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7-05-31 18:40:20
기사수정 2017-05-31 22:25:31
YS 취임 동시에 육참총장 경질/3개월 동안 파격 거듭하며 진행/盧정부선 국방개혁으로 각 세워/MB땐 합동성 강화문제로 논란/박근혜정부, 개혁 대신 중용·우대
1993년 군사정권이 막을 내린 뒤 탄생한 역대 정권과 군은 갈등의 흑역사를 반복해 왔다. 보수의 아이콘이었던 군은 늘 개혁의 대상으로 지목됐고 수난을 겪어왔다.
대표적인 예가 김영삼정부 때 단행된 군내 사조직 하나회 척결을 들 수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자신도 퇴임 후 회고록과 기자회견 등 공식, 비공식 자리에서 하나회 척결을 가장 큰 업적으로 꼽기도 했다. 하나회 척결 작업은 1993년 대통령 취임 10여일 만인 3월 8일 하나회 출신인 김진영(육사 17기) 육군참모총장과 서완수(〃 19기) 국군기무사령관을 전격 경질하면서 시작됐다. 이른바 숙군(肅軍)의 신호탄으로 군을 충격에 몰아넣었다.
하나회 척결은 이후 3개월여 동안 파격을 거듭하며 전광석화처럼 진행됐다. 3공에서부터 5공, 6공에 이르기까지 군내 막강 사조직으로 탄탄하게 뿌리를 내린 하나회 척결은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국민의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을 정도로 강력했다.
노무현정부는 2006년 국방개혁을 통해 군과 각을 세웠다. 국방개혁의 법적 기틀을 만들어 이행 강제력을 높인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특히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이 핵심 이슈였다. 당시 국방개혁 목표는 한국군을 첨단 정보과학군과 저비용·고효율의 경제군으로 전환하고, 한국의 위상에 부합하는 선진 국방을 이룩하며, 국민의 군으로 변모시켜 정예강군을 육성한다는 데 맞춰졌다. 이의 일환으로 전작권을 2012년 전환하기로 한 것이다. 당시 보수 진영에선 전작권 전환이 한·미연합사 해체를 의미해 안보 공백을 초래하고 한·미동맹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며 강력 반발했다. 결과적으로 이명박·박근혜 보수정권을 거치면서 두 차례 전환 시기가 연기되면서 수포로 돌아갔다.
이명박정부도 군의 합동성 강화에 공들였다. 육군 위주로 된 군을 개혁하려는 취지였다. 육·해·공군 통합 상부 지휘구조 개편작업을 추진했다. 북한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 등 안보상황 변화로 개혁의 동력을 잃었다. 전작권 전환은 북한 위협 증대를 이유로 2015년으로 연기했다.
박근혜정부에서도 국방개혁을 내세웠으나 소극적이었다. 대신 군인들을 중용하며 우대했다. 북한의 위협이 증대된 이유도 있었다. 전작권 전환도 한국군의 능력 충족을 조건으로 사실상 2020년대 중반으로 미뤘다.
박병진 군사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