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7-09-10 19:13:48
기사수정 2017-09-10 19:13:48
‘핵폭탄’ 싣고 보란 듯이 수천㎞ 장거리 비행 / ‘核공포’ 극대화 ICBM보다 한 수 위 / 초음속 ICBM과 달리 요격 쉬워 / 적에게 대응시간 주는 단점 불구 ‘무력시위’ 효과 커 운용 이어져 / 美 B-29는 실전 배치 60년 넘어 / 러 Tu-95 장거리 초계비행 재개 / 긴장의 한반도에 출현 이어질 듯
일반적으로 핵공격 수단으로는 지상발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이 거론된다. 마하 20 이상의 속도로 하강하는 미사일은 방공망으로 요격하기 어렵다. SLBM이나 이동식발사차량(TEL)에 탑재된 ICBM은 적의 정찰자산에 잘 포착되지 않아 사전 파괴도 쉽지 않다.
전략폭격기는 방공망에 사전 탐지될 수 있다. 적에게 대응할 시간적 여유를 주는 단점이 있다. 반면 무력시위 효과는 크다.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지역에 출동해 장거리 비행을 실시함으로써 적으로 하여금 섣불리 군사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압박할 수 있다. 미국과 러시아가 수천 기의 ICBM을 보유하면서도 여전히 전략폭격기를 유지하는 이유다. 미·러가 수시로 전략폭격기를 한반도 주변에 투입하는 것도 무력시위 효과를 의식하기 때문이다.
전략폭격기는 폭탄을 싣고 먼 거리를 날아가 적 후방을 공습한다. 전략폭격이 본격화된 것은 1939년 제2차 세계대전부터다. 전쟁 말기 연합군은 영국에서 독일 본토로 장거리 폭격기를 보내 독일의 전쟁수행능력을 마비시키는 전략폭격을 감행했다. 레이더를 이용하면서 전략폭격기 정확도와 위력이 커졌다. 악천후에서도 목표지점을 정확히 찾아 폭격할 수 있어서다.
전쟁 말기 미국이 개발한 B-29 폭격기는 최대 항속거리가 9000㎞에 달했다. 태평양상의 사이판, 괌에서 일본 본토를 폭격할 수 있게 됐다. 1945년 8월 미국은 B-29에서 히로시마(廣島)와 나가사키(長崎)로 핵폭탄을 투하해 제2차 세계대전을 마무리했다.
1950년대에 접어들면서 미국은 제트폭격기 시대로 접어든다. 북한이 핵실험을 단행하거나 탄도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괌에서 한반도로 전개하는 미군 전략자산 중 일부인 B-52, B-1 전략폭격기도 이때부터 모습을 드러냈다. 1955년부터 10여년 동안 744대가 생산된 B-52 폭격기는 60여년 동안 운용돼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이 대를 이어 타는 폭격기로 유명하다. 27t의 폭탄을 싣고 6400㎞를 날아 공습을 하고 기지로 복귀할 수 있다.
베트남전쟁에서는 융단폭격(carpet bombing)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많은 양의 폭탄을 베트남 전역에 쏟아부었다. 1991년 걸프전에서는 다국적군이 사용한 폭탄의 40%가 B-52에서 투하됐다. 2003년 이라크 전쟁에서 정밀유도무기를 탑재한 채 오랜 시간 비행하면서 공중포대 역할을 맡기도 했다. 현재는 40여대가 일선에 남아 있다. 1985~1988년 미국 공군에 100대가 인도된 B-1B는 제한적인 스텔스 기능을 갖춘 초음속 폭격기로 61t의 폭탄을 탑재할 수 있다. 지금은 재래식 정밀유도폭탄을 탑재한 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지상군 지원 등 다양한 임무에 투입되고 있다.
구 소련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군 폭격기의 활약상을 보고 미국에 폭격기 제공을 요청했다. 미국은 확답을 주지 않았다. 1944년 미국의 B-29 폭격기 3대가 영토에 불시착하자 이를 복제해 1946년 Tu-4 폭격기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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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Tu-95MS 폭격기. 위키피디아 제공 |
1956년 Tu-4를 토대로 Tu-95 폭격기를 개발했다. 프로펠러기인 Tu-95는 속도는 느리지만 항속거리가 1만5000㎞에 달해 장거리 비행이 가능하다. Tu-95는 500여대가 생산됐다. 이 중 일부는 60여년이 지난 지금도 러시아 공군의 전략폭격기로 쓰인다. 미국보다 해군력이 열세인 러시아는 2007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지시로 1991년 이래 중단됐던 Tu-95의 장거리 초계비행을 재개했다. 현재 초계비행에 나서고 있는 Tu-95는 순항미사일 발사가 가능한 Tu-95MS형이다.
Tu-95MS는 동해상에 우리 군이 설정한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여러 차례 침범해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지난달 23일 Tu-95MS 2대가 KADIZ를 침범해 우리 공군 전투기가 대응에 나서기도 했다.
러시아는 다른 나라의 방공식별구역을 인정하지 않아 러시아 군용기가 다른 나라의 방공식별구역에 진입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 특히 러시아 폭격기들은 한·미 연합훈련이 실시되는 시점을 전후로 Tu-95MS를 띄워 무력시위를 하거나 정찰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면 미·러의 전략폭격기가 한반도로 일제히 출동해 무력시위에 나서는 모습이 계속될 전망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