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도 부익부 빈익빈? '고액 인지대' 폐지 되나

상한선 없어 소가 따라 무한정 늘어
경제적 여건 어려워 재판 포기 빈번
박주민 의원, 관련법안 개정안 발의
헌법상 국민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 하지만 모든 재판을 ‘공짜로’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민사소송이나 행정소송을 제기하려면 원고가 재판 비용 일부를 부담하는 의미로 법원에 일정액의 수수료를 내야 하는데 이를 ‘인지대’라고 부른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11일 행정소송과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경우 인지대를 폐지하는 내용의 ‘민사소송 등 인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박 의원에 따르면 현행법은 소송 목적의 가액과 인지대를 연동시킨 ‘소가연동제’, 그리고 상급심으로 갈수록 인지대가 늘어나는 ‘심급상향제’를 각각 택하고 있다. 소가연동제에 따라 △소송 청구액 1000만원까지는 0.5% △1000만∼1억원 미만은 0.45%에 5000원을 더한 금액 △1억∼10억원 미만은 0.4%에 5만5000원을 더한 금액 △10억원 이상이면 0.35%에 55만5000원을 더한 금액이 인지대가 된다.

인지대는 상한선이 없어 소가에 따라 무한정 늘어날 수 있다. 또 심급상향제에 따라 항소심은 1심의 1.5배, 대법원 상고심은 1심의 2배를 각각 인지대로 내야 한다.

과도한 인지대가 책정될 경우 재판을 청구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지는 국민이 발생할 수 있다. 인지대가 경제적 여력이 없는 사회적 약자의 재판청구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 인지대를 감당하기 어려워 재판 청구를 포기하거나 소송 인지대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모금운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현대차비정규지회는 올해 초 5명이 90억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받았으나 1억원 가까운 상고심 인지대를 감당할 수 없어 상고를 포기했다. 최근 20억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받은 4명은 1500만원 이상의 인지대 마련을 위해 모금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국제사회에서도 ‘과도한 인지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규약 위원회 회의에선 한국 법원의 과도한 인지대 문제를 거론하며 “피해자를 효과적으로 구제할 권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사법적 절차의 수수료에 관한 규칙을 재검토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박 의원은 “여러 소송 중에서도 행정소송과 국가배상 청구소송에서의 인지대 부담을 해소하는 것이 특히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현행법은 행정소송과 국가배상 청구소송에도 민사소송과 동일한 금액의 인지를 부과하고 있다. 행정소송이나 국가배상 청구는 국가의 위법한 조치나 공권력 남용 때문에 입은 피해를 사법적으로 구제받기 위한 절차다.

개정안은 행정소송 절차 또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 절차에 인지를 붙이지 않도록 함으로써 모든 국민이 경제적 조건에 구애받지 않고 재판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박 의원은 “고액의 인지대로 인해 기본권 보장 의무를 저버린 국가에 억울하게 당하고도 재판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며 “개정안이 통과돼 경제적 조건에 상관없이 모든 국민이 실질적 재판청구권을 보장받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