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7-06-02 20:37:26
기사수정 2017-06-02 21:30:57
조선왕조실록·조선왕실의궤 반환 주역… 혜문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
2014년 4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한국을 방문하면서 뜻깊은 선물을 들고 왔다. 6·25전쟁 당시 미군에 의해 반출된 대한제국 국새 등 인장 9점을 한국에 반환한 것이다. 그러나 같은 시기 유출된 ‘문정왕후 어보’는 돌아오지 못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박물관(LACMA)이 소장 중이던 문정왕후 어보가 우리 정부의 수사 의뢰로 미 국토안보수사국에 압수당했기 때문이다.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문화재제자리찾기 사무실에서 만난 혜문(44) 대표는 당시 반환되지 못한 문정왕후 어보에 대해 “정부의 행정 미숙이 빚은 참극”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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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문화재제자리찾기 사무실에서 만난 혜문 대표는 6월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정왕후 어보의 반환을 위한 양국 간의 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상윤 기자 |
혜문 대표는 당초 문정왕후 어보의 반환 결정을 이끌어낸 일등공신이었다. 2009년 미 국무부의 기록인 ‘아델리아 홀 레코드’에서 문정왕후 어보가 도난품이라는 기록을 찾았고, 2010년부터는 반환운동을 전개했다. 2013년에는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LACMA를 찾아가 두 차례 협상 끝에 문정왕후 어보 반환 결정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문정왕후 어보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민간기관이 협상을 벌이던 중 우리 정부가 수사를 의뢰하면서, 반환 자체가 불투명해진 것이다. 당시 압수당한 문정왕후 어보는 약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 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당초 혜문 대표는 LACMA 측에 “수사가 아닌 협상”을 요구했다. 혜문 대표는 “수사과정을 거칠 경우, 어보의 반환이 언제 이뤄질지 장담할 수 없다”며 “문화재 반환은 외부요인에 많은 영향을 받기 때문에, 받을 수 있을 때 돌려받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당시 문정왕후 어보를 경매로 구입해 전시 중이던 LACMA 측도 자발적으로 돌려줄 뜻을 밝혔다. 그러나 문정왕후 어보가 압수당하면서, LACMA 측은 본의 아니게 장물을 취급한 것으로 이미지 훼손마저 당하게 됐다. 혜문 대표는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됐다면 지금쯤 어보가 한국에 돌아와 있을 것”이라며 “민간이 진행한 협상에 뒤늦게 끼어든 정부가 찬물을 끼얹은 셈”이라고 지적했다.
혜문 대표는 이달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정왕후 어보의 반환을 위한 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어보가 양국의 이전 정부에서 정상회담을 통해 반환될 예정이었다”면서 “양국의 차기 정부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상회담과 같은 시기적 요인을 활용한다면, 추후 상징적인 사례로 남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혜문 대표는 문정왕후 어보 외에도 도쿄대가 소장했던 조선왕조실록과 일본 왕궁에 은닉된 조선왕실의궤를 환수하는 데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혜문 대표는 “문화재 환수에는 협상과 경매, 기증 등 다양한 방법이 있다”면서도 “국보급 문화재를 환수하기 위해서는 외교적 해결을 위한 정부의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문화재청 산하의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대해 “정부 차원의 조직인 것에 비해 문화재 환수에 대한 큰 그림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혜문 대표는 “문화재청과 재단이 환수한 문화재 대부분이 경매를 통해 사들인 것”이라며 “정부가 돈을 주고 사온 문화재는 진정한 의미의 ‘환수 문화재’가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문화재 환수를 위해 주변적인 방법보다 외교적인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혜문 대표는 “문화재 반환에 있어서는 미국과 일본에 차이가 없다”고도 말했다. 그는 “국외문화재 대부분이 일제강점기나 6·25전쟁 때 일본이나 미국으로 넘어갔다”면서 “국외문화재가 가장 많은 곳은 일본이지만, 미국은 거리상의 이유로 실태조사나 협상 자체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문화재를 되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다른 문화재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 의미에서 “국립중앙박물관이 보유한 ‘오타니 컬렉션’을 중앙아시아로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타니 컬렉션은 일본 승려 오타니 고이즈가 중앙아시아에서 반출한 문화재로, 총독부 박물관에 전시하다 한국에 남게 된 것들이다. 혜문 대표는 “우리 문화재가 해외에 있더라도, 그것은 명백히 한국의 문화재”라며 “우리 문화재가 소중하듯, 다른 문화재도 존중하는 차원에서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