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완식이 만난 사람] “품고 이어주고 치료해주는 것이 현대미술의 미덕”

‘내가 아는 것’ 전시회 연 설치미술가 강익중 바람으로 섞이고 땅으로 이어진 우리는 하나다. 너와 내가 다르지 않고 결국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 너와 나는 생각이 달라도 틀린 것은 아니다. 비행기는 좌우 날개가 있어야 날 수 있다. 꿈과 희망은 연료가 된다. 비행기가 가는 곳을 알려주는 것이 미술이다. 목적지는 조화다. 맛있는 음식은 강한 맛이 아니라 재료의 조화에 있다. 좋은 그림도 조화에 있고, 좋은 사람도 조화에 있다. 미국에서 작업하고 있는 설치미술가 강익중(57)이 속사포같이 쏟아낸 말들이다. 서울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서 11월 19일까지 열리는 ‘강익중, 내가 아는 것’ 전시장에서 그와 마주했다.

시민들로부터 받은 손글씨 문장으로 만든 벽화작품 앞에 선 강익중 작가. 그는 “품고 이어주고 치유해 주는 것이 현대미술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품고, 이어주고, 치료해주는 것이 현대미술의 미덕이다. 나를 알고 서로를 알게 되면 저절로 성취되는 것들이다.”

그는 우선 자신이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결국 자신이 아는 것들이 모여 ‘자신’이 되기 때문이다.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인공지능을 떠올려 보면 이해가 된다. “결혼 전 장모가 내게 던진 첫 질문이 ‘자네가 아는 게 뭔가’였다. 화가 사위의 생활력이 못 미더우셨던 거다. 사위가 어떤 인간인지 알고 싶으셨던 것이다. 내가 아는 것에 대한 여정의 계기가 됐다.”

그는 자신이 아는 게 뭔지 고민하면서 연작시 ‘내가 아는 것’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 떠오른 게 서울 이태원 경리단길 언덕배기에 살던 유년 시절이었다. 폭풍 직전 남산 하늘은 연한 청록색이었다.”

그래서 그의 시구 1호는 ‘폭풍 직전의 하늘은 연한 청록색이다’가 됐다. 이후 일기처럼 한줄 한줄 써내려간 문장들은 강익중표 ‘3×3인치’ 작품으로 태어났다. 손바닥만 한 작품들을 모자이크 조각 삼아 대형 벽화도 제작했다. “3인치 작품의 탄생은 뉴욕 유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루 12시간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학교에 다녀야 했다. 그림 그릴 시간이 없어 오가는 지하철 안에서라도 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작은 캔버스를 여러개 만들어 주머니 속에 넣고 다녔다. 나의 일상과 주변을 담았다. 그것은 결국 ‘나’를 표현한 게 됐다.”

그는 자신이 아닌 다른 이들에게도 똑같이 그들이 아는 것을 질문했다. “자신보다 다른 사람의 정보는 쉽게 얻어 볼 수 있는 시대에 사람들의 안테나는 늘 밖을 향해 있다. 그러기에 자신들이 아는 것을 물어보고 싶었다.”

2300여명이 손글씨로 답을 해왔다. 아르코미술관 전시장을 석굴암 석실처럼 꾸며 알록달록한 한글벽화를 만들었다. “2300명이 아는 것은 2017년의 집단지성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100년이 지난 다음 후손들이 보면 21세기 정신적 문화재가 되지 않을까.”

그는 인상적인 문구들을 하나하나 되뇌였다. 한 식당 주인이 보낸 ‘콩나물무침은 참기름 맛이다’에서부터 97세 미국교포의 ‘나의 장수의 비결은 정직성에 있다’까지 다양했다. ‘부인과 술한테 덤비지 말라’는 배우 이선균의 글귀와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라는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보낸 글귀도 인상적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혼자 꾸는 꿈은 꿈이지만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는 문장도 보인다. 아들을 사고로 잃은 분이 답한 ‘한 가지 고마운 일, 눈물은 색이 없다’는 말은 가슴을 파고든다. 이밖에도 ‘인생은 초행길과 같아서 누구나 헤맬 수 있다’, ‘가슴 떨릴 때 떠나자, 다리 떨리면 못 떠난다’, ‘동물에 대한 잔인함은 인간에 대한 폭력이 될 수 있다’ 등의 글귀도 눈길을 잡는다. “이렇게 나와 서로를 알게 되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품고, 이해하고, 치료가 된다. 미술전시의 목적이라 할 수 있다.”

