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7-07-30 08:00:00
기사수정 2017-07-29 11:4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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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30일 오후 경북 성주군 성주골프장에서 사드 발사대가 하늘을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
지난 28일 오전 9시. 한 주의 끝인 금요일을 맞은 국방부는 평온한 분위기 속에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날씨는 흐렸지만 주말을 앞두고 있다는 기대감이 흐르던 금요일의 아침은 “주한미군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가 배치된 경북 성주군 초전면 성주골프장부지 전체(70만㎡)에 대한 일반 환경영향평가 착수에 대해 곧 설명하겠다”는 국방부의 공지가 나오자 발칵 뒤집어졌다. “주한미군에 공여된 32만여㎡에 대한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로도 충분하다”고 주장했던 국방부의 기존 입장이 사라져버린 순간이자 ‘연내 작전운용 돌입’이라는 한미 양국의 기존 합의가 깨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지난해 7월 3NO(요청도, 협의도, 결정도 없다) 원칙을 깨고 사드 배치를 공식 발표한 직후 국방부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맞서 한반도 남부를 지키기 위해서는 사드 배치를 서둘러야 한다고 수없이 강조했다. 성주골프장 부지를 경기 남양주 군용지와 교환하고 주한미군에 부지를 공여하며, 경기 오산 미 공군기지에 사드 발사대 2기가 전격 반입되고 지난 4월 성주골프장에 사드 장비 일부가 배치되는 등 관련 절차가 숨가쁘게 진행된 것도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이라는 단 한 가지 이유였다. 그런데 문재인정부 출범 직후 10~15개월이 소요되는 일반 환경영향평가를 거쳐 사드 배치 여부를 최종 결정하기로 하면서 사드의 조기 배치 가능성이 사라지고 기존의 주장도 뒤집어졌지만 군 안팎에서는 책임지는 분위기도,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오지 않고 있다.
◆ 환경영향평가 발표하면서 말 바꾼 軍
군 당국은 2월 28일 경기 남양주 군용지와 맞바꾸는 방식으로 성주골프장을 롯데로부터 넘겨받아 4월 20일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에 의거, 부지를 주한미군에 공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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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6일 오산기지를 통해 반입된 사드 발사대 2기. 주한미군 제공 |
이 때 공여된 부지는 32만여㎡다. 당시 군 안팎에서는 “국방부가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를 염두에 두고 부지를 공여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환경영향평가법에 따르면 면적 33만㎡ 이상의 부지에 대해서는 일반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해야 한다. 일반 환경영향평가는 공청회 등 주민 여론 수렴 절차를 거쳐야 한다. 반면 33만㎡ 미만에 적용되는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는 평가서를 작성하고 환경부와 협의만 하면 되기 때문에 국방부의 처신에 대해 의혹의 눈길이 쏠렸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그 정도 면적이면 충분하므로 소규모 환경영향평가 대상”고 반박해왔다.
하지만 28일 국방부의 일반 환경영향평가 착수와 관련된 설명은 이전과는 달랐다. 국방부는 원래 32만여㎡에 대한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고 나머지 부지를 합친 70만㎡를 대상으로 일반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는 것이 본래 계획이었다고 밝혔다. 사드 부지 쪼개기 논란도 현실화됐다. 국방부 관계자는 “지난해 주한미군과 부지 공여면적을 놓고 70만㎡ 정도로 협의했다”며 “1차 공여대상이 32만여㎡였고, 2차 공여대상 면적은 1차 공여 면적을 참고해 주한미군과 협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내용은 지금까지 공개된 적이 없다. 국방부는 청와대가 사드 발사대 4기 추가 반입 보고누락 파문 조사를 지시한 직후인 지난달 1일 정례브리핑에서도 “성주골프장 내 사업면적이 10만㎡ 이하기 때문에 소규모 환경영향평가 대상이다. 10만㎡ 이하의 면적에서 사업이 실제로 이뤄지고, 그 사업면적 내에서 초기 운용 중인 발사대 2기가 있다”며 “추가 반입될 발사대 4기도 공여된 면적(32만여㎡) 중 사업면적 내에 배치되기 때문에 추가 공여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방부의 일반 환경영향평가 발표로 “전체 공여 부지를 70만㎡로 정하고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를 받기 위해 1차로 32만여㎡만 공여했다”는 청와대의 발표가 맞았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사드 배치와 관련해 1년여 동안 진행했던 절차와 주장들이 줄줄이 뒤집어졌지만 국방부에서 이에 책임을 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김관진, 한민구 전 장관은 이미 야인(野人)으로 돌아갔고, 미국과 사드 배치를 논의했던 류제승 당시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은 대선 전 공직을 떠났으며, 후임인 위승호 실장은 사드 보고누락 파문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상황에서 책임을 질만한 사람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그렇다면 지난해부터 국론을 분열시켜가며 숱한 부작용을 양산했던 사드의 조기 배치가 물거품이 된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국민들 앞에 나선 공직자가 없었다는 점은 어떻게 봐야 할까.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책임의식이 없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렵다. 국가안보를 책임진다고 자부하면서 정작 국민에게 진실을 알릴 책임은 지지 않으려는 태도는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떨어뜨릴 뿐이다.
