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7-06-04 08:00:00
기사수정 2017-06-03 17:09:32
북극성-2, 화성-12, 무수단, 정밀 조종유도체계 탑재 탄도미사일, 스커드-ER…. 북한이 올해 들어 발사한 탄도미사일들이다. 시험발사가 이뤄졌으나 정확한 기종이 알려지지 않은 경우까지 합치면 그 종류는 더욱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여기에 북한이 지난 4월 15일 김일성 생일 105주년 열병식에서 등장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2종까지 합치면 북한의 탄도미사일은 단거리부터 장거리까지 말 그대로 ‘미사일 컬랙션’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하다. 김정일 체제에서 노동, 대포동 정도만 눈에 띄었던 점에 비추어보면 대조적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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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새로 개발한 정밀 조종유도체계를 도입한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참관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지난달 30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
이제 북한에게 남은 과제는 ICBM 정도다. 미국 본토를 타격할 능력을 입증하겠다는 북한의 집요한 의지는 국제사회의 전방위 제재 속에서도 끄떡없다. 이같은 미사일 올인 전략은 자신의 생존을 지켜줄 유일한 수단은 미사일이라는 인식과 북한의 미사일 능력에 대한 미국의 불신에 의한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 “동쪽으로 VS 서쪽으로”…북한과 미국의 미사일 대결
북한은 올해 들어 화성-12 중거리 탄도미사일과 북극성-2 준중거리탄도미사일(MRBM), 스커드-ER 단거리 탄도미사일, 스커드 개량형 미사일 등을 계속 쏘아올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탄도미사일 타격 범위는 미국 본토 쪽으로 계속 확장되고 있다. 1990년대 개발돼 운용기간이 20여년이 지나 주요 구성품들이 노후한 노동미사일(사거리 1300㎞)은 스커드 미사일의 사거리를 연장한 스커드-ER(사거리 1000㎞)과 북극성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지상형으로 개조한 북극성-2(2000㎞)로 대체되고 있다. 이 미사일들은 일본 본토와 주일 미군기지를 사정권에 두고 있다. 한반도 유사시 가장 먼저 출동할 미군 전력이 집결해 있는 일본 본토를 공격해 미국의 한반도 개입 시기를 최대한 늦추고, 미국 본토 공격 능력이 없는 상황에서 주일 미군기지 타격 위협을 통해 미국의 강경책을 견제하려는 포석이다.
북한은 또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수차례 시험발사됐으나 실패를 거듭해 기술적 신뢰성이 땅에 떨어진 무수단 중거리탄도미사일(사거리 3000㎞)을 대신해 비행거리 등 주요 성능이 전반적으로 향상된 화성-12(5000㎞) 시험발사에 성공했다. 이에 따라 북한은 일본은 물론 아시아태평양 지역 주둔 미군의 핵심 거점인 괌과 미국 알래스카 서부 일부 지역을 타격할 능력을 확보했다. 여기에 정확도를 높여 오차를 7m 범위까지 좁힌 개량형 스커드 미사일 시험발사도 성공했다. 사거리가 1000㎞ 정도로 추정되는 이 미사일은 해상에서 작전을 펼치는 미국 핵항공모함을 타격할 수 있는 대함탄도미사일(ASBM)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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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13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을 통해 공개한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북극성 2형'의 발사 장면 사진. 북한 관영매체들은 이날 "우리 식의 새로운 전략무기체계인 지상대지상 중장거리 전략탄도탄 북극성 2형 시험발사가 2017년 2월 12일 성공적으로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연합뉴스 |
단거리부터 중거리에 이르는 모든 방식의 탄도미사일을 개발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냉전 시절 미국과 구소련이 미사일 경쟁을 펼치면서 이같은 방식을 사용했지만 현재는 중국만 모든 종류의 탄도미사일을 운용한다. 북한은 스커드에서 ICBM에 이르는 미사일을 모두 실전배치해 한국, 일본, 미국을 사정권에 넣으려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미사일 위협이 지속되자 미국도 ICBM 요격 시험으로 맞섰다. 미국 국방부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간) ICBM 공격을 가정한 지상발사요격미사일(GBI) 시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GBI는 반덴버그 기지에 4기, 알래스카주 포트 그릴리 공군기지에 32기가 배치돼 있다. 미국이 ICBM 요격 시험에 나선 것은 처음이다. 지상발사요격미사일은 미국 동부시간으로 이날 오후 3시30분(한국시간 5월 31일 오전 4시30분) 캘리포니아주 반덴버그 공군기지에서 발사됐다. 요격미사일은 태평양 마셜군도에서 날아오른 가상 ICBM을 격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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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지난달 14일 신형 지상대지상 중장거리 미사일 '화성-12형'의 시험발사에 성공했다고 북한 노동신문이 지난달 15일 보도했다. 사진은 북한이 발사한 직후의 화성-12의 모습. 연합뉴스 |
이번 시험은 북한의 ICBM 공격 가능성에 대응할 수단을 갖췄다는 측면에서 ‘최고의 압박과 관여’라는 미국의 대북정책을 지속할 수 있는 동력을 제공했다는 평가다. 항공모함 칼빈슨의 무력시위와 B-1B 전략폭격기의 지속적인 한반도 전개 등으로 북한을 강하게 압박하는 한편 방어 체계를 구축해 미국 본토 공격 가능성을 차단하는 미국의 전략도 탄력을 받게 됐다.
