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내 이메일을 감시한다면… 유럽 ‘직장 내 사생활 침해’ 논란 종지부

유럽인권재판소(ECHR) 대재판부 “고용주의 ‘고용자 이메일 열람’ 제한”
‘고용주가 특정 조건에서 직원 이메일 등을 감시하는 것은 정당하다’는 유럽인권재판소(ECHR)의 판단이 1년 8개월만에 뒤집혔다. ECHR의 항소심격인 대재판부(Grand Chamber)는 5일(현지시간) 업무용 이메일 등을 개인용도로 사용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루마니아의 한 남성이 제기한 해고 무효 소송과 관련 “회사가 직원 이메일을 확인하려면 사전에 고지했어야 한다”고 판결했다고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고용주의 직원 감시를 폭넓게 인정한 미국과 달리 유럽에서는 직원의 사생활 보호가 더 힘을 얻게 됐다고 NYT는 분석했다.

대재판부는 루마니아 등 유럽 각국 정부에 “기업이 직원에 알린 뒤 이메일 등을 들여다보더라도 사생활 침해를 방지하는 형식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고, 직원 학대 방지 대책도 마련되야 한다”고 권고했다.

루마니아의 한 개인회사에서 야후 메신저 등으로 업무를 보던 보그단 미하이 바뷸레스쿠는 사측에서 확인한 1주일간의 통신내역에서 형제, 약혼녀 등 개인적인 채팅 기록이 확인됐다는 이유로 2007년 7월 해고됐다. 그는 루마니아 법원이 해고 무효 소송을 받아들이지 않자 ECHR의 문을 두드렸다.

ECHR는 지난해 1월 재판관 6대 1 의견으로 “고용주가 규율을 시행하는 차원에서 채팅 기록을 확인한 것은 정당했다”고 판단했다. 당시 재판부는 “직원이 근무 시간에 전문적인 업무를 완료했는지를 고용주가 확인하는 것은 합리적”이라고 밝혔다. 이메일 등을 검사하는 것 외에 직원이 성실하게 근무하는지 여부를 알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는 점 등을 들어 이메일 감시 행위를 회사의 정당한 권리라고 판단한 것이다.

대재판부는 하지만 1년 8개월만에 재판관 11대 6 의견으로 “바뷸레스쿠의 프라이버시권이 침해됐다”며 이전 판단을 뒤집었다. 대재판부는 특히 “바뷸레스쿠의 동료가 비슷한 일로 해고된 것은 맞지만 회사가 사전에 이메일 등을 감시할 수 있음을 알리지는 않았다“며 “회사가 바뷸레스쿠의 이메일 등을 살펴볼 수 밖에 없었다는 주장 등에 대해서도 루마니아 법원은 충분히 검토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영국 노동법 전문로펌 ‘화이트앤케이스’의 스티븐 레벤스크로프트 변호사는 “이번 판결로 직원 감시의 법적 허용범위가 명확해졌다”며 “기업은 직원 감시 정책의 목적과 이유, 방법 등을 세부적으로 마련해야 하고, 직원에게는 사전에 이런 정보들이 어떻게 활용될지 등에 대해 설명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재영 기자 sisleyj@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