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7-08-28 20:52:14
기사수정 2017-08-28 21:09:48
지구 온난화 탓 폭증… 美 대도시 ‘쥐떼 공습’으로 피해 눈덩이 / 뉴욕 등 ‘쥐들과의 전쟁’ 나서
미국의 뉴욕, 워싱턴DC 등 주요 도시가 지구 온난화에 따른 쥐의 급격한 번식으로 극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쥐떼가 주요 도시의 거리, 건물, 지하 시설물 등을 점령해 건물 파손, 보건 위생 악화, 질병 전파, 방역 비용 급증 등 심각한 사회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파리기후변화협정 탈퇴 등으로 지구 온난화를 막으려는 글로벌 연대에서 이탈했다. 미국의 평균 기온이 날이 갈수록 올라가고, 쥐는 그만큼 더 폭발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커졌다. 쥐의 번식을 차단하는 획기적인 대책을 서둘러 취하지 않으면 미국은 ‘쥐 공화국’이 될 것이라고 미국 언론과 전문가들이 강조하고 있다. 쥐떼 공습에 함락 위기를 맞은 미국 주요 도시의 실태는 심각한 상황이다.
◆쥐의 ‘베이비 붐’ 세대 출현
미국의 대도시는 지금 쥐떼와 전쟁을 치르고 있다. 뉴욕, 시카고, 휴스턴, 보스턴 등 미국의 주요 대도시는 예외 없이 쥐 문제로 비상이 걸려 있다. 미국 센서스국이 2년 단위로 시행하는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주택에 쥐가 사는 비율은 필라델피아 17.7%, 보스턴 16.9%, 뉴욕 15.4%, 워싱턴DC 13.1%, 밀워키 11.1%, 신시내티 10.6% 등으로 나타났다.
방역 서비스 체인점인 오르킨(Orkin)에 따르면 쥐를 퇴치해 달라는 서비스 접수 건수가 2013∼2015년에 샌프란시스코 174%, 뉴욕 129%, 보스턴 67%, 시카고 61%, 워싱턴 DC 57% 등으로 급증했다고 미국의 시사 매체인 ‘뉴 리퍼브릭’ 최신호가 보도했다. 시카고시는 지난해보다 올해 쥐의 숫자가 9%가량 증가한 것으로 추정했다. 뉴 리퍼브릭은 미국에서 쥐의 ‘베이비 붐’ 세대가 출현했다고 전했다. 이 매체는 쥐(Rat)와 지구 종말(apocalypse)을 뜻하는 단어를 합성한 ‘랫포칼립스’(Ratpocalypse)가 임박해 있다고 지적했다.
도시는 쥐의 유토피아이다. 음식물이나 그 찌꺼기가 많고, 건물이나 지하 등 숨을 곳이 많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미국 대도시에서 쥐의 숫자가 급증하는 이유는 지구 온난화 때문이라고 뉴 리퍼브릭이 지적했다. 쥐 생태 전문가인 보비 코리간은 “쥐가 추운 겨울에는 잘 번식하지 못한다”면서 “미국은 지난해에 역사상 가장 따뜻한 겨울 기록을 세웠기 때문에 쥐의 베이비 붐 세대가 출현했다”고 지적했다. 지구 온난화가 심각해지고, 겨울의 평균 온도가 올라갈수록 쥐는 급격하게 번식해 통제 불능의 상태가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이 경고했다.
◆쥐의 기하급수적인 번식
쥐 전문 연구 기관인 렌토킬(Rentokil)에 따르면 암컷 쥐 한 마리는 1년에 6번 새끼를 낳고, 한 번에 12마리까지 낳는다. 이렇게 태어난 쥐는 9주일이 지나면 서로 교미를 하기 때문에 쥐 두 마리가 1년에 1250마리의 쥐를 번식할 수 있다. 이 1250마리마다 9주 후에는 또 번식에 들어가기 때문에 쥐 2마리가 3년 동안에 4억8200만 마리로 늘어날 수 있다고 렌토킬이 지적했다.
이는 어디까지나 쥐가 이상적인 환경에 있을 때를 가정해 이론적으로 추정한 수치이다. 쥐도 음식물과 은신처 부족, 질병, 먹이사슬에 의한 포식, 싸움, 인간의 방역 작업 등으로 죽어가고 있다. 다만 지구 온난화로 인해 겨울철 동안에도 쥐가 번식을 계속하고 있어 현 상태를 방치하면 쥐의 번식을 차단하기가 불가능해지는 사태가 올 수 있다고 전문가들이 강조했다.
렌토킬은 “쥐가 생존과 번식을 위해 자연의 도움을 추가로 받아야 할 이유가 없지만,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온실 효과가 나타나 지구의 기온이 올라감으로써 쥐가 그 혜택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주요 도시도 급격히 늘어나는 쥐로 인해 홍역을 치르고 있다고 렌토킬이 지적했다.