◆북한 “내 실력을 못 믿어? 그럼 믿게 해줄게”
군과 정보 당국은 북한의 미사일 개발 속도가 일반적인 상식을 완전히 깰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는 데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미사일 시험발사과정에서 공중폭발 등으로 실패하는 경우가 많지만 최대 사거리가 5000㎞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화성-12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시험발사까지 성공한 것은 서방세계는 물론 중국, 러시아의 미사일 개발 속도보다 빠른 것이다.
이같은 패턴은 2011년 김정은 체제가 집권한 이후 장성택 숙청 등을 통해 권력 기반이 안정된 2015년부터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2015년 8차례, 2016년 18차례에 걸쳐 미사일을 발사한 북한은 질적인 측면에서도 시험 발사 수위를 끌어올렸다, 이전에는 노동미사일이 가장 멀리 발사된 미사일이었지만 이때부터는 중거리 미사일도 거침없이 쏘아올렸다. 때문에 사거리 1000㎞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는 뉴스거리도 되지 않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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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지상에서 발사된 미사일이 하늘로 날아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노동신문 |
북한은 왜 이렇게 미사일 개발에 올인할까? 그 정답은 중국이 제시했다.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는 지난 4월 5일 “북한은 현재 누구도 믿지 않으며 핵무기만을 신뢰한다. 핵무기가 있어야 안전하고, 만약 핵무기가 없으면 끝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본토 공격능력을 확보해 미국과 대등한 입장에서 핵 군축 협상과 한반도 평화협정 등을 추진하려는 것이 북한의 목표라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체제 안보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면 굳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미사일을 발사할 필요가 없다. 바꿔 말하면 북한은 미국이 체제를 보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핵과 미사일 개발에 매달리고 있다는 뜻이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달 18일(현지시간) “(북한)정권교체와 침략을 하지 않고 체제를 보장하겠다. 우리를 한번 믿어보라”고 말한 것에 대해 북한이 “미국이 대화니 뭐니 하는 것은 우리의 핵 보복타격능력을 거세하기 위한 유치한 기만극으로 그 어떤 위협도 감언이설도 우리에게 통하지 않으며 우리의 국가 핵 무력 강화의 길을 누구도 막을 수 없다”고 비난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미국도 북한을 불신하기는 마찬가지다. 미국이 북한의 행동을 신뢰했다면 핵항공모함 칼빈슨호가 올해에만 두 차례나 한반도 해역에 투입되고 B-1B 전략폭격기가 지속적으로 한반도 상공에 나타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북한에 대한 불신은 미사일 기술 분야에서도 나타난다.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쏘아올리면서 탄두에 카메라를 장착해 지구의 모습을 찍어 공개하고, 측정장비가 송출한 데이터를 공개하면서 “당장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다”고 큰소리를 쳐도 미국은 여전히 시큰둥한 태도다. 북한 미사일 위협을 임박한 위협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윌리엄 마크스 미 국방정보국(DIA) 대변인은 지난달 11일 블룸버그통신에 보낸 이메일에서 “북한 김정은 정권이 핵무기에 쓰이는 핵분열 물질 보유량을 늘리고 있지만, 미 본토에 닿을 수 있는 이동식 ICBM 같은 무기를 배치하기 위해서는 아직 많은 발전이 필요하다”며 “북한이 특정 단거리 미사일에서 중대한 발전들을 이뤄냈지만, 더 긴 사정거리를 가진 미사일 개발에는 극복해야 할 중요한 결함들이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북한에게 남은 방법은 실제 ICBM 능력을 직접 입증하는 것뿐이다. 단분리 기술과 지상관제능력은 은하-3호나 광명성호에서 입증됐고, 화성-12의 시험발사 성공으로 ICBM 1단 추진체를 만드는데 필요한 대출력 엔진도 확보했다. 하지만 대출력 엔진 2~4개를 한데 묶어 1단 추진체를 만드는 클러스터링 기술과 섭씨 7000도 이상의 고온을 견딜 수 있는 대기권 재진입체 제작 기술 등은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다. 이같은 과제를 해결하려면 막대한 예산을 들여 대규모 실험시설을 갖추고 실험을 실시해 기술을 검증해야 한다. 이후 10회 이상의 시험발사를 거쳐야 ICBM이 실질적인 전력으로 가동될 수 있다. 북한이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의미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북한이 선택한 전략은 당근과 채찍이다. 액체연료 엔진 탑재 미사일 개발팀과 고체연료 엔진 탑재 미사일 개발팀을 각각 운영하는 경쟁 체제를 통해 기술 개발 속도를 가속화하고 있다. 또한 과학자들에게 새로 지은 여명거리, 미래과학자거리의 집을 제공하는 등 처우를 대폭 개선하고 미사일 개발에서 성과를 낸 과학자들을 평양으로 초청해 김정은과 기념사진을 찍고 연회를 베풀어 개발을 독려하고 있다. 미국이 “아직 위협은 되지 않아”라고 치부하며 북한의 기술 수준을 불신하는 동안 북한은 보유한 자원을 총동원해 미사일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북한의 ICBM이 날아오르는 순간이 전문가들의 당초 예상보다 짧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 본토 공격용 ICBM을 확보하고 나서 미국과 협상한다’는 북한의 전략이 본격적으로 시행될 시기가 다가오는 지금,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될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