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플러스] '기준'이 아닌 '상술'이 돼버린 친환경 표시

‘친환경’ 내세운 과장광고 여전히 판친다 / 정부 단속 반년… 효과 도마에 / 인터넷서 ‘E1 친환경’ 검색하자 관련 상품 900여 건이나 ‘주르륵’ / 성분표기 없이 ‘무독성’ 표기도 / 과징금 등 제재는 한 건도 없어 / 정책홍보·소비자 교육 강화 시급 정부가 허위로 혹은 과장해서 제품의 친환경성을 강조한 광고를 단속하겠다고 밝힌 지 반년이 지났지만 엉터리 광고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친환경 달걀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되면서 정부의 친환경 인증관리가 도마에 오른 가운데 환경부의 환경성 단속도 허점이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17일 환경부와 한국환경산업기술원 등에 따르면 기업들은 구체적인 근거 없이 ‘무독성, 친환경, 환경호르몬 불검출’ 같은 표현을 쓸 수 없다.

하지만 이날 인터넷 검색창에 ‘E1 친환경’이라는 검색어를 넣자 관련 상품 907건이 올라왔다. E1은 목재의 폼알데하이드 방출량을 나타내는 등급 중 하나로, E1(방출량 1.5㎎/ℓ)은 시중에 판매할 수 있는 최소한의 요건이지 친환경 등급은 아니다. 가구 목재의 경우 E0(0.5㎎/ℓ 이하) 이상의 등급을 받아야 친환경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인터넷 쇼핑몰에는 ‘E1 친환경 자재’를 앞세운 광고가 버젓이 걸려 있다.

한 휴대용 물통 광고에는 ‘환경호르몬 걱정 없음’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근거는 ‘비스페놀-A(BPA)를 첨가하지 않는 트라이탄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환경성 표시기준을 규정한 ‘환경성 표시·광고 관리제도에 관한 고시’(환경성 고시)에 따르면 BPA가 검출 안 됐다고 해서 환경호르몬 불검출이라고 적어서는 안 된다. 환경호르몬이라 불리는 성분은 100종이 넘기 때문이다.

구체적 성분 표기나 공식인증마크 없이 ‘무독성 크레파스’, ‘저탄소 인증 가스레인지’ 등으로 표기한 상품도 있었다.


‘친환경 E1 자재’를 썼다고 표시한 인터넷 광고. E1은 친환경등급이 아니어서 이 같은 표현을 쓰면 안 된다.
인터넷 캡처
환경산업기술원 관계자는 “(제품을 만드는) 본사가 만든 광고 시안은 기준에 맞게 대부분 수정이 됐지만, 제품 유통단계에서 잘못된 표현이 광고문구로 들어간 것 같다”며 “판매업체도 많고 유통망도 복잡해 일일이 단속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고 전했다.

국내 친환경 제품 시장은 2001년 약 1조5000억원에서 2012년 약 30조원 규모로 성장했다. 한 설문조사에서는 국민의 81%가 친환경제품에 관심 있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친환경의 개념이 워낙 광범위한 탓에 허위·과장광고에 동원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환경부는 세부적인 기준을 담은 환경성 고시를 마련해 지난 2월 시행에 들어갔다. 부당한 내용을 광고해 적발되면 정부는 시정명령을 내리고 업체는 1달 이내 개선보고서나 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위반 내용이 중대하면 과징금을 부과한다.

그럼에도 고시 시행 이후 과징금 부과 건수는 한 건도 없을 뿐만 아니라 앞선 사례처럼 시정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다. 환경성에 대한 세세한 정보를 알기 어려운 소비자는 여전히 친환경 위장광고를 걸러내기 어려운 것이다.

정부는 기업이 제도를 제대로 몰라 위반하는 일이 없도록 3월부터 ‘사전검토제도’도 시행했다. 기업이 제품을 출시하기 전에 광고가 환경성 표시기준을 어겼는지 신청을 통해 전문가 조언을 받도록 한 것이다. 지금까지 사전검토제 신청 건수도 4건에 불과하다.

양지안 인천녹색소비자연대 사무처장은 “특히 작고 영세한 기업 중에는 환경성 기준 자체를 모르거나 알면서도 ‘안 걸리면 그만’이라는 인식을 가진 곳이 있다”며 “기업에 대한 정책 홍보를 강화하고 소비자들이 속고 사는 일이 없도록 소비자 교육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