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와우리] 호국보훈의 달 6월을 보내며

6·25전쟁, 제2차 연평해전… / 나라의 가치와 정체성 지켜낸 국가유공자의 고귀한 희생정신 / 文정부의 보훈정책 방향성 돼야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의 첫 일정은 미 해병대박물관에 설치된 장진호전투 기념비 참배였다. 당시 미 해병1사단은 개마고원 근처인 북한의 임시 수도 강계를 점령하기 위해 작전을 전개하다가 12만명에 달하는 중공군의 기습 공격을 받게 된다. 10배가 넘는 적의 공격을 힘겹게 버티며 철수 작전을 성공적으로 진행하게 되지만, 미국 언론은 당시 상황을 진주만 습격과 함께 미국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전투작전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 외에도 우리는 아직까지 6·25전쟁과 관련한 수많은 비극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지만 세월과 함께 점차 희미해진 기억이 되고 있다.

‘호국보훈의 달’인 6월의 마지막 날을 보내는 심정이 여느 때와 다르다. 2002년 6월 29일에는 소위 제2차 연평해전이 있었는데, 북한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우리의 안타까운 해군 장병 6명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다. 참수리호 357에서 조국의 영토를 지키며 생을 마감한 장병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1999년 1차 연평해전에서 북방한계선(NLL)에 대한 불법적인 침입으로 일방적인 피해를 입은 북한이 절치부심 도발을 준비하고 있었고, 남북한 사이의 협약을 어기고 기어이 우리의 인명을 앗아간 사건이었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국제정치학
문재인정부의 등장과 함께 보훈정책의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국가보훈처장을 장관급으로 격상시켰고, 최초의 여성 보훈처장을 임명했다. 보훈의 대상인 국가유공자는 넓은 의미에서 대한민국의 가치와 정체성을 지켜낸 이들에 대한 국가 차원의 보상을 의미하기에, 이와 관련한 바람직한 개념 정립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대통령 스스로 지난달에 열린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으니, 이 얘기를 적극적으로 해석하자면 조국을 지키기 위해 희생한 분들이 본의 아니게 저평가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 믿는다.

나라마다 국가유공자를 처우하고 존중하는 방식은 조금씩 다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미국은 자국 국민을 다른 나라의 법정에 세우지 않는 것을 가장 소중한 원칙으로 삼는다는 불문율을 세우고 있다. 심지어는 비밀 작전을 감행해서라도 자국 국민을 구조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수도 워싱턴DC 인근 도시인 알링턴에 마련된 국립묘지의 규모와 시설은 미국인이 국가유공자를 대하는 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한편 영국의 경우 자국의 국가유공자가 해외에서 희생당한 경우 그 지역에서 그들의 넋을 기리고 추모하는 전통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러한 이유에서 부산에 위치한 UN평화공원에는 6·25전쟁 당시 영국 출신의 몰살장병을 기념하는 시설이 유독 눈에 띄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한 개인의 정체성을 나타나는 특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리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국적을 꼽게 된다. ‘한국사람’이라는 사실에는 어떤 정체성과 가치가 담겨 있는 것일까. 아시아를 대표하는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발전이라는 자랑스러운 의미를 간직하고 있지만, 동시에 6·25전쟁과 북핵으로 상징되는 위기와 우려의 의미가 공존하는 것도 사실이다. 연평해전에서 희생한 장병과 5·18에서 희생한 시민이 대한민국의 가치와 정체성을 함께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로운 보훈정책의 방향성으로 정립돼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6·25전쟁이 끝난 지 60년이 넘었지만 북한의 호전성과 생존방식에는 변함이 없다는 사실에 새삼 분개하게 된다. 6·25전쟁 이후 세상은 정말 많이 변했고, 세계질서를 구성하는 보편적인 원칙과 정신 역시 크게 변화해, 개방 공존 평화 번영과 같은 가치들은 세계시민 모두의 신념이 됐다. 아직도 빗장을 굳게 걸고 있는 북한의 현실을 안타깝게 여기며 6월의 마지막 날 조국을 위해 희생하신 모든 분의 넋을 기리고자 한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국제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