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호의 사서삼매경] (31) '虎視牛步' 사이다 이낙연, 꽉 막힌 국정도 뚫어주기를

#송나라 명장 악비는 촉의 관우와 함께 중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충절의 인물이다. 북송 멸망 때 의용군으로 군에 발을 디뎠다. 남송 시대가 열리자 지금의 후베이(湖北) 일대를 호령하는 대군벌로 성장했다. 그의 군대 '악가군'은 폐를 끼치는 일이 없어 백성들이 앞다퉈 술과 고기를 차릴 정도였다. 악비는 유광세·한세충 등의 군벌과 함께 금의 침공을 저지하며 연일 승전보를 가져왔다. 잃어버린 북방을 회복하려는 주전론의 선두에 섰다. 금과의 화평을 원하는 고종과 재상 진회에게는 미움을 샀다. 금이 화의의 약속을 어기고 남침을 단행했다. 악비는 정규군으로 주력군을 제압하고 별동대로 후방을 교란하는 ‘연결하삭(連結河朔)’ 전략으로 큰 승리를 거뒀다. 진회가 장악한 조정은 되레 악비에게 회군 명령을 내렸고 병권도 빼앗았다. 진회는 악비에게 누명을 씌어 처형시켰다. 한세충이 물었다. 악비의 죄가 대체 무엇이오. 진회가 답했다. 분명하지는 않으나 그런 일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오. 한세충이 어폐를 따졌다. 막수유(莫須有)라는 세 글자로는 천하를 승복시키기 어려울 것이오. (송사(宋史) 등에서)


이낙연 국무총리의 톡 쏘는 청량감이 화제다. 나흘 간의 국회 대정부질문은 이 총리에 대한 의문을 잠재우기 충분했다. 문재인정부가 최순실 국정농단의 가장 큰 수혜자라는 일격에 "국정농단의 큰 짐을 떠안은 것을 불행으로 생각한다"고 응수했다. 공영방송의 불공정 보도를 봤냐는 객설에는 "꽤 오래전부터 더 공정한 채널을 보고 있다"고 직설했다. 현 정부를 제왕적 대통령 1인제 국가라고 비꼬자 헌재소장 임명 동의안 부결을 거론하며 "삼권분립은 살아있다"고 꼬집었다. 

한국이 대북 대화를 구걸하고 있냐는 빈정에는 "의원님은 한국 대통령보다 일본 총리를 더 신뢰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변죽을 울렸다. 통렬하게 받아쳤고 허를 찔렀으며, 재치있게 상황을 이용하고 말문까지 막아 버렸다. 의원들의 원색적인 공세를 철벽방어하며 국정 2인자로서의 품격을 보여줬다. 흥분하지 않고 해야할 말을 충분히 다 했다. 철두철미하게 현안을 장악하고 있는 모습을 확인한 것은 최고의 수확이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자해만 하고 공갈은 못한 상황"이라며 격찬했다. 지지하는 이들은 박수를 보냈다. 저지하지 못한 이들은 꼬리 아홉의 구미호와 미끌미끌한 기름장어를 운운했다. 시샘하는 마음이 생겨서 그랬으리라.

김동연 경제부총리의 든든함도 이야깃거리다. 경제기획원에서 공직을 시작한 예산통이다. 대통령 공약 이행에 소요되는 178조원을 확보하기 위해 빠듯하게 가계부를 꾸렸다. 눈병에 걸리고 입술이 부르틀 정도로 격무에 시달렸다. 1400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 시한폭탄을 주시하는 것도 그의 업무다. 가신과 공신들의 난립 속에서도 컨트롤타워의 역할을 비교적 확고히 하고 있다. 사적 견해와 욕심을 마치 새정부의 기조인 것처럼 포장하는 이들과도 맞섰다. 

시장에 일관된 신호를 보내며 불확실성으로 인한 혼선을 막았다. 종교인 과세 논란이 대표적인 예다. 경제 정책이 점차 포퓰리즘에 치우치자 혁신 성장을 꺼내들었다. 주도적 소득 정책과 보완적 혁신 정책을 두 바퀴로 굴리는 것이다. 비교적 적은 비용과 비교적 용이한 정책수단을 더해 소득 주도의 성장에 가속도를 붙이는 방법론이다. 한목소리로 돈 쓰는 궁리와 돈 달라는 잔소리만 하는 '경제 시어머니'들과는 별다르다. 억척스러운 맏며느리다. 주목할 점은 이 총리, 김 부총리 둘 다 공신 출신이 아니라는 점이다. 자기 살림처럼 혼신을 다하고 있으니 이는 필연 대통령의 인복이겠다. 

