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팀의 추적 결과 전체 공익제보의 60.8%는 제보 이후 조직의 변화, 관련 제도 개선 등 효과를 본 것으로 분석됐다.
1990년 10월 4일 윤석양 이병은 국군보안사령부가 정치인과 민간인 약 1300명을 불법사찰했다고 양심선언해 이상훈 당시 국방부 장관 해임, 보안사 서빙고 분실 폐쇄, 보안사 국군기무사령부로 개명, 불법사찰 대상 민간인에게 위자료 2억9000만원 지급 등을 이끌었다.
제보 대상 기관 자체나 상급 감독기관, 수사당국, 사법기관을 거쳐 조직이나 책임자 처벌(기소 포함)을 이끌어낸 사례는 전체의 67.7%였다. 상급 감독기관에서 조사를 거쳐 징계를 한 경우가 22건(21.6%)으로 가장 많았다.
반면 기관 자체조사를 거쳐 종결된 경우도 12건(11.8%)으로 적지 않았다. 책임자 징계나 내부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 경우다.
1994년 서울 양천경찰서 신정1파출소에 근무했던 김석원 경장은 경찰관들이 관내 업소로부터 주기적으로 상납금을 받고 불법영업을 묵인해준 사실을 제보해 서울지방경찰청 감찰요원들의 조사결과 사실로 확인됐다. 하지만 업소들이 진술을 거부하거나 김 경장에게 불리하게 진술하면서 아무도 처벌을 받지 않고 김 경장만 파면되는 등 고초를 겪었다.
공익제보가 어떤 형태로든 사회를 바꾸기까지는 대체로 여러 해가 걸렸다. 취재팀이 만난 여러 공익제보자들도 “공익제보 즉시 세상이 바뀔 것이라는 생각은 자신만의 착각”이라고 입을 모았다.
2005년 6월 22일 전응섭 광주인화학교 교사는 학교 직원, 교사들이 장애인 학생들을 상대로 벌인 성폭력 사건을 세상에 알렸다. 이후 조사와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다가 이 사건이 소설과 영화 ‘도가니’로 만들어져 큰 관심을 모으면서 학교는 폐교되고 행정실장 김모씨가 징역형을 받았으며, 2011년에는 장애인 아동에 대한 성범죄의 처벌을 강화하는 ‘성폭력범죄 처벌 특례법 개정안’이 통과되는 등 변화를 이뤘다.
공익제보자들이 체감하는 변화는 크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잠시 변화를 보이다가도 조직의 관행에 의해 예전으로 돌아가거나 변화가 공익제보자의 기대치에 못 미쳤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2008년 김형태 양천고 교사는 서울시교육청에 학교에서 보조금을 횡령한 사실을 알렸지만 관련자들이 경고·주의만 받았고 2011년 대법원이 이사장에게만 벌금형 500만원을 선고했다. 현재 ‘교육을 바꾸는 새힘’ 대표로 사립학교 비리척결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취재팀에 “변화는 없고 오히려 (잘 드러나지 않게) 지능적으로 범죄를 저지른다”며 “진실을 말하는데 용기가 필요없는 세상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공익제보로 예산 최소 2527억원 아껴
공익제보를 통해 예산낭비 사례로 밝혀져 정부가 아낄 수 있었던 금액은 최소 2527억205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환수조치를 했거나 예산이 집행되기 전에 문제가 있다고 밝혀져 낭비를 예방한 사례, 과징금·추징금·과태료 등이 확정된 사례만 포함했다. 횡령, 국고 손실 등의 사실이 적발됐지만 환수까지 이어지지 않았거나 환수 금액이 불분명한 사례는 제외했다.
2002년 3월 조주형 공군 대령은 방산비리를 폭로해 2억달러(약 2252억8000만원)라는 천문학적인 금액 낭비를 방지했다는 평가다. 당시 F-X사업(차기전투기사업)의 시험평가를 책임지던 공군시험평가단 부단장이던 조 대령은 국방부 핵심인사가 미국 정부가 지원하는 F-15K가 선택되도록 시험평가 과정에서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고 폭로했다.
국방부는 이를 부인했으나 시민사회단체의 캠페인과 감사원 국민감사청구 등이 이어지면서 선정과정의 공정성에 대한 여러 의혹이 공론화됐고, 전투기 구매 과정에서 2억달러 인하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구체적인 수치를 산출하기는 어렵지만 공익제보를 통해 일반인들이 보편적으로 경제적 혜택을 받은 사례도 많다. 1998년 김용익 서울대 의대 교수는 병원에서 약을 구입할 때 임상연구비, 기부금 등 다양한 형태의 비밀스러운 거래가 오고가며, 대학병원들이 비싼 3차 항생제부터 쓴다는 사실을 알렸다. 이로 인해 의료보험 약가 수가조정기구가 만들어졌고 약가가 인하돼 수많은 환자들이 부담을 줄이게 됐다.
◆사내게시판 폭로 성공률 가장 낮아
분석 대상 공익제보 가운데 33건(32.4%)이 언론 및 미디어(포털사이트 등 포함)를 통해 이뤄져 가장 높은 비율을 나타냈다. 상급기관 및 감독기관에 제보한 건은 31건(30.4%), 시민단체·종교단체·노조·상담소에 제보한 사례는 13건(12.7%)이었다.
공익제보 처리 당국인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한 경우는 11건(10.8%)으로 상대적으로 저조한 편이었다.
2012년 이명박정부 시절 청와대와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사찰과 증거인멸 사실을 언론을 통해 폭로한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은 취재팀과의 인터뷰에서 “내부고발이나 이런 제도 자체가 있는 줄 몰랐고 (내부고발을) 하고 나서 공익신고자 보호법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제보 기관별로 시민·종교단체, 노조, 상담소에 제보한 경우 ‘성공’ 53.8%, ‘대성공’ 15.4%로 성공률이 가장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국회의원이나 정당에 제보한 경우도 ‘성공’ 33.3%, ‘대성공’ 33.3%로 높았다.
반면 사내·내부게시판을 통해 폭로한 경우 ‘성공’은 36.4%, ‘대성공’은 한 명도 없어 성공률이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상급·감독기관에 제보한 경우 ‘성공’ 32.3%, ‘대성공’ 6.5%로 두 번째로 저조한 성공률을 나타냈다.
이밖에 공익제보자는 현직이 122명(91.0%)으로 전직 12명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들은 퇴직 후라면 피할 수 있었을 인사나 신분상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공익제보를 한 셈이다.
특별기획취재팀=김용출·백소용·이우중·임국정 기자 kimgij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