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 담아 … 때론 따끔하게… 다산의 훈계 ‘큰 울림’

유배지서 제자·벗에게 전한 말 “어떤 삶을 살기 원하는가. 추운 겨울에 갖옷을 입고, 더운 여름에는 잠자리 날개 같은 고운 베로 옷을 지어 입는다. 이렇게 살면 흡족할까. 비취새와 공작새도 비단옷을 입고, 여우와 살쾡이도 갖옷을 입는다. 그게 무슨 대수인가. (중략) 그 옛날 부자 석숭의 별장에 있던 금곡에서의 흥겨운 잔치와 소제에서의 즐거운 자리에 지금 무엇이 남아 있는가?”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은 제자 윤혜관에게 인간의 탐욕을 돼지의 즐거움에 빗대며 추한 모습을 지적했다. 다산은 윤혜관을 포함해 유배지에서 만난 제자와 자식, 벗에게 생활의 지침과 학문적 교훈이 담긴 글을 자투리 종이와 천에 적어 건넸다. 오늘날 ‘증언’(贈言)이라 불리는 이 글에는 다산의 철학이 투영돼 있다.

지난 10여년간 다산의 발자취를 연구해 온 정민 한양대 교수가 증언 50여종을 모아 ‘다산 증언첩’과 ‘다산의 제자 교육법’으로 동시 출간했다. 다산 증언첩에는 280여컷에 이르는 다산 친필 증언첩 사진이 수록됐고, 다산의 제자 교육법은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정약용의 가르침을 주제별로 정리했다. 이들 책에는 다산이 일상 속에서 발견한 깨달음의 내용과 우언의 형식을 띤 비유의 글이 실렸다. 

다산은 유배지에서 만난 제자와 자식, 벗에게 생활의 지침과 학문적 교훈이 담긴 글을 자투리 종이와 천에 적어 건넸다. 사진은 황상의 결단을 촉구하는 다산의 편지.
윤영상 소장·휴머니스트 제공
증언을 보면 다산이 제자들을 향한 애정과 사랑이 느껴진다. 다산은 부친상을 당한 제자 황상에게 “네 어른이 큰 병의 끝에도 온갖 걱정을 다하였으니 특히 이를 위해 슬퍼한다. 죽을 먹는 중에 몰래 고깃국물을 타서 위장의 기운을 북돋워 주어야 한다”며 상중에도 건강을 챙기라고 충고했다. 황상이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시묘(侍墓)를 생략하려 하자 다산은 “네가 날마다 방에서 자는 것이 편안하냐. 네가 하루에 두 끼를 먹으면서도 편안하냐”고 꾸짖고는 “집안일은 네가 마땅히 주장해야 한다”고 일침을 놓았다.

늦깎이 제자 정수칠이 다산에게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묻자 다산은 이처럼 대답했다. “학문은 우리가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중략) 사람이 되어 배움에 뜻을 두지 않는다면 그 법칙을 따르지 않겠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금수(禽獸)에 가깝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에 정수칠이 공부를 하려고 하니 주변 사람들이 수군거린다고 토로하자 다산은 “심지어 부모에게 효도하고 관직에 청렴한 것을 두고도 경박한 무리는 모두 명예를 구하려는 것으로 의심한다”고 조언했다. 

다산선생 서첩.
조남학 소장·
휴머니스트 제공
다산의 증언은 대부분 한 문단의 짧은 글이지만 독자에게 주는 울림은 크다. 하지만 정약용의 문집인 여유당전서에 있는 증언은 17종에 불과하다. 정 교수는 각처를 돌아다니며 증언을 수집하고 연구했다.

저자는 “때로는 따끔하게, 한편으로 깊은 애정을 담아 건네진 이들 글 속에는 다산의 위대성이 맥맥이 살아 있다”며 “저마다의 개성과 놓인 환경에 따라 꼭 맞게 처방한 훈계는 제자들의 가슴에 깊이 스며 평생 잊지 못할 가르침으로 각인됐다”고 말했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