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애의 영화이야기] 영화의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에 대하여



영화는 은근히 여러 가지 능력을 갖고 있다. 감동과 즐거움을 제공하는 능력도 있고, 몇 시간 쯤 휘리릭 흘러가게 해주는 능력도 있으며, 몰랐던 사실을 알려주며 관객의 시야를 넓혀주는 능력도 있다.

영화는 극영화든 다큐멘터리영화든 간접경험을 통해 관객들의 감정이입, 공감, 문제 인식 등을 이끌어낸다. 최근에 개봉된 ‘군함도’(감독 류승완)를 통해 군함도라는 공간과 그곳에 있던 사람들의 존재를 깨달은 관객도 있을 테고, ‘택시운전사’(감독 장훈)를 통해 1980년 5월 광주에 대해 알게 된 관객도 있을 것이다. 현재 상영 중인 다큐멘터리영화 ‘공범자들’(감독 최승호), ‘저수지 게임’(감독 최진성), ‘김광석’(감독 이상호) 등을 통해서도 미처 몰랐거나 짐작만 했던 일들에 대해 좀 더 알게 된 관객들도 있을 것이다. 물론 ‘관심을 갖고, 추가 정보도 확보하며, 판단하게 되었다’가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영화의 이런 능력 덕에, 소위 ‘블랙리스트’가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지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혹과 백, 모 아니며 도라며 세상의 중심에 자신들만을 놓고 특정 기준으로 검사하고 잘라내고 싶은 딱 그 옛날 ‘검열’을 시도하려는 사람들에게 영화는 권력이나 돈으로 컨트롤이 가능하다고 믿는 그 무엇인 듯하다.

극영화 속 내용이 현실 그대로의 내용은 아니라는 것쯤은 상식이지만, 영화에서 워낙 그럴듯한 볼거리와 들을 거리가 펼쳐지니 종종 관객들은 착각하기도 한다. ‘그랬군.’ ‘저 사람이 나쁜 사람이군.’ ‘저 곳은 가면 안 되겠군.’ 식의 편견이 고착되면서 말이다. 이렇듯 영화는 오히려 관객의 시야를 좁혀주는 능력도 갖고 있다.

특히 ‘반복’이라는 상황까지 더해지며, 몇 몇 영화들로 인한 무의식적 착각, 편견은 더욱 견고해질 수 있다. 물론 사회적 분위기, 뉴스, 교육 등의 지원까지 가세하면 더더욱 그렇다. 예를 들어, 평생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특정 나라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면, 그것은 그동안 배워오거나 보거나 들은 정보와 관련이 있는 건데, 그 중 영화의 몇 장면 정도도 포함되기 일쑤다. 특정 민족이나 인종, 성별 등을 대상으로도 비슷하다.

잠시 해외에 거주하던 시절에 종종 “(그 위험한) 한국에서 어떻게 사는가?”라는 질문을 받았는데, 가끔씩 그러나 반복적으로 접하는 비슷한 한국 관련 뉴스며, 할리우드 영화 속 한국이나 한국인 모습 등이 뒤섞여, ‘한국은 위험해서 살기 힘든 곳’이라는 편견을 갖게 된 것이라 짐작해본다. 아시아 남성들의 경우 “당신도 무술 유단자인가?”라는 질문이 종종 던져진다는데, 비슷한 배경이 작용했을 것이다.

물론 두 질문 모두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소설 같은 편견을 바탕으로 한 것은 아니지만, 반복되는 몇몇 정보에 다른 가능성은 잊고, 좁은 시야로만 특정 국가나 지역, 사람들을 바라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영화의 이런 능력 덕에, 소위 ‘화이트리스트’가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영화 속에 특정 기준을 만족 시기는 시선을 담아 영화 제작 과정을 컨트롤하고자 했던 사람들에게 영화는 권력이나 돈으로 영화 자체뿐만 아니라 그 영화를 보는 관객의 생각과 마음까지 컨트롤 할 수 있는 그 무엇이었던 것 같다.

물론 이런 컨트롤은 성공하기 쉽지 않다. 어느새 영화가 100살이 넘는 나이를 먹으면서 이런 컨트롤 시도 정도는 극복했기 때문이다. 한국영화도 일제강점기부터 지속된 법 차원의 검열이라는 칼날도 1990년대 후반에 사라졌다. 그동안 관객들은 매우 다양한 영화를 보며, 영화 관람 노하우도 터득해왔다. 더욱이 영화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실시간으로 공유될 수 있는 요즘에 누군가에 의한 조직적인 움직임은 결국 들킬 수밖에 없다.

영화의 힘은 세다. 그러나 결국 영화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고, 사람이 보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에겐 영화를 조절할 힘도 있지만, 조절당하지 않을, 휘둘리지 않을 능력도 있다. 카메라는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고, 영화 관람은 관객의 선택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늘 하는 얘기지만, 취향에 맞는 비슷한 영화를 즐기는 와중에 가끔은 조금 다른 영화도 보기를 바란다. 세상에 대한 좀 더 넓은 시야 확보를 위해서 말이다. 아니 최소한 내 좁은 시야가 누군가에게 무례나 폭력이 될지도 모르는 일은 피하기 위해서 말이다.

서일대학교 연극영화학과 교수

<세계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