재상이 덕망있고 충직하며 유능하면 제왕은 큰 힘을 얻는다. 유소는 인물지에서 덕(德), 법(法), 술(術)을 중점으로 인재를 쓰는 법에 대해 썼다. 덕(德)은 덕행이 높고 용모와 행동거지의 올바름을 칭한다. 법(法)은 법과 제도를 통해 나라의 힘을 키우고 백성의 재물을 풍부하게 함을 이른다. 술(術)은 생각이 오묘하고 변화에 능통하며 절묘한 지모와 계책을 갖고 있음을 일컫는다. 이 3가지에 정통한 이를 국체(國體)라 했고, 완벽하게 다 갖추지 못한 이를 기능(器能)이라 했다. 이외에 장비(臧否), 기량(伎倆), 지의(智意), 문장(文章), 유학(儒學), 구변(口辯), 웅걸(雄傑)들이 제 역할을 해주면 나라가 평안해진다고 했다. 

이 총리나 김 부총리나 충분히 국체나 기능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불행한 것은 정승의 출중함에 비해 일부 판서들의 역량이 부족함이다. 살충제 달걀 파동이 한창인 때에 먹거리를 책임지는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휴가를 떠났다는 보도가 있었다. 식약처는 앞으로 발생할 휴가를 앞당겨 사용할 수 있어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시기가 문제라는 것을 모르는 듯 하다. 더 크게 경종을 울려야할 사안은 800만 달러 대북 지원이다. 인도적 지원의 당위성은 상식이 있는 이라면 부정하지 않겠다. 우려스러운 것은 역시 시기다. 도발과 제재가 한창인 때에 난데없이 현물 지원 이야기가 나왔다. 분유가 로켓으로 변하는 마술의 트릭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겠다. 발표 시점 역시 놀라운 패착이 숨어있다. 지난 14일 오전 5시 미국 NBC가 48시간 내 미사일 도발설을 보도했다. 

당일 오전 10시 대북 지원 검토 발표가 있었다. 다음날 오전 7시 북한이 괌을 사정거리에 둔 미사일을 쏘아 올렸다. 북한의 행보가 충분히 예측가능했다는 점을 곱씹으면 정부 내에 문제세력이 실재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감이 생긴다. 어이 없는 의사결정의 결과 지지층의 이반이 예사롭지 않다. 다음 여론조사는 볼만할 것이다. 한비자는 정승의 거처가 초라하고 내관의 거처가 윤택해지면 안팎이 어긋나는 것이라 했다(相室輕而典謁重, 如此則內外乖). 안팎이 어긋나는 것을 나라가 망하는 징조라고 봤다. 

정승들이 더 활력있게 일하게끔 힘을 실어줘야 했다. 이 총리가 인사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할 수 있게 해야했다. 장관 후보자의 내정을 철회해달라는 요구를 통해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을 덜어줄 수 있었다. 헌재소장 임명동의안 부결 전에 호남 정가의 중지를 모으는 데에도 역할이 가능했을 것이다. 우두머리를 사로잡아 적을 와해시키는 금적금왕(擒賊擒王)의 계책을 만드는 데에도 쓰임이 있었을 것이다. 인화력으로 자연도태의 길을 가고 있는 이들을 끌어들이는 데에도 일조했을 수도 있다. 능신에게 붓과 칼을 쥐어주지 않으니 국정 현안마다 막힘이 있었다. 

적폐청산도 애초에 모아서 해야했다. 각 부처별로 나누니 힘과 관심이 분산됐다. 불필요한 갈등을 만들 필요도 없었다. 개별학교 마다 특수학급을 갖추면 특수학교가 필요없다. 찬성률이 최고인 지역에 사드를 배치한다고 했다면 누가 쌍수를 들었겠는가. 우리를 시끄럽게 했던 사안들의 해답은 의외로 간단한 곳에 있을 수도 있다. 공신과 가신들이 답을 찾지 못하면서 사회는 사분오열이다. 

북핵 사태까지 겹치며 나라가 내우외환이다. 이럴 때일수록 공직기강을 엄중하게 하고 대통령과 총리를 중심으로 호시우보(虎視牛步)해야 한다. 호랑이처럼 무섭게 사물을 보고 소처럼 우직하게 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지금의 갈림길이 촛불정부와 평범한 좌파정부를 가르는 모퉁이가 아닌지 염려가 된다. 

하정호 기자 southcross@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