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7-09-20 19:48:24
기사수정 2017-09-21 07:56:50
심평원 통계자료 분석해보니… / 학업·취업 스트레스에 찌들어… 20대 건강 타연령 비해 크게 악화 / 노년층보다 환자 증가율 높아… “국가가 건강검진 지원 나서야”
“삶의 밑바닥에 구멍이 난 것 같은 불안함에 시달렸습니다. 눈물이 날 것 같다가도 약해지면 정말 낙오자가 될 것 같은 생각에 울지도 못하는 상태였어요. 3년 반이나 이어졌던 구직 기간은 보이지 않는 손이 목을 조르는 시기였죠. 취업준비생으로 지내면서 대학은 나와서 뭐하나, 나의 문제가 무엇인가에 골몰하면서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졌어요. 식습관이 불규칙한 데다 면접에서 낙방하기라도 하면 입맛이 싹 사라져 끼니를 대충 때우곤 했거든요. 결국 위내출혈로 병원 신세를 졌습니다.”
홍보대행사에서 일하는 신모(34)씨는 20대에 건강 문제로 큰 고생을 했다. 좀 벌레가 내부 장기를 파먹는 것 같은 통증 때문에 내시경 검사를 받은 결과 위내출혈 진단을 받았다. 위벽과 십이지장 곳곳에서 피가 나오고 있었다. 위벽의 두께가 얇아져 투명한 색을 띠고 있었다.
담당 의사는 “일반적인 노인의 위도 이 정도로 상태가 나쁘지는 않다”며 “제때 끼니를 먹고 두부, 콩, 생선 등 단백질이 풍부한 식품을 자주 섭취하라”고 조언했다. 신씨는 “취업 후에도 대인관계와 직무 스트레스, 업무상 술자리 등에 시달리고 있지만 20대의 상태는 지금보다 나빴다”며 “백수 청년 중에 잘 먹고 잘 자며 건강을 돌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요즘 청년들을 일컫는 신조어 중 하나가 ‘N포 세대’다. 연애, 결혼, 출산 등 과거 세대가 통과의례로 여겼던 삶의 수순을 포기한 세대라는 의미다. 지금까지는 마땅히 해야 할 ‘행위’만이 포기 대상에 포함됐지만 앞으로는 건강까지 추가될 것으로 보인다.
20일 윤소하(정의당) 의원실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의료통계정보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대 청년들의 건강이 크게 악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각종 질환의 절대적인 환자 수는 노년층이 많았지만 5년 전 대비 환자 수 증가 비율은 20대가 가장 높았다.
우울증의 경우 2016년 환자 수가 50대(12만4639명), 40대(9만3369명), 30대(7만5951명), 20대(6만4497명), 10대(2만6165명) 순으로 많았지만 2012년 대비 증가율은 20대(22.2%), 30대(1.6%), 40대(-0.4%), 50대(-1.2%), 10대(-14.5%) 등 젊은 층의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알코올중독만 해도 40대와 50대는 5년 전보다 환자 수가 줄어든 반면 20대는 20.9%나 늘었다.
신체 건강도 나빠졌다. 20대 경추질환자 수는 2012년 12만4393명에서 2016년 15만8848명으로 6.3% 증가했고 척추질환자는 52만3261명에서 59만1099명으로 3.1% 늘었다. 윤 의원은 “비인간적인 경쟁과 학업·취업·육아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가장 건강하고 활발해야 할 청년들의 건강이 악화되고 있다”며 “국가건강검진 제도에서 배제된 청년들도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도록 생애주기별 국민건강관리 서비스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의 ‘스트레스와 건강 행동의 관련성 고찰’ 보고서에 따르면 스트레스를 많이 느끼는 사람일수록 규칙적인 운동, 7∼9시간 수면, 아침식사, 정기적인 건강검진과 같은 건강에 이로운 행동을 덜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발원은 “스트레스 고위험군은 건강에 도움이 되는 행동을 잘 실천하지 않는다”며 “통합적인 스트레스 관리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