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금속오염’ 장항 송림숲 토양 되살린다

국내 첫 ‘대안공법’ 도입 / 1980년대 인근 제련소 운영 오염 / 빽빽히 들어선 나무 정화 걸림돌… 토양세척 땐 13만 그루 베어내야 / 전문가들 “CO₂ 연간 1100t 저감… 정화식물 8종 심어 농도 낮출 것” 바다 건너편에 보이는 공장의 실루엣만 아니라면 탄성이 나올 만큼 아름다운 소나무 숲이었다. 지난달 28일 찾은 충남 서천군의 송림숲은 하늘을 향해 늘씬하게 뻗은 13만 그루의 소나무와 서해가 어우러져 독특한 풍광을 그려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 눈에 안 보이는 아픔이 있었으니 바로 중금속 오염이다. 송림숲 지척의 한 바위산에는 100m 높이의 굴뚝이 우두커니 서 있다. 일제강점기 자원 수탈기지이자 해방 후에는 근대화의 상징이었던 장항제련소에 세워진 굴뚝이다. 굴뚝 연기는 1989년 제련소 용광로가 폐쇄되면서 사라졌지만 그 흔적은 땅에 고스란히 남았다.

1980년대 장항제련소의 굴뚝이 연기를 뿜어내고 있다. 제련소 용광로는 1989년 폐쇄됐다. 오른쪽 사진은 장항 송림숲에 있는 스카이워크에서 바라본 장항제련소 굴뚝.
한국환경공단 제공
제련소 일대 토양 1㎏에는 독극물의 원료인 비소가 491.6㎎ 검출됐는데 이는 기준치(25㎎)의 20배에 가까운 수치다. 카드뮴 역시 13.739㎎/㎏(기준 4㎎/㎏), 구리 3856.7㎎/㎏(기준 150㎎/㎏), 납 2097.1㎎/㎏(기준 200㎎/㎏), 아연 962.8㎎/㎏(기준 300㎎/㎏) 등 기준치의 최고 26배에 이르는 중금속이 검출됐다. 송림 숲도 예외는 아니다.

정부는 2008년 제련소 일대 4㎞의 땅을 ‘세탁’하기로 결정하고 이듬해부터 토양정화를 시작했는데, 나무가 빼곡히 들어선 송림 숲은 정화가 쉽지 않았다.

이 일대 논밭의 경우 1m 깊이로 흙을 떠서 인근의 토양세척 작업장에서 물·화학적 세척을 거치지만 이 방법을 숲에 적용하려면 나무를 베어내는 수밖에 없었다. 60년 이상된 소나무 13만 그루가 한해 흡수하는 이산화탄소량은 1100t. 사업을 맡은 한국환경공단은 전문가 자문 등을 거친 끝에 이달부터 일반적인 토양세척 대신 ‘위해도 저감조치 대안공법’을 추진하기로 했다. 국내 처음 도입되는 공법이다. 위해도 저감조치는 토양을 씻어 원인물질(중금속)을 제거하는 대신 식물을 이용해 중금속이 최대한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다.

이정선 환경공단 차장은 “송림숲은 지역주민과 관광객의 쉼터로 인기가 높고 나무를 베어 토양을 정화하는 것도 현실적이지 못한 방법이라 대안을 찾게 됐다”며 “미국과 독일 등 외국에서는 유해성 정도에 따라 정화방법을 결정하기 때문에 이런 대안공법이 흔하다”고 전했다.

환경공단은 32만5426㎡, 축구장 44개 크기의 송림숲 일대의 땅에 송엽국, 수크렁처럼 비소를 빨아들이는 식물 8종을 심어 농도를 낮출 계획이다.

식물이 자랄 때까지 중금속이 공기 중에 날리는 것을 막기 위해 황마블랭킷(식생매트)을 깔고 그 위에는 맥문동, 갯패랭이, 사계패랭이처럼 그늘에서도 잘 자라는 다년생 꽃을 심을 계획이다. 꽃들이 땅을 뒤덮을 무렵이면 블랭킷은 자연 분해된다.

환경공단은 이를 통해 송림숲의 비소 농도를 인체에 위해를 끼치지 않는 수준까지 낮출 계획이다. 또 중금속을 근본적으로 제거하는 게 아닌 만큼 비산먼지를 비롯해 지표수와 심층수 중금속 농도 측정, 토양 내 비소농도 저감 분석 등 사후 모니터링을 꾸준히 하기로 했다.

전병성 환경공단 이사장은 “이번 대안공법은 생태계와 토양의 기능회복에 중점을 두는 새로운 토양정화 모델로 토양 정화의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천=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