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환의 일요세상] 상습 흡연에 따른 민원 많다는데…버젓이 담배 피우는 공시생들

골목에 접어든 마스크 쓴 시민이 옆에 나란히 선 이들을 흘끗 보고는 지나쳤다.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종종걸음을 하더니 금세 반대편 건물로 모습을 감췄다.

동네 주민으로 추정되는 할머니도 벽 쪽에 붙어선 이들을 보고는 못마땅하다는 듯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바삐 반대편으로 빠져나갔다.

입에서 나오는 흰 연기. 그들은 상습 흡연구역이라며 이웃 주민을 위해 금연을 부탁한다는 현수막 앞에서 버젓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지난 10일 오후, 서울 동작구 노량진 학원가.

매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들로 북적이는 탓에 학원가는 발 디딜 틈 없이 수험생들로 빼곡하다.

트레이닝복과 슬리퍼 그리고 커다란 가방으로 대변되는 수험생들에게는 공무원 시험 합격 전까지 빠져나갈 수 없는 탓에 노량도(島)로 불린다.

그런데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학원 근처로 나와 담배를 피우는 일부 수험생들 때문에 지나가는 이들이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 특히 상습 흡연구역이라며 금연을 권고하는 현수막 앞에서도 담배를 입에 문 이들이 자주 관찰된다.

근처 원룸과 고시원에 사는 사람들의 2차 피해가 우려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 노량진 학원가의 한 골목. 상습 흡연에 따른 민원다발지역이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지만 바닥에는 이를 무시하듯 버리고 간 담배꽁초가 무척 많다. 일부 수험생들이 버리고 간 꽁초다.


9일과 10일 두 차례에 걸쳐 세계일보가 일대를 둘러본 결과, 금연 현수막이 걸린 골목길에서는 여지없이 담배를 피우는 수험생들이 눈에 띄었다.

비가 내린 10일에는 우산을 쓰고서도 골목을 찾아와 담배를 입에 문 이들이 보였다.

금연을 부탁한다는 현수막 아래 각종 담배꽁초와 쓰레기로 가득 찬 고무통이 역설적인 풍경을 빚어냈다.

한 남학생은 담배를 다 피우고는 늘 그랬듯 오른손으로 ‘툭’ 꽁초를 튕겨 벽에 내리쳤다. 타다 만 꽁초에서 흘러나와 골목 입구에서 옅게 흩어진 담배연기가 무대 위 피어오르는 드라이아이스를 떠올리게 했다.

침은 예사고, 빈 담뱃갑을 아무렇게나 버리는 학생도 보였다. 이들에게 흡연금지라는 말은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 듯했다.

골목에 자리한 어느 고시원 앞에는 ‘담배연기가 창문으로 들어와 고시생들이 공부할 수 없으니 협조를 부탁한다’는 간곡한 호소문도 붙어 있었다.

한 블록 떨어진 또 다른 골목에서도 비슷한 광경이 펼쳐졌다. 벽에 붙은 금연 스티커와 안내문 등은 장식품에 불과했다.

동작구는 지난해 7월 이곳 일대에 금연거리를 조성했다.

골목을 지나며 담배를 피운 이들 때문에 근처 주민들이 불편을 겪다가 서명운동을 벌여 당국에 금연거리 조성을 요청한 것으로 안다고 동작구 보건소 관계자는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설명했다.

둘러본 금연거리는 매우 깔끔했다. 제본소가 있는 골목에서 시작해 주택가를 거쳐 대형 학원 뒤를 지나 대로까지 연결된 금연거리에서는 담배꽁초가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길 하나 건너 음식점이 몰린 골목에서는 수북한 담배꽁초와 쓰레기 등이 잇따라 관찰됐다.

서두에서 주민들이 눈을 흘기며 지난 곳이다. 한 곳에 금연거리가 조성되다 보니 다른 곳으로 흡연자들이 몰려 발생한 풍선효과인 셈이다.

 
 


담배를 피우는 수험생들도 할 말은 있다.

수험생 A씨는 “학원에서는 담배를 피울 수 없어서 쉬는 시간에 밖에 나온다”며 “대로에서는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많아 마음 놓고 흡연할 수 있는 곳이 없다”고 말했다.

B씨도 “잘못된 것은 알지만 금연거리에서 담배를 피울 수는 없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쫓기고 쫓기다 결국 흡연자들이 골목으로 몰리면서 금연을 권고하는 현수막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역설적인 풍경을 낳고 말았다.

동작구청 관계자는 “혹시 흡연시설을 별도로 만들어달라는 민원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그런 요청이 들어온 적은 없다”고 답했다.

누구의 잘못이라고 몰아세우기 어려운 탓에 문제 해결이 미뤄지는 동안 노량진 학원가에서는 담배로 인한 갈등이 피어나고 있었다.

글·사진=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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