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7-08-20 18:06:39
기사수정 2017-08-20 22:02:30
제자 통장 뺏고 업무 과다 부여 / “장학금 삭감” 윽박 질러 / 통장 무기 삼아 업무 과다 부여 / 외국인 제자 논문 심사 거부도
“울산대학교 정모 교수가 통장 2개를 개설케 한 뒤, 대학에 등록된 장학금 지급 통장을 직접 관리하며 장학금을 삭감하겠다고 위협했다.” 지난해 말 국민신문고에 한 통의 민원이 접수됐다. 교육부는 이를 울산대에 통보했고, 대학 자체 조사 결과 민원 내용이 사실인 것으로 드러났다.
BK(두뇌한국)21플러스 사업과 지역혁신인력 양성 사업 등 4개 사업에 참여하고 있던 정 교수는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사업단 내 석·박사 대학원생 제자들에게 통장·비밀번호·카드를 회수하는 수법으로 이들의 인건비와 연구장학금을 일괄 관리하고 일부를 빼돌리기까지 했다. 그는 빼앗은 통장을 무기 삼아 제자들에게 업무를 과도하게 부여하거나 장학금을 줄이겠다고 협박했다.
정 교수가 이처럼 일괄관리(공동관리)한 인건비는 5년간 총 7억4883만여원에 달한다.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 등이 참여하는 BK21플러스 사업 총괄관리위원회는 이 중 BK21플러스 사업비로 지급된 1억4160만원을 전액 환수하기로 결정했다. 정 교수는 향후 5년간 BK21플러스에 참여할 수 없도록 조치됐다.
BK21플러스 관리·운영 지침 제28조(대학원생 연구장학금) 3항과 4항에는 ‘대학원생들의 장학금은 개인별 계좌로 입금돼야 하며 통장이나 도장을 회수해 일괄관리하는 등의 행위를 엄격히 제한한다’고 명시돼 있다.
포스텍(포항공대) 컴퓨터공학 사업단의 최모 교수도 제자들의 통장과 비밀번호를 제출받는 등 정 교수와 비슷한 수법을 썼다. 최 교수는 BK21플러스와 뇌과학 원천기술 개발 사업, 신기술융합형 성장동력 사업 등 여러 사업을 맡아 진행하면서 2011년부터 2015년까지 5년간 대학원생들의 인건비 총 2억3227만여원을 공동관리했다.
전북대 바이오나노시스템 창의적 연구인력 양성 사업팀의 N(외국인) 교수는 장학금을 일괄관리하면서 같은 외국인 제자들의 논문 심사를 거부하고, 본국으로 송환하겠다는 등 위협을 가하기도 했다. N교수는 2개 사업에서 총 2798만여원을 공동관리했다.
세계일보가 입수한 ‘제4차 BK21플러스 총괄관리위 회의록’에 나타난 사례들이다. 교수들의 장학금 공동관리와 이에 따른 ‘갑질’ 행태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한국연구재단 관계자는 20일 “교수들이 정부 발주 사업을 자신이 따온 과제 정도로 인식하기 때문에 장학금을 일괄관리하는 것”이라며 “사업단에 대학원생이 많은데 사업비가 적을 경우 필요에 의해 공동관리하기도 하지만 이 역시 엄연한 규정 위반”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일부 교수가 공동관리하는 장학금으로 대학원생들을 협박하는 등 폐해가 잇따르면서 올해부터 고발조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당국이 국책사업 규정 위반 등과 관련해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등 강력한 처벌을 하는 건 좋지만 평가 방법도 개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반상진 전북대 교수(교육학)는 “지난 정부에서 대부분의 대학 재정지원이 ‘선평가 후지원’ 형태로 이뤄진 탓에 일단 평가를 받으면 사업비 집행은 감시받지 않은 채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며 “앞으로는 ‘선지원 후평가’로 전환해 대학과 교수들의 도덕성을 강화할 수 있도록 하고 평가도 보다 꼼꼼히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부 교수의 규정 위반 또는 비위 행위로 해당 사업단의 사업권이 회수되면 애꿎은 대학원생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지적에 반 교수는 “장학금 공동관리는 어떻게 보면 참여하는 대학원생들도 대충 알고 있을 텐데, 단순 장학금도 아니고 연구장학금이라면 대학원생들도 공동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주영 기자 buen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