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7-07-13 06:00:00
기사수정 2017-07-13 00:31:00
마스터 소믈리에 손에서 탄생한 아크 뒤 론 샤토 네프 뒤 파프
아비뇽 유수. 학생때 세계사 시간에 한번쯤은 들어봤을 겁니다. 교황이 굴욕을 당한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교황 베네딕토 11세 서거후 추기경단은 친프랑스파와 친이탈리아파로 갈라집니다. 프랑스권 출신의 클레멘스 5세가 1305년 교황으로 선출됐지만 그는 프랑스 국왕의 압력에 로마로 돌아가지 못하고 프랑스 남부 론강변의 도시 아비뇽에 정착합니다. 결국 1309∼1377년 7명의 교황이 아비뇽의 새 교황청에 거주하며 70년동안 프랑스 국왕의 정치적 권력아래 놓이게 되죠. 더구나 로마에서 또 다른 교황이 선출되면서 교황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교회는 분열하게 됩니다.
재미있는 것은 아비뇽 유수로 남부론의 와인 산업이 번창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는 점입니다. 미사때 와인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죠. 당시 교황이 즐겨 마시던 와인이 현재 남부론을 대표하는 샤토 네프 뒤 파프(Chateauneuf du Pape)랍니다. 와인업계에서 약자를 따 CDP로 부르는 프리미엄 레드 와인으로 ‘교황의 새로운 성’이란 뜻이에요. 교황의 여름 별장이 바로 현재의 샤토 네프 뒤 파프에 있었다고 합니다. 샤토 네프 뒤 파프는 이런 역사적인 배경 덕분에 1936년 프랑스에서 최초로 와인생산지통제규정인 AOC 등급을 받았답니다. 이어 1937년 샤토네프 뒤 파프 연합에서 특별한 심볼을 만들어 와인 보틀에 새겨 넣기 시작했는데 바로 열쇠 문양입니다. 이는 샤토 네프 뒤 파프를 상징하는 심볼로 더욱 유명해졌지요. 베드로 성자의 열쇠인데 ‘천국의 문을 여는 열쇠’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 와인의 가치를 더욱 깊게 만들고 있답니다.
프랑스 론지역은 기원전 125년부터 와인양조가 시작돼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합니다. 지중해와 가까운 곳이라 1년내내 따뜻하고 일조량이 길어 알콜이 높고 풍미가 강한 포도가 생산됩니다. 론지역에서 구체적으로 마을 이름을 표시하는 프리미엄 생산지는 18곳인데 주로 북부론에 몰려 있어요. 에리미따쥐(Ermitage), 꼬뜨로띠(Côte-Rôtie), 크로즈 에르미따쥐(Crozes Ermitage), 생조셉(Saint Joseph) 꽁드리유(Condreu) 등이 유명하죠.
반면 남부론은 저가 와인 위주로 대량생산을 하는 곳으로 알려져있지만 샤토네프 뒤 파프와 지공다스(Gigondas) 마을이 프리미엄 와인을 이끌고 있답니다. 지공다스는 샤토 네프 뒤 파프 북쪽에 있는데 좀 더 강한 와인이 생산됩니다. 지공다스는 로마시대의 지역 이름(Jocunditas)에서 유래됐는데 ‘최고의 기쁨과 즐거움’이라는 라틴어라 와인과 아주 잘 어울리는 마을 이름이네요. 1894년 파리 와인생산지 품평회에서 금메달을 받으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1971년 꼬뜨 뒤 론 지역에서 분리 돼 하나의 독립적인 와인생산지로 인정을 받게 됩니다.
샤토 네프 뒤 파프와 지공다스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는 레드 품종 그르나슈(Grenache)를 위주로 시라, 무르베드르, 까리냥 등을 섞어서 만들어요. 그르나슈는 더위에 굉장히 강해 어디서나 잘 자란답니다. 로제와인을 만들때 베이스 와인으로 많이 쓰죠. 강렬한 딸기잼이나 자두 졸인 듯한 향이 납니다. 은은한 후추와 감초향도 있고 숙성하면 애니멀향과 달콤한 견과류 느낌도 납니다. 알코올은 튀는데 산도와 탄닌이 적다보니 푹 퍼진 느낌이 들어 그르나슈는 블렌딩을 하는데 단짝 품종이 북부론을 대표하는 시라(Syrha)에요. 호주에서 유명한 쉬라즈(Shiraz)와 같은 품종이죠. 시라는 검은 과일향과 허브, 베이컨, 다크초콜릿 향이 납니다. 두 품종을 블렌딩하면 컬러가 짙어지고 붉은 과일, 블랙베리 등의 과일향과 백후추향이 강해집니다. 또 알코올도수가 높아지며 탄닌도 세집니다.
영국에 기반을 둔 부티노(Boutinot) 그룹은 론지역 설립한 아크 뒤 론(Arc du Rhone)을 통해 파워풀한 풀바디의 샤토 네프 뒤 파프와 지공다스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와이너리가 있는 론의 계곡이 마치 아크를 닮아 와이너리를 이렇게 이름 지었는데 아크 뒤 론의 포도밭 있는 지역은 ‘론의 황금 땅’이라고 불릴 정도로 론 지역에서도 포도를 재배하기 완벽한 땅으로 평가 받는다고 합니다. 둘다 그라나슈 65%, 시라 25%에 무르베드르와 까리냥을 조금씩 섞어서 만드는데 떼루아 차이때문에 스타일은 다릅니다.
