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7-07-24 20:41:38
기사수정 2017-07-24 20:41:38
중동 가상 국가 백작역할 / 최민수 코믹 연기 힘입어 / 방송 2회 만에 시청률 1위 / 음주·노출 등 일부 장면에 해외 무슬림 한류팬 공분 / 제작진 “모두 픽션” 사과문 / “성의 없다” 되레 화 돋워
야심 차게 출발한 MBC 수목드라마 ‘죽어야 사는 남자’가 이슬람 문화 희화화 논란에 휩싸이면서, 이 지역 한류 열풍에 찬물을 끼얹는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죽어야 사는 남자’의 무슬림 왜곡 장면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타고 퍼지며 전 세계 무슬림(이슬람교도)의 비판에 직면했다. 더욱이 제작진의 성의 없는 사과문이 더 큰 화를 불렀다. 해외 한국드라마 팬들 사이에서는 “MBC 드라마를 보이콧 해야 한다”는 움직임까지 일고 있다.
지난 19일 첫 방송을 한 ‘죽어야 사는 남자’는 1970년대 보두안티아라는 가상의 이슬람국가로 건너가 ‘사이드 파드 알리 백작’이 된 한국인 남성 장달구가 한국에 딸을 찾으러 돌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신선한 소재와 배우 최민수의 개성 강한 연기로 방송 2회 만에 시청률 10%대에 진입하며 지상파 수목극 1위를 꿰찼지만, 드라마 곳곳에 무슬림을 희화화하는 장면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방송 전 공개된 드라마 포스터부터 문제가 됐다. 포스터에서는 무슬림 복장을 한 백작이 이슬람 경전인 코란 앞에 발을 올리고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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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드라마 ‘죽어야 사는 남자’ 포스터. 주인공인 사이드 파드 알리 백작이 코란 가까이에서 발을 꼬아 무릎에 올린 채 비스듬히 앉아 있다. MBC 제공 |
코란은 예언자 무함마드가 계시로 받은 알라의 말씀을 담은 이슬람 경전으로, 만질 때는 손을 씻어야 하며 읽다가 틀리면 다시 읽어야 할 정도로 엄격하고 소중히 다뤄진다. 그 앞에 발을 갖다 댔으니 이 포스터를 본 무슬림들이 경악할 만하다. 백작이 아침을 먹으며 와인을 마시는 장면과 비키니를 입고 히잡을 대충 두른 여성들이 등장하는 장면도 지적됐다. 많은 이슬람 국가들이 음주를 금하며 무슬림 여성들은 대부분 머리부터 발끝까지 몸을 최대한 가린다.
백작의 캐릭터를 코믹하게 그리기 위한 장치이지만 무슬림들에게는 불쾌감을 줄 수 있는 장면이다. 특히 제작진이 조금만 신경 썼더라도 알 수 있는 기본적인 부분이어서 타 문화와 종교에 대해 이해하려는 노력과 배려가 전혀 없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국인 무슬림 시청자 김*소씨는 “몸의 일부를 드러내놓고 그냥 머리에 천을 두른다고 히잡이 되는 게 아니다. 또한 어떤 종교도 성전 앞에서 그런 행동을 취하지는 않는다. 정말 무례하다”고 지적했다. 또 김*수씨는 “한국인 무슬림으로서 심한 불쾌감과 모욕감을 느낀다”며 “몇년 동안 정성껏 쌓아놓은 한류 열풍이 이 드라마 한 편으로 다 무너지게 생겼고 반한류마저 조성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예전에는 ‘한국인 무슬림’이라고 하면 자랑스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이제 이 드라마 때문에 외국인 무슬림들에게 한국인이라고 감히 말하기가 어려워 졌다”고 말했다.
비난이 거세지자 MBC는 21일 드라마 홈페이지에 한국어·영어·아랍어 3개 언어로 사과문을 올리고 “중동지역 가상의 왕국 보두안티아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죽어야 사는 남자’는 등장인물, 인명, 지역, 지명 등이 모두 픽션”이라며 “이와 관련된 방송 내용으로 불편함을 느낀 시청자분들께 사과말씀 드린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다섯 줄짜리 사과문은 무슬림들의 불만에 기름을 끼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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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죽어야 사는 남자` 홈페이지에 제작진이 올린 사과문 |
시청자 전*성씨는 “MBC의 사과문으로 무슬림들의 분노가 식기는커녕 더욱 치솟고 있다. 누가 봐도 진심이 없어 보인다”며 “이것은 단순한 오해가 아닌 차별”이라고 지적했다.
분노는 해외 무슬림들 사이에서 더욱 들끓고 있다. MBC가 트위터에 올린 사과문에는 4000개 가까운 댓글이 달렸다. 무슬림들은 드라마의 한 장면과 MBC의 짧은 사과문을 SNS로 퍼나르며 “픽션이라고 해서 다른 문화에 예의 없이 행동하고 무시해도 되는 건 아니다”(koo***), “픽션이든 아니든 이 드라마가 무슬림에 적대적인 건 사실이다. 당장 방송을 중단하라”(LVY***), “누군가 당신들의 문화와 종교를 욕보인 뒤에 ‘이건 지어낸 얘기야’라고 말해도 되는가”(lov***) 등등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에 미국 뉴스사이트 ‘버즈피드’는 “이슬람혐오와 인종차별을 조장하는 한국 드라마에 무슬림들이 화가 났다”고 보도했고, 영어권 최대 한류 사이트인 올케이팝은 “무슬림 한국드라마 팬들이 MBC 드라마를 보이콧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 논란에 대해 서정민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이슬람교도에게 코란은 매우 신성하고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그 근처에 발을 올린다는 것은 매우 모욕적이고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비키니는 입을 수 있는 곳도 있지만 해당 장면은 희화화하려는 의도가 있어 보인다”며 “잘 알지 못하는 문화와 종교를 소재로 다룰 때는 전문가에게 자문하여 그 문화권 시청자들을 배려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