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선거 풍향을 바꿔버린 고이케의 중대 오판 ‘배제’

‘아베 대항마’로 꼽히던 고이케 유리코(사진·小池百合子) 도쿄 지사가 사실상 ‘아베 도우미’로 전락하면서 정권 교체를 열망했던 ‘반(反) 아베’ 세력의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중의원 조기 해산 초기만 해도 아베정권의 패배가 조심스럽게 점쳐질 정도로 ‘고이케 태풍’은 거셌다. 하지만 고이케 지사의 오판이 잇따르면서 태풍은 소멸됐고 지금은 그가 이끄는 신당 ‘희망의당’이 아베정권의 보완세력에 불과하다는 비아냥이 나오고 있다.

◆선거 판도를 바꿔놓은 한 마디 ‘배제’

20일 공개된 니혼게이자이신문의 여론조사(17∼19일) 결과 오는 22일 치러질 중의원 총선거에서 전체 465석 가운데 집권 자민당이 262석, 연립 여당 파트너인 공명당이 55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에 비해 희망의당은 55석, 희망의당 합류를 거부당한 민진당 출신 진보계 인사들이 창당한 입헌민주당은 54석을 얻을 것으로 예상됐다. 다른 여론조사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자민당의 압승이 점쳐지고 있다.

중의원 해산이 결정될 당시만 해도 고이케 태풍은 강력했다. 지난해 도쿄도지사 선거 때도 자민당의 공천을 받지 못하자 무소속으로 출마해 자민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된 고이케 지사는 올해 7월 도쿄도의원 선거에서도 신생 지역정당 ‘도민퍼스트회’를 이끌고 자민당을 꺾으며 ’아베 대항마’로 급부상했다. 정당을 자주 옮겨 ‘철새 정치인’이라는 꼬리표도 있었지만 약자의 입장에서 기득권과 싸우는 이미지로 큰 호응을 받았다. 이번 중의원 선거 때도 “아베 1강 정치를 허용할 수 없다”고 외치는 고이케 지사가 큰 일을 낼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고이케 지사를 향한 뜨거운 열기는 그가 내뱉은 ‘배제한다’는 한 마디로 급격히 식었다. 제1야당이었던 민진당이 자존심도 버리고 고이케 지사의 신당으로 흡수되는 길을 선택한 이유는 오직 한 가지 ‘아베정권 타도’였다. 자금력도 없고 전국 조직도 없던 고이케 지사가 민진당을 삼키면서 새로운 제1야당의 대표가 됐다. 그런데 이때 민진당의 진보계 인사들의 합류를 ‘배제한다’고 선언했다. 자신의 우익 성향을 강조하며 안보법과 개헌에 찬성하는 것을 희망의당 합류 조건으로 내걸고 나머지는 합류를 거부했다. 이른바 ‘그림 밟기’를 단행한 것이다. 이는 에도시대 때 기독교도인지를 식별하기 위해 예수 등의 그림을 밟게 했던 것을 가리킨다.

이 ‘배제’라는 단어를 사용한 순간 약자 입장에서 기득권과 싸우는 이미지가 사라졌다. 오히려 고이케 지사가 기득권 정치인으로 비치게 됐다. 희망의당 합류를 거부당한 민진당 출신 진보계 인사들은 “진보의 가치를 믿는다”며 입헌민주당을 창당하고 뭉쳤다. 유권자의 동정표가 입헌민주당으로 쏠리면서 야권 분열로 이어졌다. 아베내각의 인기가 하락하는 상황에서도 여당 후보와 야당 후보의 일대일 대결이 이뤄지지 않고 여당 후보 1명에 야당 후보 다수가 대결하는 구도가 형성되면서 ‘반 아베’ 표가 분산됐다. 이는 여당에 유리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희망의당이 자민당의 보완세력이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앞서 지난 18일 민진당의 겐바 고이치로(玄葉光一郞) 전 외무상은 후쿠이현에서 열린 ‘희망의당’ 후보의 집회에서 “‘배제’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자민당과 접전을 벌였을 것”이라며 고이케 지사를 비판했다. 이에 대해 고이케 지사는 19일 기자회견에서 ‘배제’ 발언에 대해 “가혹한 말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상처를 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다.

◆물러날 여지를 남겨둔 ‘무책임’

고이케 지사가 도정과 국정에 모두 관여하는 ‘양다리’ 전략을 선택한 것도 오판으로 꼽힌다. 중의원 총선거는 총리를 뽑는 선거이기도 하다. 하지만 고이케 지사는 도쿄도지사직을 유지하면서 중의원 출마를 포기했다. 국회의원이 아니면 총리가 될 수 없다. ‘배수의 진’을 치고 달려들어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 선거에서 져도 돌아갈 자리를 남겨둔 것으로 비치면서 책임감이 결여됐다는 의심을 받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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