지공다스는 과실 풍미가 잘 드러나 소비자 보다 쉽게 이해하는 와인이죠. 바이올렛 꽃향과 검은 과실류의 풍미, 향신료 향과 부드러운 탄닌이 입안을 가득 채우며 풍부한 피니쉬를 만듭니다. 샤토 네프 뒤 파프는 보다 토양적인 느낌이 강해 세련되지는 않지만 순박함과 친근감이 느껴지는 와인입니다. 아주 잘 익은 과일향과 풀바디의 구조감을 보여주고 블랙베리와 자두의 향이 풍부하며 블랙페퍼의 스파이시함도 느껴집니다. 두 와인 모두 붉은 육류 요리와 매칭이 좋은데 특히 양고기와 좋은 궁합을 이룹니다. 숙성된 치즈와도 잘 어울립니다.
부티노 그룹은 1980년 와인사업에 뛰어들어 역사가 짧지만 프랑스, 이탈리아,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자가 소유한 포도밭과 와이너리 4곳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한해 직접 생산하는 와인은 1400종에 4400만병에 달할 정도로 규모가 큽니다. 양조 전문가 7명과 전세계 236명에 불과한 마스터 소믈리에 나이젤 윌킨스(Nigel Wikinson), 또 전세계 365명 뿐인 마스터 오브 와인 2명이 모든 와인 생산과정을 컨트롤하며 프리미엄 와인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나이젤 윌킨스가 최근 한국을 찾아 부티노 그룹에서 생산하는 대표 와인들을 직접 서빙하며 함께 테이스팅 했습니다. 부티노 와인들은 현재 나라셀라에서 단독 수입하고 있습니다. 1970년대 부친의 레스토랑에 소믈리에로 일하던 폴 부티노(Paul Boutinot)는 상인들이 공급하는 와인이 맘에 들지 않아 직접 대형밴을 끌고 프랑스에 가와인을 사서 레스토랑에 팔기 시작했죠. 그의 와인이 좋다는 입소문이 나자 다른 레스토랑 주인들이 그를 통해 와인을 사기 시작했고 결국 폴은 재산을 털어 직접 와인 양조에 뛰어듭니다. 보졸레의 줄리나스에서 포도밭을 구입해 만든 그의 첫 와인은 대성공을 거뒀고 프랑스 남부 랑그독(Languedoc), 꼬드 드 가스코뉴(Cote de Gascogne), 부르고뉴 마꼬네(Maconnais)에서도 와인 만들기 시작합니다 이어 남아공과 이탈리아 피에몬테, 영국 와이너리들에 지분을 투자해 지금의 부티노 와인 그룹을 일굽니다. 1970년대 아주 작게 와인을 실어다 팔기 시작한 폴은 사업이 현재 전세계 42개국에 수출하고 생산량도 4400만병에 달하는 와인 기업으로 성장한 것이죠.
부띠노가 운영하는 알라시아(Alasia)는 이탈리아 피에몬테 바르베라 다스티의 중심부인 카스텔 보그리오네에 위치한 1950년대에 구성된 협동조합 와이너리 입니다. 알라시아 가비는 피에몬테 대표 화이트 품종인 코르테제 100%를 빚었습니다. 드라이 화이트 와인으로 풍부한 향과 깔끔하고 정확한
산미가 돋보이네요. 토마토·바질 샐러드와 병어, 멍게, 피조개 등 해산물, 삼선짬뽕 등 스파이시한 음식과 아주 잘 어울립니다.
이 와인은 과실미를 포착하는데 가장 중점을 두었는데 청사과, 감귤류, 레몬, 라임, 자몽과 미네랄 요소 잘 부각되는 와인입니다. 알라시아는 누구나 마실수 있는 와인을 누구나 만족하게 만들자는 모토로 와인을 빚는다고 하네요. 특히 음식 친화적인 와인을 선보이고 있어요.
알라시아 바르바레스코(Alasia Barbaresco)는 네비올로 100%입니다. 프렌치, 아메리카 오크를 사용하지 않고 500ℓ짜리 대형 슬로베이니아 오크만 사용하는데 4~5년 사용한 오크에서 2년간 숙성하고 6개월간의 병숙성을 거칩니다. 이런 숙성을 길게 거치면 추가적인 복합미 부여되는데 마호가니 앤티 가구같은 우아함이 와인에 깃들게 되죠. 블랙체리 등 검붉은 과실류의 향이 풍부하고 허브 등의 스파이시함도 느껴집니다. 탄탄한 구조감과 우아한 탄닌이 좋은 밸런스를 이루고 피니시는 긴 편입니다.
알라시아 바롤로(Alasia Barolo)는 네비올로 100% 입니다. 바롤로를 이탈리아 ‘와인의 왕’이라 하고 바르바레스코는 ‘와인의 여왕’으로 불립니다. 바롤로는 바르바레스코 보다 좀더 구조감의 깊이가 있어요. 오크숙성도 바롤로 3년을 거칩니다. 잘 익은 붉은 과일, 완숙한 자두, 바이올렛 꽃향기 등이 풍부하며 오크 숙성에 오는 나무향, 숙성되면 나는 가죽향이 느껴지고 부드러운 탄닌과 기분 좋은 산미가 밸런스가 좋네요. 15년 이상 숙성이 가능한 와인으로 숙성되면 탄닌이 벨벳처럼 부드러워집니다.
육회, 멸치 페스토 등과도 궁합이 좋습니다.
최현태 기자
hthoi@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