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7-09-26 18:47:36
기사수정 2017-09-26 18:4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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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법관 인사기준 시급 / 판사들 ‘보직·직급’ 자유롭지 못해 / 소속 법원장이 근무 성적·자질 평가… 편가르기·눈치보기 등 부작용 초래 / 통상 2년 마다 소속 법원 옮겨 전보 /과거 ‘향판제도’ 토착비리 우려 폐지… 지역법관으로 명칭 바꿔 존치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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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불거진 ‘제왕적 대법원장’ 논란은 3000명에 이르는 전국 법관들의 인사권을 대법원장이 행사하는 구조에서 비롯한 측면이 크다. 판사들이 승진과 보직, 근무지 등을 놓고 인사권자 눈치를 보기 시작하는 순간 ‘재판의 독립’ 원칙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게 법원 안팎의 공통된 시각이다. 전문가들은 ‘김명수호’ 사법부의 핵심 과제로 새로운 법관 인사기준 정립을 한목소리로 주문했다.
◆“승진제도 없애야”…평정 제도 개선도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아래 하급심 법원은 지방법원 배석판사부터 단독판사, 지법 부장판사, 고등법원 부장판사 등을 거쳐 법원장까지 여러 계층의 법관들로 구성돼 있다. 이처럼 행정기관과 비슷한 관료제가 뿌리를 내린 지금의 법원조직에서 승진과 보직은 판사들의 최대 관심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승진의 경우 지법 부장판사에서 고법 부장판사(차관급)로 올라서는 과정은 경쟁이 치열하다. 여기서 좌절을 겪은 상당수 법관은 퇴직과 변호사 개업의 유혹을 느끼게 된다. 전문가들은 고법 부장판사 승진제도 폐지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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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축하 악수 김명수 대법원장(왼쪽)이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강당에서 열린 `제16대 대법원장 취임식`에 참석한 문무일 검찰총장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남정탁 기자 |
김상겸 동국대 법대 교수는 “고법 부장판사가 되기 위해 다들 노력하는 과정에서 판사들 간 편가르기나 윗선의 눈치를 보는 등의 부작용이 나타난다”며 “공정한 재판을 위해 그런 것들이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법관은 헌법에 의해 신분과 독립이 다 보장되는데 무슨 직급이 필요한가”라고 반문한 뒤 “(승진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판사가 법관으로서 정년퇴직을 할 수 있게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모든 법관을 승진과 경쟁에 뛰어들게 만든 것 자체가 사법의 독립이란 점에서 치명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 교수는 “법관들이 고법 부장판사가 되기 위해 경쟁하는 체제를 없애야 일선 판사들이 높은 사람 눈치 안 보고 소신 있는 판결을 할 수 있다”며 “한 번 법관으로 임용되면 평생 (승진·보직에 개의치 않고) 그 자리에서 재판하는 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경우 법관은 승진이란 개념 자체가 희미하다. 고법에 결원이 생길 때 지법 소속 법관이 고법으로 이동하는 사례가 더러 있지만 이를 승진으로 여기는 이는 거의 없다. 상급법원 판사가 되기 위한 경쟁도 존재하지 않는다.
소속 법원장이 판사들의 근무성적과 자질을 평가하는 법관평정제도의 손질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판사 출신인 유지원 법무법인 엘케이비앤파트너스 변호사는 “판사들에 대해 평정을 안 할 수는 없는데 일선 판사들이 평정권자의 눈치를 보게 되는 문제가 있다”며 “특히 전임 대법원장 시절 서기호 판사가 잘리면서 판사들 사이에서는 ‘평정을 잘 못 받으면 잘릴 수 있다’는 인식이 퍼졌다”고 꼬집었다.
법원조직법상 판사는 10년마다 연임을 위한 재임용 과정을 거치는데, 서 전 판사는 판사로 임용된 지 10년이 된 2012년 페이스북에 이명박 당시 대통령을 비하하는 ‘가카의 빅엿’이란 표현을 써 이목을 모았다. 같은 해 대법원은 ‘근무평정이 하위 2%’라며 서 전 판사에게 재임용 부적격 대상이라고 통보했고 서 전 판사는 결국 재임용에서 탈락해 법복을 벗었다.
◆“법관의 잦은 전보, 국민의 권익 침해”
우리나라 법관은 미국 등 선진국과 비교해 전보가 굉장히 잦은 편이다. 보통 2년마다 인사가 나 소속 법원을 옮기게 되는데 근무지와 실제 거주지가 멀리 떨어진 경우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니다. 문제는 서울 등 수도권 지역 법원에 근무하고 싶어하는 판사가 압도적으로 많은 상태에서 전보 인사를 자주 단행하는 것 자체가 법관의 독립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본적으로 법관의 인사를 확 줄여야 한다”며 “지금처럼 몇 년마다 인사이동을 하지 말고 외국처럼 (처음 임용된) 한 곳의 법원에서 평생 법관을 하는 방식으로 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판사들이 2년마다 근무지를 옮기는 것은 국민들로부터 신속하고 정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빼앗는 위헌적 인사 제도이므로 없애야 한다”고 거들었다.
과거 서울 등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의 경우는 ‘향판’이란 제도가 있어 법관들이 잦은 전보 인사에 시달리지 않고 거주지 근처 법원에 오래 근무하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판사가 한 지역에 너무 오래 근무하면 토착비리 세력과 유착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향판제도는 양 전 대법원장 시절 폐지됐다. 임 교수는 “법관과 토호세력 간 유착 우려는 감찰 강화를 통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며 “종전의 향판을 ‘지역 법관’으로 명칭을 바꿔 존치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박진영·배민영 기자 jy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