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자와 만납시다] 뜨거운 햇볕 가려준 고마운 그늘막… '수고했어 올해도'

횡단보도 무더위 쉼터 철거날 / 2013년 동작 첫 설치… 전국서 확대 / 횡단보도·교통섬 대기 보행자 보호… 노량진 학원가 이용자 하루 3000명 / 도로법상 부속 시설물 지정 합법화 더위가 한풀 꺾이고 달력상으로 가을 문턱에 접어들던 지난 5일 오후 3시쯤. 서울 동작구 노량진 삼거리에 노량진1동 주민센터 직원들이 하나둘 모였다. 뜨거운 햇살이 내리쬔 여름날 오가는 시민에게 잠시나마 시원함을 안겨줬던 ‘무더위 쉼터 그늘막’을 철거하기 위해서다. 잠시 빗방울이 뚝뚝 떨어졌지만 다행히 작업 시작 후 어느새 그쳤다. 철거 예정 그늘막은 모두 2개로 각각 지하철 1·9호선 노량진역 1번 출구 앞과 메가스터디 학원 인근 교통섬에 설치되어 있었다.

앞서 동작구는 2013년 주민들의 열사병 피해를 막기 위해 국내 처음으로 그늘막을 선보였는데, 그 효용성이 입소문을 타면서 인근 구와 다른 도시에도 속속 설치됐다. 여름철 횡단보도와 버스정류장, 교통섬 등에서 뜨거운 햇볕에 무방비로 노출됐던 보행자들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듯 반겼다.

서울 노량진1동 주민센터 직원들이 지난 5일 동작구 노량진 삼거리와 지하철 1·9호선 노량진역 인근에 3개월간 설치되어 있던 그늘막(몽골천막)을 철거하고 있다.
그늘막은 설치 기관마다 조금씩 달라 눈요깃거리도 됐다. 체육대회 등에서 만날 수 있던 몽골천막이나 모기장처럼 보이는 캐노피, 파라솔 등 생긴 건 달랐지만 뙤약볕 아래 신호등을 기다리던 이들이 숨을 돌릴 수 있는 훌륭한 쉼터로 자리매김했다. 측정 결과 그늘막 내부 온도는 바깥보다 4도 정도 낮다는 분석도 나왔다. 실제 체감하는 온도 차는 더 크다는 게 설치 기관의 설명이다. 이렇게 그늘막은 거창하지는 않아도 시민들에게 쏠쏠한 도움을 줬다.

동작구는 지난 6월 관내 모두 35개의 무더위 쉼터 그늘막 중 노량진 학원가에 설치된 게 이용자가 가장 많다고 밝힌 바 있다. 일찍 찾아온 무더위와 서울시 공무원 공채시험 등의 영향으로 노량진 학원가의 그늘막 이용자는 하루 3000명에 달했다고 한다. 이날 건널목을 건너던 시민들은 그늘막을 철거하는 직원들에게서 좀처럼 눈을 떼지 못했다. 철거작업이 생경한 듯 보행신호를 몇 차례 건너뛴 채 지켜보던 40대 여성은 “꽤 많은 도움이 되었다”며 그늘막의 효율성을 칭찬했다.

직원들은 4개의 기둥을 지지하던 모래주머니를 먼저 해체한 뒤 조심스레 그늘막을 땅에 뉘었다. 지붕과 분리한 기둥은 따로 모아 줄로 묶은 뒤 화물차에 실었다. 이어 천막도 고이 접어 화물칸으로 옮겼다.

해체한 주머니에서 쏟아진 모래를 치우고 나니 방금 전까지 그늘막이 세워졌던 공간은 휑해 보였다. 그늘막을 지지하는 장치로 모래주머니를 쓴 데는 따로 이유가 있다는 게 구청 관계자의 설명이다. 보도 블록에 고정장치를 박아 세울 수도 있었지만, 파손 우려가 있고 모래주머니만으로도 충분히 버틸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해체작업도 한결 간결해 보였다.

해체작업 중 직원들은 작은 문제에 직면했다. 그늘막 기둥에는 누군가 자전거를 묶어놓았던 것이다. 직원들은 이를 구청으로 옮길 것이냐를 놓고 의견을 주고받다 ‘함부로 물품을 다루면 안 될 것 같다’고 결론을 내렸다. 자전거를 제자리에 놓는 대신 별도의 안내문을 붙이기로 했다.

철거작업을 함께한 임종열 노량진1동장은 “지난 6월부터 8월31일까지 약 90일간 보행자들을 위한 폭염 그늘막을 운영해왔다”며 “횡단보도에 서 있는 동안 심한 더위로 고생했을 이들에게 도움이 되어 기쁘다”고 말했다.

그늘막은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불법 논란까지 일으키기도 했다. 법적인 설치 근거가 없어서다. 최근 그늘막은 도로법 2조에 따른 ‘도로 부속 시설물’로 공식 지정됐고, 국토교통부와 서울시가 협의해 시민 편의를 위한 ‘허가 시설물’로 지정한 만큼 논란거리는 아예 사라졌다. 덕분에 내년에는 더 많은 곳에서 그늘막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겨울에는 폭설에 대비한 가림막이 나오는 것이 아니냐는 여론도 있다. 그늘막이 시설물로 인정되면서 설치, 유지 등과 관련한 제도적인 정비에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현재 중구난방인 그늘막 형태가 통일되고,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운영에 신경을 쓰지 않겠느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내년에도 같은 형태의 그늘막이 설치될 예정이냐”는 질문에 동작구청 관계자는 “시에서 (형태 등과 관련한) 가이드라인이 내려올 것 같다”고 말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