않았고, ‘검토하다’처럼 자신의 입장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그러나 일본에서 비즈니스를 하면서 이러한 애매모호한 표현이 말과 행동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신뢰를 쌓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가령, 비즈니스나 협상을 할 때 어떤 제안에 대해서 처음에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거절했다가 나중에 상황이나 입장이 바뀌어서 그 제안을 다시 받아들일 경우 자신의 말을 번복해야 한다. 곤혹스럽고 신뢰를 잃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인가 여지를 남기는 애매한 표현은 나중에 상황이 바뀌어 입장을 바꾸어야 할 경우 말을 바꿀 필요가 없기 때문에 행동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즉 일본에서 ‘검토하다’는 어떤 일을 ‘하다’ ‘안하다’라는 명확한 답변을 하는 것이 아니고 말 그대로 ‘검토’ 그 자체가 하나의 답변이 되는 것이다. 다만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면 그 결과가 언제 나올지 모르는 검토이기 때문에 하릴없이 속이 타는 기다림이 될 수도 있다.

일본에서 ‘검토하다’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거나 검토해서 빨리 결론을 내 달라고 서두르는 나머지 일본인과 비즈니스를 이어가지 못하는 분들을 주위에서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일본의 비즈니스 현장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검토하다’처럼 애매모호한 표현이 우리에게는 익숙지 않지만 일본의 문화를 이해하면 손해 보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왕현철 전 KBS JAPAN 사장·도쿄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