전시장의 한글 글귀로 이뤄진 벽화가 마치 석굴에서 깨침을 얻은 노승의 언어 같다. 글자 사이에는 작가가 직접 그린 달항아리 그림이 있다. 쉼표, 마침표 구실을 하고 있다. “내가 궁극으로 지향하는 것은 조화다. 한글과 달항아리와 석굴암에서 그것을 본다.”

그는 한글은 자음과 모음이 만나 소리를 내는 음양 조화의 전형이라 했다. “한글은 최고의 언어이고, 소리를 만드는 능력이 탁월하다. 외국인들이 아쉬움을 느끼는 부분만 개선하면 최고의 문자가 될 것이다.”

그는 영어 발음 ‘p의 ㅍ’과 ‘f의 ㅍ’, ‘l의 ㄹ’과 ‘r의 ㄹ’, ‘b의 ㅂ’과 ‘v의 ㅂ’ 등을 구분해서 표기하기 시작했다. r, v, z, th, f의 다섯 개 영어 자음은 한글의 ㄹ, ㅂ, ㅈ, ㅌ, ㅍ에 일획을 추가해서 l, b, j, t, p 발음과 구분되도록 한 것이다. 한글의 기본 자음 19개를 24개로 확장하는 셈이다. 아마도 초기한글의 모습이 이랬을 것이다.

그의 이런 시도들은 한류바람 속에 만난 외국인들을 통해 터득한 것이다. “한글은 문자 이전에 음양의 조화를 이룬 철학이다. 남녀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듯이, 한글의 모음과 자음이 만나서 소리가 나온다. 북핵문제로 남북이 극한 대치를 하고 있지만 한글의 조화정신이 통일을 이룰 것이다. 한글이 통일의 비밀 코드인 셈이다. 통일된 한국의 한글은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 정신을 세계에 실천하는 도구가 될 것이다.”

한 예술가의 상상력과 식견이 범상치 않다. 달항아리도 두 개의 큰사발을 합쳐 만든 백자의 절정이라는 점에서 그는 음양의 조화로 본다.

임진강 ‘꿈의 다리’ 프로젝트 조감도
“두 개의 사발이 불구덩이에서 하나가 됐다. 남북한도 이미 불구덩이인 전쟁을 통과했다. 하나의 멋진 통일한국은 이제 시간문제다.”

그는 수도자들이 아침산에 올라 태양의 양기를 흡수해 자신의 음기와 조화를 모색하는 모습을 늘 떠올려 본다. 경주 석굴암도 그런 전형적인 모습이기에 그는 늘 작품의 소재로 삼고 있다. ‘내가 아는 것’ 프로젝트의 최종 목표는 임진강 ‘꿈의 다리’로 치닫고 있다. 20년째 추진하고 있는 남북한을 잇는 원형 다리다.

“남과 북의 어린이들이 그린 어머니 그림들을 붙일 계획이다. 남북한 군인들이 총 대신 삽을 들고 함께 지었으면 한다. 분쟁과 위기를 넘어설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모성이다.”

그는 대동강에서도 같은 프로젝트를 꿈꾸고 있다. 1997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한국대표로 참가해 특별상을 받은 강 작가는 국내에서는 146개국 어린이의 그림 12만6000점을 모아 일산 호수공원에 세운 ‘꿈의 달’(2004년) 프로젝트와 광화문 복원 현장의 가림막인 ‘광화문에 뜬 달:산, 바람’으로 대중에 이름을 알렸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