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설과 예술 사이… 性금기 깬 ‘문학계 이단아’

‘즐거운 사라’ 마광수 前 연세대 교수 자택서 숨진 채 발견 한국사회와 문단을 소설 ‘즐거운 사라’로 조롱하고 흔들었던 마광수(66) 전 연세대 교수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마 교수는 음란소설이라는 이유로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고 해직과 복직을 반복하며 심한 우울증에 시달려왔다.

5일 서울 용산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후 1시51분쯤 마 전 교수가 자택인 용산구 동부이촌동의 아파트에서 숨져 있는 것을 가족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마 전 교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조사 중이다. 지난해 8월 연세대 퇴직 이후 우울증을 보여 약물을 복용해 온 마 전 교수는 가사도우미가 자리를 비운 사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경찰은 파악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자신의 유산과 시신 처리를 가족에게 맡긴다는 내용의 A4용지 1장짜리 유서가 발견됐다. 유서는 퇴직 후인 지난해 9월 작성한 것으로 추정됐다. 마 전 교수의 시신은 한남동 순천향대병원으로 옮겨졌다.


마광수 전 교수가 1994년 연세대 교수 시절 강의하던 모습. 당시 그는 소설 ‘즐거운 사라’로 피소돼 음란문서 제작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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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국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마 전 교수는 시인 윤동주 관련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따며 국문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 논문은 윤동주 연구에서 획기적 성과로 평가받았으며, 현재도 윤동주 연구의 출발점으로 인식되고 있다. 28세에 최연소 홍익대 교수로 임용된 이후 1984년 연세대로 옮겼다. 청록파 시인 박두진의 추천으로 1977년 현대문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마 전 교수는 1991년 8월 ‘즐거운 사라’를 출판하면서 고초를 겪었다. 즐거운 사라는 같은 해 9월 외설작품으로 지목돼 판매금지되고 이듬해 마 전 교수는 강의 도중 서울지검 특수2부에 붙잡혀 구속됐다.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연세대에서 해직됐다. 마 전 교수는 생전에 “우리나라 소설에서 사라 같은 여자는 없고, 있다 하더라도 다 자살하거나 반성할 뿐”이라며 “문학의 품위주의, 양반주의, 훈민주의에 대한 반발이었다”고 회고했다.


마광수 전 연세대 교수가 2010년 4월 연극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제작보고회에 참석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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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국문과 학생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마 전 교수에 대한 복직 요구가 잇따라 1998년 김대중정부 시절 사면을 받았다. 그는 사면 직후 연세대 교수로 복직했지만 재임용 탈락과 휴직, 복직 등으로 순탄치 않은 생활을 보냈다. 정년 퇴임 때도 해직 경력 때문에 명예교수 직함을 얻지 못했다. 마 전 교수는 등단 40년을 맞은 올해 초에는 ‘광마집’(1980)부터 ‘모든 것은 슬프게 간다’(2012)까지 시집 여섯 권에서 고른 작품들과 새로 쓴 10여편을 합해 119편을 묶은 시선집 ‘마광수 시선’을 펴내기도 했다.

마 전 교수의 죽음을 두고 ‘사회적 타살’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터져나오고 있다. 한국사회의 지나친 엄숙주의와 경직된 태도가 자유로운 예술혼을 억압한 결과라는 지적이다.

소설가 김도언은 “많은 자살이 그렇지만 이 자살은 의심할 여지없는 명백한 사회적 타살”이라며 “위선과 가식으로 뒤덮인 한국 사회가 열정과 재능이 넘쳤던,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억압과 금기를 부수는 전선에 섰던 한 지식인에게 처참한 모욕을 안겨주고 결국은 죽음으로까지 내몰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용호·박현준 기자 jho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