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7-07-28 11:38:41
기사수정 2017-07-28 15:40:16
문재인정부의 첫 검찰 고위간부 인사가 단행된 가운데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속한 사법연수원 19기 동기생들이 ‘검찰의 별’이라는 고검장을 무려 6명이나 배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검장 6명은 다른 기수와 비교해 많아 ‘잘난 동기 덕분에 혜택을 입은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으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28일 법무부에 따르면 검찰은 2000년대 초반까지도 연수원 한 기수에서 고검장을 3명 정도 배출하는 인사관행을 유지해왔다. 그러다가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동기생인 연수원 7기 검사들 중에서 고검장 4명이 탄생한 것을 계기로 8, 9기 등 후배들도 기수별로 고검장을 4명씩 배출했다.
사법시험 합격자 정원이 300명으로 늘어난 1981년 이후 처음 뽑은 기수인 연수원 13기는 검사만 100명 넘게 나왔다. 이들 중 13명이 검사장을 달았고 그중 6명은 차기 검찰총장 후보군인 고검장에 올랐다. 연수원 한 기수에서 고검장을 6명이나 배출한 것 자체가 검찰 인사관행에 비춰 매우 이례적인 일로 13기 출신 검사 수가 워낙 많았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 뒤 14기부터는 다시 한 기수에서 고검장 4명 정도를 배출하는 옛 관행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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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봉욱 대검찰청 차장검사, 황철규 대구고검장, 조은석 서울고검장. 이들은 모두 사법연수원 19기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동기생이다. |
이번에 박상기 법무장관과 문무일 검찰총장이 주도해 단행한 검찰 고위간부 인사를 보면 연수원 19기가 대거 고검장급에 포진하며 차기 총장 후보군을 형성했음을 알 수 있다. 봉욱(52) 대검찰청 차장검사를 필두로 조은석(52) 서울고검장, 김강욱(59) 대전고검장, 황철규(53) 대구고검장까지 4명이 주인공이다.
이들 중 조 고검장은 동기인 우 전 수석과의 ‘악연’ 탓에 그동안 인사상 불이익을 겪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대검 형사부장이던 2014년 광주지검의 세월호 사건 수사를 지휘하며 청와대·법무부와 숱하게 마찰을 빚었고 그 때문에 우 전 수석 눈밖에 나 상대적으로 한직을 전전했다는 것이다. 사법연수원 부원장직에 2년 가까이 묶여 있던 그가 전국 18개 지방검찰청의 절반인 9개 지검을 감독하는 서울고검장에 임명된 것은 ‘우병우라인’의 그늘을 걷어낸 상징적 조치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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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김강욱 대전고검장, 이창재 전 법무부 차관,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 이 전 차관과 윤 전 고검장은 문재인정부 출범 직후 사표를 내고 검찰을 떠났다. |
19기가 배출한 고검장은 이들 4명이 전부가 아니다. 문재인정부 출범 후 사퇴한 이창재(52) 전 법무부 차관과 윤갑근(53) 전 대구고검장도 우 전 수석의 동기생인 19기 출신이다. 두 사람까지 더하면 연수원 19기는 13기 이후 처음으로 한 기수에서 고검장을 6명 배출한 진기록을 세운 셈이다.
다만 이 전 차관은 박근혜정부 시절 법무부·검찰의 운영 전반에 대한 정무적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지난 5월 청와대에 사표를 내 수리됐다. 윤 전 고검장은 지난달 8일 청와대가 ‘과거 중요 사건의 부정적 처리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좌천 대상으로 지목한 고검장·검사장 4명 명단에 포함되자 스스로 물러났다.
김진모(51) 전 서울남부지검장은 19기 동기생 가운데 우 전 수석과 가장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5년 12월 검찰 고위간부 인사를 앞두고 그가 고검장으로 승진해 서울중앙지검장을 맡을 것이란 소문이 파다했다. 비록 고검장 진급은 성사되지 않았으나 서울시내에서 중앙지검 다음으로 큰 남부지검장을 맡아 차기를 노려볼 만했다. 하지만 그 역시 과거 중요 사건의 부정적 처리에 관여한 검사로 지목돼 지난달 8일 윤 전 고검장과 함께 옷을 벗었다.
박근혜정부 시절 검찰 인사를 좌우한 우 전 수석의 동기생인 사법연수원 19기 검사들은 결과적으로 고검장 6명 배출이란 경이적 성과를 냈으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희비가 엇갈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검찰 고위간부 출신의 한 변호사는 “역대 청와대 민정수석 모두가 검찰 인사에 깊이 개입했는데 우 전 수석은 그 정도가 너무 지나쳐 요소요소에 자기 사람을 안 심은 데가 없었다”며 “결국 정권이 바뀌고 ‘우병우사단’이 집중 포화를 맞는 것을 보면 ‘권불십년’, ‘화무십일홍’ 같은 말이 실감이 난다”고 전했다.
김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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