◆‘답정너식’ 환경영향평가, 논란만 만든다
정부는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일반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기로 했지만 절차적 정당성은 형식적 정당성으로 바뀔 가능성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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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26일 오전 경북 성주군 성주골프장으로 사드 관련 장비를 실은 트레일러가 주민들의 반대시위속에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
사드가 배치된 성주골프장은 롯데가 골프장으로 사용했던 곳이다. 골프장은 건설 과정에서 산림 파괴와 지형 변화 등이 수반된다. 영업과정에서 농약살포 등에 따른 피해 우려도 있다. 따라서 환경영향평가가 엄격히 진행된다. 여기에 지난해 12월부터 국방부가 발주한 사드가 실제 배치된 32만여㎡에 대한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도 마무리돼 평가서 내용을 놓고 환경부와 협의에 들어갈 예정이다. 소규모 환경영향평가에서는 사드 레이더와 발사대 2기가 배치됐지만 환경에 영향을 주는 문제점은 없다는 결론이 내려진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주민들이 요구하는 사드 철수가 이루어지려면 전에 실시됐던 환경영향평가 결과를 뒤집을만한 요소들이 새로 발견되어야 한다. 사드 포대는 실제 건설소요가 크지 않다. 농약을 살포하지 않으며 오폐수 처리 역시 골프장 부지 안의 시설을 활용할 수 있다. 도로와 전기, 수도 등 기간시설도 기존 설비를 활용하면 별도 공사가 필요치 않다. 이같은 상황에서 국방부는 앞선 두 차례의 환경영향평가 자료를 일반 환경영향평가에 적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사드 배치 결정을 뒤집을만한 결론은 내려지기 힘들다. 환경영향평가가 기본적으로 해당 사업이 환경에 미칠 영향을 예측하고 이를 줄이는 방법을 찾는 절차라는 점에서 국방부의 일반 환경영향평가가 사드 배치의 당위성을 입증하는 결과가 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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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사드 배치에 대한 정부의 원칙이 중요한 시점이다. 게티이미지 |
일반 환경영향평가에 명시된 공청회 등 주민 의견 수렴이 제대로 진행될지도 미지수다. 현지 주민들은 사드 배치 철회를 원하고 있다. 반면 국방부는 일반 환경영향평가에 대해 “절차적 정당성을 높이기 위한 것일 뿐 배치 철회는 아니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국방부는 소규모 환경영향평가가 이뤄진 32만여㎡에 배치된 사드 장비의 임시 운용을 위한 내부 연결도로 건설과 발사대에 쓰일 콘크리트 패드, 장병 숙소 리모델링 공사, 연료 공급을 허용한다는 방침이다. 사드 배치에 반발하는 현지 주민들 입장에서 이같은 조치는 사드 배치를 공고히 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다. 주민들이 일반 환경영향평가에 규정된 공청회를 요식행위로 간조하고 거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대목이다. 실제로 국방부는 21일 사드 레이더 전자파 공개 측정을 계획했지만 현지 주민들의 반발로 무산된바 있다.
미국과 중국의 움직임도 변수다. 사드의 조속한 가동을 원하는 미국과 사드 철수를 요구하는 중국 모두 일반 환경영향평가를 탐탁지 않게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달 30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의 조치를 이해한다”고 했지만 주한미군 보호를 위해 사드의 조기 가동을 원하는 미국 정치권의 우려섞인 시선까지 해소할지는 미지수다. 중국은 사드 철수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루캉(陸慷)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8일 한국의 사드 환경영향평가 결정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사드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분명하고 한결같으며 변화가 없다. 우리는 관계국이 즉각적으로 사드 배치를 중단하고 취소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답했다.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이 고도화되는 상황에서 사드 배치는 군사적 이슈를 넘어서 정치적 이슈로 확장됐다. 따라서 정부는 사드 배치와 관련해 탄력 있고 정교한 전략을 구상해 실행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정부의 움직임을 사드와 관련된 모두가 패배자가 될 수 있다. 민주주의 원칙에 따른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착수하는 일반 환경영향평가가 이해당사자들 중 그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아이러니를 불러일으킬 상황이다. 사드 조기 배치를 원하는 주한미군과 우리 군은 연내 배치가 백지화됐고, 사드 장비 철수 후 전략 환경영향평가부터 다시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주민들은 일반 환경영향평가를 받아들일 수 없는 형편이다. 사드 배치 취소를 요구하는 중국은 한국이 ‘눈가리고 아웅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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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일 오후 경북 성주 주한미군 사드 기지에 미군 장비가 놓여 있다. 이날 국방부는 사드 기지에서 진행해온 소규모 환경영향평가 이외 일반 환경영향평가도 실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연합뉴스 |
청와대가 지난달 비판했던 사드 부지 소규모 환경영향평가가 24일 환경부에 제출돼 협의에 들어가고, 협의가 완료되면 이를 근거로 사드 장비의 임시 운용을 위한 보완공사를 허용하는 것도 절차적 정당성을 강조하던 현 정부의 기조에 비추어 볼 때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북한이 화성-14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쏘아올리며 탄도미사일 위협을 강화하는 사이 우리 정부는 방어무기인 사드의 배치를 놓고 절차적 정당성에 매몰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제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에 맞서기 위한 전략과 민주주의 원리에 따른 절차적 정당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할 상황이 다가오고 있다. 명확한 원칙과 전략 아래 사드 문제를 접근할 필요성이 커지는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