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7-05-27 03:00:00
기사수정 2017-05-26 22:06:36
시험국민의 탄생/이경숙 지음/푸른역사/2만5000원
한국인의 인생은 가히 시험의 연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교에 처음 입학하는 순간부터 입시와 취업, 승진 등 각종 시험들이 이어진다. 한국인이라면 시험으로 좌절하거나, 희망을 그려보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다.
시험을 잘 치고, 많이 치는 한국인은 시험에 대한 생각이 복잡하다. 불공정한 세상에서 그나마 시험이 아니면 무엇으로 사회적 성공을 거둘 수 있겠냐고 따진다. 또 다른 한쪽에서는 시험마저도 불공정하다고 지적한다. 분명한 것은 한국인들은 지금도 시험과 시험 사이의 어딘가에 있다는 것이다.
시험을 연구해 온 교육학자 이경숙은 시험을 ‘한국인의 사회적 DNA’로 규정한다. 그는 신간 ‘시험국민의 탄생’에서 1000년에 이르는 시험의 역사를 돌아보고, 한국인에게 시험이 갖는 의미를 살펴본다.
우리 역사에서 시험은 약 1000년 전인 958년 고려 성종 때 처음 등장했다. 가문의 배경 없이 유능한 인재를 발탁하겠다는 과거시험이 처음 도입되면서다. 과거제는 1894년 갑오개혁으로 폐지됐지만, 이후 다양한 모습으로 부활했다. 해방 이후 미국의 영향으로 ‘과학적 평가운동’이 전개됐고, 객관식 시험법이 도입됐다. 한국전쟁 중에는 국가 차원에서 중학교 입학시험을 객관식으로 치렀다. 1961년 군사쿠데타 직후부터는 학사자격시험과 대입시험을 사지선다형으로 보기 시작했다. 객관식 시험의 틀은 과거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영어를 중심으로 외국어에 보이는 집착도 비슷하다. 한문이 필수였던 시대를 지나,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세력에 따라 일본어나 러시아어를 공부하기도 했다. 이는 과거에도 외국어가 벼슬에 필요한 능력이었음을 보여준다. 그중에서도 영어는 꾸준한 과목이었다. 1939년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가 대입에서 영어시험을 제외하기도 했지만, 해방 후 영어는 입시의 필수과목으로 부활했다. 이후 70여년간 가장 중요한 시험과목 중 하나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저자는 우리 사회에서 시험공부가 학습의 일환으로 여겨지면서, 교육을 대체하는 역할을 했다고 분석한다. 한국인들은 시험이 없는 사회에 살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시험 없이 공부하는 방법도, 사람을 뽑는 방법도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시험은 국가기관에 의해 손쉬운 통제장치로도 이용됐다. 과거제는 응시자들의 사고를 통일시킬 수 있는 지름길이자 유학 사상을 심어주는 유용한 제도였다. 현대에는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와 결탁한 서열화 장치로 기능한다.
저자는 인공지능 시대 새로운 사회를 구상할 시점에 시험은 해법이 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이제는 시험 점수로 인간을 서열화하고 등급화해 모든 것을 부여하는 방식 자체에 대한 싸움을 벌여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궁극적으로 시험결과가 공정하고 투명해지더라도, 사회가 살 만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권구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