쥐는 시골보다는 도시에서 살기가 좋다. 이 때문에 도시 지역에서 쥐의 숫자가 급격히 늘어난다. 문제는 세계에서 도시화 현상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오는 2050년이면 세계 인구의 70%가 도시에 거주할 것이라고 뉴 리퍼브릭이 지적했다. 쥐는 도시화가 진행될수록 생활 환경이 좋아지고, 그만큼 번식을 많이 한다.
◆쥐로 인한 피해
쥐는 E 콜라이, 살모넬라, 한타 바이러스 등 각종 질병을 퍼트리는 매개체이다. 쥐는 또한 렙토스피라증과 같은 희귀 박테리아를 퍼뜨리고 다닌다. 그러나 쥐가 광견병을 옮기지는 않는다. 뉴 리퍼브릭은 미국에서만 연간 수백만 명이 쥐로 인한 질병을 앓고 있고, 이로 인한 병원비가 수십억 달러에 달한다고 전했다. 미국의 질병통제센터(CDC)는 쥐로 인한 인간의 질병 감염 실태에 관한 종합적인 조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 쥐가 옮긴 질병에 걸린 사람은 감기와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면 쥐로 인해 발병됐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게 마련이라고 전문가들이 지적했다. 이 때문에 쥐로 인한 건강 관리비가 얼마나 들고 있는지 정확한 통계조차 잡히지 않고 있다.
쥐는 또한 건물 등 도시 시설물을 훼손하는 주범으로 꼽히고 있다. 쥐가 건물이나 교량 등 기간 시설물을 갉아먹거나 훼손함에 따라 발생하는 미국 도시 지역의 피해 액수가 2000년 한 해 동안 190억달러(약 21조4130억원)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뉴 리퍼브릭이 보도했다.
미국은 1969년부터 1982년까지 연방 정부 차원에서 쥐 박멸 대책을 세우고, 필요한 예산을 배정했다. 그러나 로널드 레이건 정부는 쥐에 대한 대책을 지방자치단체에 떠넘겼다.
미국 주요 대도시는 쥐떼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지만,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이 사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뉴욕 등 대도시에 유입되는 인구는 갈수록 늘어나고, 지구 온난화 현상이 심화해 쥐떼의 도시 습격으로 인한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가고 있다.
◆쥐떼의 습격에 맞서는 대도시
뉴욕시의 빌 드 블라지오 시장은 뉴욕에서 쥐떼와 전쟁을 치르는 데 필요한 예산으로 3200만달러를 책정했다고 폭스 뉴스가 최근 보도했다. 드 블라지오 시장은 “우리가 쥐를 뉴욕시의 정상적인 일원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고 선언했다. 뉴욕시는 일단 쥐가 많이 사는 차이나타운 등 3개 지역을 선정해 집중적인 퇴치 및 방역 사업을 전개하기로 했다. 뉴욕시는 이 3개 지역에서 오는 2020년까지 쥐의 숫자를 70%까지 줄이는 목표를 세웠다.
시카고시는 ‘콘트라페스트’로 불리는 흰 박스를 쥐가 많은 곳에 집중적으로 배치하고 있다고 폭스뉴스가 전했다. 이 박스에 있는 먹이를 먹는 쥐는 생식 능력을 잃게 된다. 시카고시는 이 방법으로 쥐의 숫자를 현재보다 40%까지 줄일 계획이다. 드라이아이스도 쥐를 잡는 데 널리 쓰인다. 시카고시는 쥐구멍 등에 드라이아이스를 집중적으로 투입하고 있고, 쥐는 여기서 나오는 가스로 인해 질식한다.
워싱턴DC는 쥐가 번식할 수 없도록 대대적인 환경 개선 작업에 나서고 있다. 쥐가 생존하고, 번식하는 데에는 음식물, 물, 은닉 장소 등 3대 요소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이 지적했다. 워싱턴DC는 거리에 있는 쓰레기통을 핵심 타깃으로 삼고 있다. 사람들이 길거리에 있는 쓰레기통에 먹다 남은 음식물을 버리고 있어 밤이 되면 이 쓰레기통은 쥐들의 천국으로 바뀐다. 워싱턴DC는 신속한 쓰레기통 비우기 운동 등을 전개하고 있다.
미국의 지자체는 쥐 퇴치를 위해 연방정부가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 대책 등은 연방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게 지자체의 주장이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는 파리기후변화협정을 탈퇴한 뒤 지구 온난화 대책 관련 예산을 삭감했다. 미국의 주 정부와 시 당국 등은 자체적으로 이산화탄소 배출량 줄이기에 나서고 있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