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미의영화산책] 슈퍼컴이 연 판도라의 상자

과학기술의 발전은 절대로 되돌아가는 선택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제4차 산업혁명 시대’로 진입했고, 그 이전의 삶의 양식으로 되돌아가기 어렵다.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가 모든 분야의 큰 화두가 돼버린 지금, 이것이 우리를 압박하며 몰아가는 괴물인가, 누려야 할 혜택인가를 고민할 시기마저 이미 놓쳐버린 듯하다. 정보통신기술(ICT)의 발달로 스마트 기계가 인간의 생산과정과 환경에 큰 변화를 일으킨 혁신을 일컫는 이 말은 우리 삶의 양식 전체를 바꾸어놓는다.

점점 발전해 가는 스마트폰과 사물인터넷(IoT)은 이제 얼리어댑터만의 선택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문제가 됐다. 집안이나 집밖에서나 상관없이 스마트폰으로 집안의 모든 물건을 조작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스마트 시티’는 도시 전체가 스마트 시스템으로 작동된다면서 우리를 유혹하기에 이르고 있다.

황영미 숙명여대 교수·영화평론가
이런 변화에 대한 가장 큰 우려는 인공지능(AI)이나 스마트 기계가 우리의 직업을 빼앗아갈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또한 지적·물리적 자본을 제공할 수 있는 사람과 단순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을 더욱 양극화시킬 것이며, 종국에는 공상과학(SF) 영화에서처럼 인간이 기계의 종이 될 결과까지 초래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문제는 이제 우리는 이러한 변화를 알게 모르게 당연하다고 받아들이게 됐다는 것이다. 작년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의 대국에서 이겼을 때, 많은 사람이 AI가 인간을 지배할 시대가 시작됐다며 충격에 휩싸였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더욱 강해진 알파고가 세계 최고의 바둑기사에게 연승을 해도 별반 놀라지 않는 분위기다. 빠른 변화에 적응해 가는 인간의 적응력이 놀랍기만 하다.

그렇다면 날로 발전해가는 스마트한 세계가 결국 어디까지 이르게 될까 자못 궁금해진다. 영화는 현실의 갈등상황을 그리기도 하지만, 상상 속에서만 발생하는 문제도 다룰 수 있는 매체이며, 많은 SF 영화에서는 해답을 미리 제시하고 있다.

조니 뎁 주연의 ‘트랜센던스’(감독 윌리 피스터)는 인간의 뇌파를 컴퓨터에 접속시킨 슈퍼컴퓨터를 눈앞에 제시하고 있다. 천재 과학자 ‘윌’은 연인 ‘에블린’과 함께 원숭이의 뇌를 컴퓨터에 업로드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지만, 기술 발전을 부정적으로 보는 반과학 테러단체의 공격으로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된다. ‘에블린’이 뇌만 살아 있던 ‘윌’의 뇌파를 컴퓨터에 업로드하게 되자, 스스로 진화하는 슈퍼컴퓨터가 된 ‘윌’은 점점 자신의 접속범위를 넓혀가기 시작한다.

영화 속 이 슈퍼컴퓨터는 IoT가 하는 일은 기본이며, 심지어 나노기술을 사용해 입자를 통해 모든 물질에 접속해 인간의 신체뿐 아니라 자연현상까지 접속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면서 신의 영역까지 도전하는 능력을 지니게 된다. 테러방지를 위해 전력을 너무 많이 쓴 ‘윌’은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에블린’을 구하기 위해 자신에게 배터리를 연결시켜달라고 하지만 ‘에블린’은 이를 거절한다. 신의 힘을 지닌 슈퍼컴퓨터가 인간을 지배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인간이 무한 발전해 신의 능력에 도전하는 것을 우려한다. 인간을 초월하는 슈퍼컴은 이제 판도라의 상자까지 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 볼 때다.

황영미 숙명여대 교수·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