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낮 주말 할 것 없이 업무에 치여 사는 자녀를 대신해 손주를 돌봐주는 조부모들이 신체적, 정신적으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최근 육아정책연구소가 부모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2015년 11월 기준 맞벌이 가정의 90.2%(451명)가 자녀 양육에 조부모의 도움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벌이는 7.2%(36명), 한부모 2.6%(13명)로 조사됐다.
조부모의 일주일 평균 손자녀 양육시간은 5.25일로 집계됐다. 하지만 10명 중 1명 꼴(11.8%)은 일주일 내내 손자녀를 돌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부모의 양육시간은 평균 주당 42.53시간으로, 근로자의 법적 근로시간인 주당 40시간을 초과했다.
조부모가 영유아 손자녀 양육을 하게 된 동기로는 '자녀가 마음 놓고 직장생활을 하게 도와주려고'가 절반(49.8%) 가량으로 가장 많았다. '자녀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서'(28.2%), '자녀가 양육하는 것이 안쓰러워서'(13.6%), '자녀를 경제적으로 도와주지 못해서'(5.6%) 등이 뒤따랐다.
◆"내 자식 마음 놓고 직장생활 하라고…" 손주 도맡아 키우는 부모들
조부모들이 노후의 여유 있는 삶을 포기한 채 손자녀 양육에 나서는 이유는 젊은 부부들이 자립, 아이를 키우기에는 사회적 제도나 문화가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아이를 위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육아에 집중하기에는 경제적인 형편이 넉넉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경력 단절 등으로 인해 향후 재취업도 여의치 않은 경우가 많아서다.
자녀의 성공을 최우선으로 여겼던 세대의 조부모들이 다시 한번 희생을 강요당하며 손자녀를 도맡아 키우게 되는 것이다.
맞벌이 부부가 늦게 퇴근하면 누군가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데리고 와야 하는데,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사실상 조부모밖에 없는 현실이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보육시설 확충, 육아 휴직 제도 개선 등 정부의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과 정시 퇴근과 같은 사회 문화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황혼육아' 둘러싼 경제적·사회적 갈등 심해질 듯
젊은 부부들도 조부모의 희생을 당연시하기 보다는 주말에 집안일을 분담하거나, 정기적으로 여행을 보내주는 등의 방식으로 조부모의 짐을 덜어줘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시대가 흐를수록 손자녀 육아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더 심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자녀를 위해 모든 희생을 감내하던 과거 부모와 달리 자신의 삶과 여유가 우선시되는 세대가 오면, 손자녀 육아 문제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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